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13일, 세계일보 사장 '김일성 조문' 평양 방문

장슬기 기자 2024. 7. 13. 09: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언론계 역사 속 오늘] 1994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이후 국내 정치권 조문 여부 논쟁, 박보희 사장 조문차 방북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1994년 7월15일자 한겨레 1면

1994년 7월13일,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조문을 위해 평양에 방문했다.

1994년 7월15일자 한겨레는 1면 <박보희씨 조문방북 파문>에서 “검찰은 박 사장이 한국 국적을 가진 미국 영주권자로 재미동포여권을 사용해 지난 13일 오후 평양을 방문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검찰은 박 사장이 출국 전 통일원에 방북신고를 하지 않았으나 그가 미국의 영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귀국 뒤 10일 안에 신고할 경우 입북 절차상 실정법 위반은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를 보면 대검 공안부는 박 사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관련 평양을 방문한 것에 대해 김일성 찬양행위, 김정일 등 고위당국자와 회담, 이들과 공동성명 발표행위 외 단순한 조문이나 관광, 취재행위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앞서 7월14일 조문 목적의 방북을 일절 허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검찰이 “외국 영주권자의 단순 조문행위는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7월15일자 조선일보 1면 <박보희씨 입북>를 보면 박 사장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13일 평양에 도착했는데 문선명 세계평화연합총재(통일교) 총재가 12일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조화를 보낸 사실을 북한 언론들이 보도했다.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 홍동근 목사 등도 13일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문명자씨는 MBC, 경향신문, 조선일보 등 국내 언론의 미국 특파원을 지냈고 약 40년간 백악관 출입을 했다.

조선일보는 “북한방송들은 박 사장이 조전에서 '40여년간의 식민지 억압을 끝장내시고 그렇듯 강력하고 기백있는 국가를 창건하시고 공화국을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애도했다”고 전했다.

김일성은 같은해 7월8일에 사망했다. 당시 국내 정치권에서는 김일성 조문을 두고 이념논쟁이 벌어졌다. 같은달 15일자 조선일보 <여야 격론…'이념논쟁' 확산>에 따르면 김영광 민자당(민주자유당)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김일성은 수백만의 동포를 죽인 6·25전쟁 주범이며 아웅산과 KAL기 폭파한 테러리스트이며 2200만 북한주민을 못할게 한 독재자이며 사랑하는 가족을 생이별시킨 1000만 이산가족의 원수”라면서 “그런데 어떻게 조의니 조문이니 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할 수 있단 말이냐”고 했다.

반면 이부영 민주당 의원은 장개석과 모택동 사망시 중국과 대만이 조의를 교환했고 닉슨과 포드도 모택동 사망시 조문사절로 북경을 찾았으며 일왕 히로히토가 죽었을 때 정부가 조문사절을 파견한 사례 등을 열거하면서 “적에게라도 조의를 표하거나 조문사절을 보낼 수 있다는 국제외교 관례가 엄연함에도 민자당 측은 정치성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판 매카시즘 부활이며 정부여당의 실책을 호도하려는 기도”라고 반박했다.

다음날인 7월16일자 조선일보 <색깔논쟁 본격화 양상>이란 기사를 보면 “민자당은 이날 김종필 대표 주재로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일부 야당의원 및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조문사절 파견' 주장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의 방북 등 일련의 사태를 검토한 뒤 '상당히 심각한 사태에 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한편 정부는 박 사장을 세계일보에서 해임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해 7월26일자 한겨레 1면 <박보희사장 해임요구>를 보면 정부는 김일성 조문을 위해 방북한 세계일보 발행인 박보희 사장을 해임하라고 세계일보사에 요구했다. 한겨레는 “공보처는 7월25일 박 사장이 지난 1965년 이래 미국 영주권자로서 '해외이주자는 주민등록을 할 수 없다'는 주민등록법(6조3항) 규정에 따라 성동구청에 의해 이달 18일자로 주민등록이 직권 정리됐다”고 했다. 주민등록 말소 때문에 세계일보 발행인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겨레는 “공보처는 이날 '대한민국에 주소를 두지 않은 사람은 정기간행물의 발행인이 될 수 없다'는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9조1항)에 따라 박사장이 세계일보 발행인이 될 수 없음을 세계일보사에 통고하고 위법사항에 대해 필요한 조처를 할 것과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소명하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박 사장은 차기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독립협회를 이끈 서재필의 조카로 지난 2019년 1월12일 사망했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