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아트페어는 잊어라… ‘힙’한 예술 놀이터 ‘어반브레이크 2024’
다양한 콘텐츠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아티스트 중심 페스티벌
‘스트리트 아트, 미술, 테크, 음악, 패션, 댄스까지!’
독특하고 창의적인 모든 것들이 모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예술축제’를 지향하는 ‘어반 브레이크 2024’가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어반 브레이크에선 시각예술의 경험을 확장하는 아트 페스티벌이 펼쳐지고 있다. 그동안 어반 브레이크는 거리의 미술과 현대미술을 한데 모아 트렌드를 이끄는 예술의 장으로 평가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선 ‘예술을 통한 Crazy Experience(미친 경험)’을 테마로 테크, 패션, 뮤직, 브랜드 등 다양한 콘텐츠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아티스트 중심의 페스티벌이 펼쳐졌다.
■ 기존의 아트페어는 잊어라…재구성한 시각예술 경험의 확장판
전시장에 들어서면 ‘디지털 그래피티’ 벽을 우선 마주한다. ‘나도 그래피티 아티스트!’ 코너로 스프레이 디바이스로 관객이 직접 예술가가 돼 그래피티를 그려보는 참여형 디지털 그래피티 프로그램이다. 벽에 그리는 그림에서 시작된 거리의 예술을 체험해볼 수 있다.
올해는 참여 갤러리 수를 대폭 줄였다. 기존의 아트페어 형식의 공간 형태를 탈피해 시각, 청각은 물론 후각, 미각, 촉각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이 ‘오감만족’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누적 작가 200명을 소개한 오픈콜은 국내외 이머징 아티스트 37명이 참여해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화이트큐브 부스가 아닌 작가 개개인의 독특한 특징을 살려 레슬링링, 아뜰리에, 파티룸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들을 맞이해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최근 가장 ‘핫’한 작가로 떠오른 김태기 작가는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Wrestle PLAY-Urban Slam’이라는 제목 아래 ‘프로레슬링’ 연작과 ‘챔피언 벨트’ 시리즈를 관객 참여형 전시로 선보인다. 프로레슬러처럼 가면을 쓰고 링 위에 올라 챔피언 벨트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 또 그 순간의 과정에 몰입하는 진정한 챔피언의 자세을 이야기한다. 관객은 링에 올라 실제로 레슬링을 하며 인생을 우승자, 챔피언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김우진 작가의 조각 작품은 전시 현장의 생동감을 더했다. 미술 콜렉터로 유명한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뷔가 과거 한국 국제 아트페어(KIAF)에서 그의 작품을 구매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김 작가의 작품은 미술관과 갤러리는 물론 현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서울역 야외광장 등에 설치되며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어렸을 적 사육사가 꿈이었다던 김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의자에서부터 시작해 알루미늄, 파이프,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한 재료에 빨강, 노랑, 초록의 색을 입혀 숨을 불어넣었다. 김 작가는 “전시 현장을 방문하신 분들이 각자의 자유로운 감상으로 작품을 즐겨달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화랑 중 갤러리 가이아의 라이언 킴(Hryanskim) 작가의 작품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 인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한국, 미국, 유럽 동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흡수한 독특한 정서는 예술로 재탄생했다.
라이언 킴 작가는 자연과 신화 등에서 받은 영감을 동식물로 의인화하며 그 속에 자신이 사회에서 느꼈던 다양한 강점을 때로 풍자하거나 숭배로 드러냈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 나오는 전설적인 새이자 절반은 인간, 절반은 새의 모습을 한 ‘하르피이아(Harpy)’, 물과 땅 모두에서 살 수 있으며 지구가 멸망해도 끝까지 살아남을 게를 가장 화려한 모습의 식물로 변형시킨 ‘게화(Carcinisation)’ 작품 등이 그러하다. 작가는 여러 겹의 색상을 레이어링하고, 흘리고 튀기며, 때로 디지털 방식과 결합하고 그 위에 눈알 소품과 이끼를 덧붙여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힙’한 놀이터…현재의 이슈, 가치를 담아내다
‘MZ세대의 가장 힙한 놀이터’란 별칭답게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어반 아트페어는 현시대의 이슈와 가치,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절히 아울렀다.
국내 독보적인 스트리트 댄스 아티스트 리아킴과 거리의 흔적을 사진과 회화, 패션으로 연장하는 아티스트 오와칠호(OWA-7HO)가 함께한 의류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는 그 중 하나다.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플래시가 연일 터지며 눈길을 사로잡은 이 곳은 리아킴과 오와칠호의 협업으로 단순한 ‘의류 재활용’을 넘어서 독창적인 제3의 결과물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오와칠호는 녹슨 철문의 벗겨지고 빛 바랜 모습, 콘크리트 벽의 부서진 조각 등 거리의 흔적을 사진과 회화, 패션으로 담아내고, 댄서 리아킴은 본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몸짓의 언어를 펼치는 아티스트.
무대에서 수많은 옷을 입는 리아킴은 문득 입고 버려지는 무수히 많은 옷들이 아깝다고 느꼈다. 오와칠호는 리아킴의 무대 안무 후 버려진 원밀리언 스튜디오에서 잠자고 있던 의상들을 해체했다. 상의와 하의, 바지와 치마를 각각 조각내 이어붙이고 자르고 새로운 팔과 다리를 탄생시켰다. 리아킴은 바톤을 이어받아 그림을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의 영감을 바탕으로 안무를 제작, 영상으로 담아냈다.
리아킴은 영상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를 통해 직접 버려진 천과 물감으로 작업을 하며 작품도 선보였다. 쓸모없어진 천은 새로운 색을 입으며 재탠생했고, 리아킴, 혹은 그를 둘러싼 이야기로 작품이 됐다.
그는 “망설이다가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번 만들어보자 마음먹었다. 현장에 남아있던 흔적들, 쓸모없어졌지만 내가 버리고 싶지 않은 물건들이 어느 상자에 담겨 보관되기보다 그 이야기가 담겨 벽에 걸리고 연결되면 하나의 작품이라 생각했다”면서 “옷을 여러 개 놓고 색감 배치를 가장 많이 고려했는데 즐겁게 작업했다. 내 인생의 첫 작품들이다 보니 제목도 ‘제1호’, ‘제2호’다”라고 말했다.
오와칠호 작가들은 “각자의 장르는 다르지만 거리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예술로 풀어내는 방식과 세계관이 서로 비슷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글로벌 아티스트도 대거 참여했다.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명예훈장을 수상한 전설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 원(JONONE, 미국), 자연 생태를 예술로 표현하는 스페인 아티스트 덜크(DULK), 2011년생 천재 아티스트 니콜라스 블레이크(미국) 등 10여 명의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어반 브레이크에 참가했다.
2022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는 ESG 아트 프로젝트 ‘Art for Tomorrow’는 올해를 기점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장됐다.
세계적인 작가 덜크와 2011년생 천재 아티스트 니콜라스 블레이크를 비롯한 글로벌 영재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멸종위기 동물 특별전에선 자연의 아름다움, 기후위기 등의 주제의식을 담으면서도 유니크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AI와 소설이 결합한 AI ART 특별전은 조지오웰의 소설 ‘1984’와 ‘동물농장’, SF 신간소설 ‘퍼스트 컨텍트’를 구현한다. 또 스트리트 컬처와 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 어반브레이크 2024만을 위한 한정판 익스클루시브 아이템들도 색다른 즐길 거리다.
지난 2020년 스트리트 컬처, 갤러리, 크리에이터, 아티스트, 스타트업 등이 한데 모여 ‘도시를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처음 기획된 어반브레이크는 기존 페어의 틀, 주제에서 벗어나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융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스트리트 페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미술과는 다른 형태의 무언가를 선보이고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융합하며 그 경계에 있는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어린왕자를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며 올해로 3번째 어반브레이크에 참여한 강석태 작가는 “페어들이 판매를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데 반해 어반브레이크에선 작가들이 자신의 역량과 끼를 마음껏 펼치도록 무대를 주고 그동안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독려해 작가 발굴과 성장, 나아가 새로운 문화예술 분야가 단단하게 확장되도록 단계별로 나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혜헌 작가는 “새로운 장르를 펼치는 작가들이 참여할 페어가 많이 없는데, (어반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는 자리”라고 평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축제는 14일까지 이어진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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