시작부터 ‘무자격’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홍명보, 영원한 리베로는 ‘특혜도 무제한’인가요
2005년 8월 22일. 홍명보 당시 대한축구협회(KFA) 이사는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시작된 KFA 2급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했다.
홍명보는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상태였다.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면 3급 지도자 자격증부터 따야 했다.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면 유소년이나 초등학교 축구교실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면 3급을 따고 2년이 지나야 했다. 하지만, 홍명보에겐 예외 조항이 적용됐다. KFA는 국가대표팀에서 A매치 20경기 이상을 소화하거나 K리그 100경기 이상 출전한 경력자들에 한해서는 3급 지도자 자격증 없이 바로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게 했다.
자격 논란이 불거졌다.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팀만 지도할 수 있었다. 당시 KFA 규정에 따르면 ‘대한축구협회 1급 지도자 자격증이나 아시아축구연맹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자’만 대표팀 지도자로 일할 수 있었다.
KFA는 당시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도자 경력이라곤 지도자 수업 3주뿐이었던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은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2006 독일 월드컵을 치렀다.
홍명보에게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월드컵을 경험하는 데까지 필요했던 시간은 ‘단 9개월’이었다.
홍명보는 2006 독일 월드컵 후에도 국가대표팀에 남았다. 홍명보는 국가대표팀(당시 U-23 대표팀 코치 겸직) 코치로 200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차례로 경험했다.
2006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2007 아시안컵 3위 및 음주파문, 2008 베이징 올림픽 조별리그 탈락 등 대표팀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홍명보가 책임질 건 없었다.
홍명보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마친 후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홍명보는 U-20 대표팀을 맡았다. 홍명보가 이끌었던 U-20 대표팀은 2009 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이란 성과를 냈다. KFA는 이 성과를 인정해 홍명보를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임기는 2012 런던 올림픽까지였다.
위기가 있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한국은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준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 0-1로 졌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3위에 머물렀다.
KFA는 아시안게임에서 홍명보와 같은 성적을 냈던 감독을 내친 적이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수석코치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이바지했던 박항서였다.
박항서는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U-23 대표팀을 이끌고 나섰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다.
당시 아시안게임은 월드컵을 마치고 2달 반 뒤 치러진 대회였다. 하지만, 박항서는 아시안게임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다.
홍명보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실패에도 2012 런던 올림픽 도전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은 월드컵이었다. 홍명보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홍명보는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한국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 1무 2패(승점 1점)를 기록했다. 한국이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건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유일하다.
KFA는 그런 홍명보를 신임하며 2015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아 달라고 요구했다. KFA는 재신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명보는 여론의 반발이 점점 커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자진사퇴했다.
홍명보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항저우는 2016시즌 슈퍼리그 15위를 기록하며 갑급리그(2부)로 강등됐다. 홍명보는 2017년 5월 25일 항저우 지휘봉을 내려놨다.
KFA는 그해 11월 홍명보에게 또다시 손을 내민다. KFA는 홍명보를 행정 총괄 책임자인 전무이사로 내정했다. 당시 홍명보는 행정 경험이 전무했다.
홍명보는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행정가가 꿈이라며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 미국 프로축구 1부 리그 LA 갤럭시로 향한 바 있다. 하지만, 홍명보는 행정가가 아닌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KFA는 지도자 경험만 쌓던 홍명보에게 행정을 총괄하는 책임자 역할을 맡겼다.
홍명보는 울산에서 K리그1 2연패란 성과를 냈다. 울산은 K리그1 2연패를 달성하기 전인 2023년 8월 2일 홍명보와의 3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K리그 최고 대우였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2024년 7월 5일. 홍명보는 수원 FC전을 마친 뒤 이임생 KFA 기술총괄이사에게 국가대표팀 감독 제안을 받았다. 홍명보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이사의 제안을 수락했다.
KFA는 8일 홍명보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홍명보는 10일 광주 FC전을 마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이사가 돌아가고 밤새도록 고민했다. 어떻게 할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축구 인생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 실패했던 그 과정과 그 후의 일들을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반대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 이 시간이 너무 길었다.”
대우는 같지만 평가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홍명보는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들과 달리 면접을 치르지 않았다. 다른 감독 후보들은 PPT 발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상대들에 대한 계획, 전략 등의 평가를 거쳤다.
KFA는 면접조차 치르지 않은 홍명보에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홍명보가 버린 건 자신이 아닌 울산이다. 울산은 3년 재계약을 맺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감독을 KFA에 내어주면서 상처만 남겼다. 위약금 같은 건 논의는커녕 고려조차 없었다. 홍명보 역시 밤샘 고민 속 울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홍명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울산보다 더 좋은 팀으로 향했다. 울산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모든 지도자의 꿈인 월드컵에 두 번이나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KFA는 공정한가. 홍명보는 당당한가.
[울산=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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