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안 쓰면 2만원" 전동킥보드의 벌금과 낡은 규제의 모순
애매모호한 헬멧 규제➊
말 많고 탈 많은 헬멧 착용
전동킥보드는 벌금 내지만
전기자전거는 벌금 대상 아냐
낡은 규제에 묶인 이상한 제도
헬멧 쓰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 잠깐 퀴즈 하나를 내겠습니다. 자전거와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 중 헬멧을 쓰지 않고 탔을 때 벌금을 내는 건 무엇일까요? 답은 전동킥보드 하나뿐입니다.
# 셋 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왜 전동킥보드만 벌금을 내야 할까요? 이유가 꽤 복잡합니다. 요약하면 전동킥보드는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로 분류하지만, 전기자전거는 자전거와 동급으로 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공유킥보드 운전자는 벌금을 내고, 따릉이 운전자는 헬멧을 쓰든 그렇지 않든 면죄부를 받는 겁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아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 그럼 이쯤에서 한번 더 질문을 던져볼까요?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자전거 운전자에게 벌금을 부과해야 할까요? 아님 (전기)자전거‧전동킥보드를 어설프게 나눠놓은 낡은 규제를 손봐야 할까요? 더스쿠프가 뒤죽박죽 헬멧 규제를 살펴봤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애매모호한 헬멧 규제' 1편입니다.
전동킥보드를 즐겨 타는 A씨. 집에서 지하철까지 버스 없이 꼬박 20분을 걸어야 하는 그에게 전동킥보드는 바쁠 때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어느날, A씨는 평소처럼 전동킥보드를 타고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A씨가 탄 건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유 킥보드'였습니다. 역 근처에 도착해 전동킥보드를 주차하고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가 귀에 꽂혔습니다. 경찰이었습니다. A씨는 헬멧을 쓰지 않고 전동킥보드를 탔다는 이유로 범칙금 2만원을 내야 했습니다.
법이 그렇다고 하니 A씨로선 할 말이 없었습니다만, 억울한 점도 있었습니다. 매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10분 잠깐 타기 위해 헬멧을 들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다고 공유 킥보드 운용 업체에서 헬멧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속이 상한 A씨는 범칙금 걱정을 할 바엔 전동킥보드를 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요즘 전동킥보드·전기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한편에 가지런히 비치된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를 한번쯤은 봤을 겁니다. 이런 것들을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 PM)'라 부릅니다. 전기를 써서 시속 25㎞ 미만으로 운행하는 1인용 이동수단을 뜻하는데, 차를 이용하기엔 가깝고 걸어가기엔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PM 시장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22년 PM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314.0%나 늘어난 18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운용 중인 PM 수도 2018년 9만대에서 2022년 20만대로 122.2% 증가했죠.
PM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 덴 공유 킥보드와 공유 자전거를 선택할 수 있는 공유 PM 앱이 인기를 얻는 게 한몫했습니다. 과거엔 버드·라임 등 해외 앱이 국내에 진출해 시장을 키웠지만, 요즘은 토종 앱들이 크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공유 PM 앱 '스윙(SWING)'을 운영 중인 국내 최대 PM 기업 '더스윙'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1.6% 증가한 524억9689만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7억4278만원에서 50억8901만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업계에선 더스윙이 공유 킥보드를 시작으로 공유 자전거, 공유 스쿠터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면서 빠르게 몸집을 키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더스윙은 8만여대의 PM을 운용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 PM 운용 대수(20만대)의 40.0%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더스윙은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PM 업계 최초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PM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만큼 수면 위로 떠오른 부작용도 숱합니다. 무엇보다 PM 이용 시 사고 위험이 적지 않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17건이었던 PM 사고 건수는 2022년 2386건으로 6년 새 20.4배가 됐습니다.
PM 이용자가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이 없는 건 아닙니다. 2021년 5월 정부는 기존 도로교통법에 'PM 이용 시 의무적으로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이를 어길 경우 PM 이용자는 2만원의 범칙금을 물어야 합니다(도로교통법 제156조). 전동킥보드·전기자전거엔 운전자를 보호해 줄 안전장치가 거의 없으니,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다는 취지에서 보면 언뜻 적절한 조치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헬멧 착용 의무 조항엔 소비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단 어떤 PM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범칙금 유무가 달라집니다. A씨의 사례를 한번 더 살펴볼까요? A씨는 헬멧을 쓰지 않고 전동킥보드를 탔다는 이유로 2만원을 냈습니다. 그런데, A씨가 전동킥보드가 아니라 전기자전거를 탔다면 범칙금을 내지 않았을 겁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두 PM의 작동방식 차이에 있습니다. 전동킥보드는 손잡이 부분에 달린 스로틀(Throttle·핸들에 장착된 일종의 레버)을 당겨 속도를 냅니다. 이 방식을 쓰는 PM은 도로교통법 제2조에 따라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합니다. 오토바이·스쿠터 등이 여기에 속하죠.
반면 대부분의 전기자전거는 페달을 밟아 운전자가 속도를 조절하는 페달보조 방식(Pedal Assist System·PAS)을 사용합니다. 스로틀 방식의 전기자전거도 있긴 합니다만, 공유 PM 기업들이 대부분 PAS 전기자전거를 채택하고 있어 좀처럼 보기는 힘듭니다.
이렇게 페달을 활용하는 PAS 전기자전거는 '자전거'로 분류합니다. 도로교통법 제2조는 PAS 방식의 전기자전거를 원동기장치자전거에서 제외했습니다. 자전거 이용자도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합니다만(도로교통법 제50조 4항), 혹여 걸리더라도 범칙금을 내진 않습니다. 똑같은 PM인데 전동킥보드는 벌금을 내고, 전기자전거는 자전거에 속하니까 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보다 더 위험하니까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만, 그렇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현행법은 PM의 속도를 '시속 25㎞ 미만'으로 못 박았습니다. 이를 넘을 경우 계기판에서 경고음이 뜨는 모델도 있죠. 반면 자전거는 운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페달을 밟아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속도 면에선 자전거가 PM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자전거 사고 건수는 적지 않습니다. 최근 5년간(2019~2023년) 발생한 자전거 교통사고는 총 2만7348건에 달합니다(도로교통공단). 이는 비슷한 기간 발생한 PM 교통사고 건수(5690건·2018 ~2022년 기준)의 5배 규모입니다.
그러니 PM 이용자 입장에선 불만이 나올 만합니다. 평소 전동킥보드를 즐겨 타는 김석훈(가명·30)씨는 "따릉이(서울시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 중 헬멧을 쓴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벌금이 없어서인지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면서 "법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PM 운전자만 적발해 벌금을 무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꼬집었습니다.
벌금이 없어서일까요? 김씨의 말처럼 따릉이를 탈 때도 엄연히 헬멧 등 안전장비를 착용해야 합니다만, 도심 속을 누비는 따릉이 이용자 중 헬멧을 착용한 이들은 찾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따릉이 이용자 수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따릉이 이용 건수는 2019년 1907만건에서 지난해 4490만건으로 3년 새 2.4배가 됐습니다. 그만큼 사고도 크게 늘었습니다. 따릉이 10만대당 사고 건수는 2016년 1.19건에서 2022년 2.16건으로 81.5% 증가했습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헬멧을 쓰지 않은 따릉이 운전자에게 벌금을 매겨야 할까요? 아님 전동킥보드의 규제를 손봐야 할까요? 해외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애매모호한 헬멧 규제' 2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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