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다 함께 살아갈 힘 기른다[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요즘 여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한동훈은 지난 2월,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다다름하우스’란 다가구주택을 방문했다. 당시 그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여기서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그를 마중 나온 청년 장애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는 구도에 카메라 셔터음이 폭발했다. 이날 떠들썩한 방문 일주일 후, 국민의힘은 아동양육시설을 떠나 홀로 생활을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에게 맞춤형 주택과 전세금 지원을 강화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한동훈은 알았을까? 그가 자립준비청년을 만날 장소로 고른 다다름하우스에는 이날 그를 안내한 청년과 같은 장애인이 16가구 산다는 사실 말이다. 자립준비청년 4가구보다 이들이 훨씬 더 많지만, 국민의힘이 다다름하우스 방문 이후 공개한 공약에서 장애인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동훈이 알아야만 했던 중요한 사실은 또 있다. 다다름하우스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인데, 이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현 정부에서 거의 누더기가 될 뻔했다는 점, 그리고 다다름하우스는 그 매입임대주택 정책의 취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집이라는 점이다.
매입임대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의 새로운 전략으로서 2004년 등장했다. 그전까지 임대주택의 전형은 한마디로 ‘변두리 대단지’였다. 도시 외곽에, 가능한 한 빽빽하게 쌓아 올린 닭장 같은 아파트로 지었다. 이것이 ‘가성비’가 가장 좋은 모델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대단위 임대주택은 그것이 위하고자 했던 저소득층을 도시 가장자리로 몰아내고 그곳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른바 ‘슬럼화’다. 이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공공이 대형 임대단지를 지을 만한 땅을 찾기도 어렵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임대주택을 도심에 ‘침투’시키기로 한다. LH가 기존 주택을 사들여 저소득층에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이 탄생했다. 올해로 매입임대주택은 도입 20년을 맞았다.
다다름하우스는 매입임대주택 중에서도 맞춤형, 테마형, 특화형 따위로 불리는 집이다. 장애인이 살 집은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해 입지 선정부터 공간 설계까지 모두가 장애인의 삶을 생각하는 과정이 채웠다.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 대표 조준호는 그 생각을 “시설 아닌 지역에서의 삶”이라고 요약한다.
‘장애인의 집’과 관련해 다다름하우스에 담긴 시대적 흐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탈시설’이다.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할 때, 보호시설 수용 말고 장애인이 택할 수 있는 대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다. 장애인이 시설을 거부하고 살아갈 집은 장애인이 가족과 함께 살아온 바로 그 장소, 그 지역에 있어야 한다.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비장애인보다 더 더디고 더 어려운 장애인에겐 아주 절실한 조건이다. 비장애인에게는 평범한 계단 한 칸도 장애인에게는 무지막지한 벽이 되듯이. 엔젤스헤이븐에는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장애인 부모가 많았다. 엔젤스헤이븐은 1959년부터 전쟁고아를 돌보는 은평천사원을 운영하며 은평구에서 기반을 다졌다. 은평구에만 장애인 2만명이 산다. 하지만 그들이 자립해 살 만한 집은 은평구 어디에도 없었다.
장애인 거주하는 LH 매입임대주택
마당·실내 라운지 등 커뮤니티 공간
‘공동체로 함께 사는 삶’ 고민 담겨
외곽 아닌 도심에 있는 것만으로도
통합 위한 ‘소셜믹스’는 꽤 성공적
약자를 위한 공간, 완벽하지 않지만
존재 그 자체로 가능성을 가진다
그래서 엔젤스헤이븐은 장애인의 집을 직접 짓기로 했다. 은평재활원,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은평대영학교 등 엔젤스헤이븐 산하기관이 밀집한 구산동에는 법인 소유 땅이 제법 있다. ‘안암생활’ ‘보린주택’ 등 청년·노인 맞춤형 주택을 여럿 기획한 아이부키와 머리를 맞댔다. 이들이 주목한 건 LH의 매입임대주택 제도 중에서도 민간이 새로 지으려는 주택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LH가 매입하기로 약속하는 ‘매입약정형 임대주택’이었다. 엔젤스헤이븐과 아이부키는 장애인 이동에 걸림돌이 되는 턱을 없애거나 문을 넓힌 ‘유니버설 디자인’ 주택, 장애인 직업훈련과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유주방·카페를 갖춘 공동체 주택을 기획했다. 2022년 10월, 마침내 새하얀 다다름하우스가 구산동 언덕에 우뚝 섰다.
다다름하우스에는 모두 53가구가 산다. 현재 16가구가 장애인, 4가구가 자립준비청년이다. 나머지는 장애인도 자립준비청년도 아닌 만 19~39세 청년들이 시세의 50% 이하 월세를 내고 산다. 청년 누구나 입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연 소득 4000만원 이하란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답을 써내야 한다. “당신은 장애인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다다름하우스는 모든 입주민에게 현관문 밖으로 나오자고 제안하는 집이다. 일반 주택이라면 가구 수를 늘려 분양가나 더 챙기지, 이런 게 왜 있냐고 물을 법한 커다란 중정과 마당, 실내 라운지가 있는 이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연결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엔젤스헤이븐과 아이부키의 역할이다. 조준호는 제도권에서 소외된 사람들, 가령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사람들이 다다름하우스에 들어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우호적인 공간에서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집을 꿈꾼다.
다다름하우스는 매입임대주택의 존재 이유, 작동 원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 도시가 사회적 약자의 집에 허락하는 입지는 어디인가? 다다름하우스는 사회복지법인이 뿌리를 탄탄하게 내린 동네에 있다. 장애인이 살 임대주택이 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덕분에 주변의 장애인들은 가족을 떠나더라도 지역은 떠나지 않아도 된다. 임대주택을 두고 자꾸 ‘소셜믹스(분양·임대가구를 한 건물에 섞어 짓는 것)’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다름하우스처럼 시설과 외곽 단지를 벗어나 도심에 존재하는 건 그 자체로 꽤 괜찮은 소셜믹스다. 여기에 장애인·비장애인 통합을 궁리하는 적극적인 운영 주체도 있다.
이제 장애인들은 다다름하우스란 모델을 가졌다. 그럼, 잊을 만하면 비극을 전하는 ‘세 모녀’에게, 고독한 죽음을 생각할지 모를 홀몸 중년 남성에게 필요한 임대주택은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까? 20년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고민해야 할 건 바로 이런 질문이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LH가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에 임대주택을 사들인다는 점을 꾸준히 비판했다. LH는 매번 도심에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고 반박했다. 애초 민간이 분양 장사를 하려고 지은 집이라면 당연히 입지의 경쟁력을 고려했을 테고, 공공이 그 집을 매입하는 데도 당연히 그만큼 더 큰 비용이 든다. 물론, 모든 매입임대주택을 적절하게 공급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매입임대주택이 혈세낭비 원흉인 건 아니다. 어디선가는 그 비싼 값을 ‘비용’이 아니라 ‘지원’이나 ‘투자’라고 부를 수 있다. 조준호는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면, 다다름하우스 같은 집도 5%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기조가 줏대 없이 요동치는 건 좀 걱정스럽다. LH 매입임대주택 매입량은 2019~2022년 평균 약 1만8700개에서 2023년 4610개로 급락했다. ‘비용’을 줄이겠다고 나선 탓이다. 그런데, LH는 올해 갑자기 매입 목표량을 3만7000개로 대거 늘렸다. 전세사기 이후 전월세 시장 불안, 신축 아파트 공급 불황 등을 의식해 정책이 급변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부디 다다름하우스를 다시 떠올리며 임대주택이 있어야 할 곳, 있어야 할 모습을 생각하길 바란다.
켄 로치는 마지막 연출작 <나의 올드 오크>에서 공동체 공간의 필요성, 그곳에서 원주민과 난민 등 이질적 존재들의 조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역설했다. 영화 속 동네 펍 ‘올드 오크’가 그랬듯, 다다름하우스 역시 완벽하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이 집이 지향하는 공동체, 장애인·비장애인이 어울리는 커뮤니티는 현재 예산 등 현실적 이유로 처음 예상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어쨌든 여기엔 그들을 위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이 주는 가능성이 있다. 다르지만 함께 살기는 계속된다. ‘다 다른 존재가 다다른 집’, 다다름하우스에서.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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