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 편파 판정에 '주먹감자' 날린 국민영웅…개최국 발칵 뒤집은 세리머니 [스프]

권종오 기자 2024. 7.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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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포츠+] 소련 관중 향해 항의 제스처 날린 폴란드 국민영웅
이란 축구 대표팀의 카를루스 케이로스 감독은 지난 2013년 6월 울산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에서 한국 벤치를 향해 이른바 '주먹감자'를 날리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저질러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주먹감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욕입니다. 이 제스처의 명칭은 나라에 따라 다양하지만 '브라 도뇌르'(bras d'honneur, 영광의 팔)라는 고상한 프랑스 이름으로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코자키에비치 제스처'라고 합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딴 브와디스와프 코자키에비치가 자신에게 야유를 퍼부은 소련 관중에게 '주먹감자' 제스처로 앙갚음을 한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반쪽 올림픽' 1980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1979년 겨울,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대거 보이콧했고 대한민국도 여기에 동참해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보이콧했던 유일한 올림픽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그래서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졌습니다.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 열린 이 대회는 특히 육상 종목에서 개최국 소련을 밀어주기 위한 노골적인 편파 판정이 이뤄져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육상 종목에 걸린 금메달 38개 중에서 소련이 가장 많은 15개를 가져갔고 동독이 11개로 뒤를 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을 이용해 소련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고 했는데 메달 순위에서도 소련은 금메달 80개로 압도적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2위는 동독(금메달 47개)이었습니다.
 

황당한 세단뛰기 편파 판정

최악의 편파 판정은 육상 남자 세단뛰기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때 소련 선수 2명(야크 우드매에, 빅토르 사네예프)과 브라질(올리베이라), 호주(이안 캠벨) 선수가 우승을 다투던 상황이었습니다. 사네예프는 당시 나이 35살로 베테랑. 1968년, 1972년, 1976년 올림픽에서 세단뛰기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해 이 대회에서 4연패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드매에는 당시 26살로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습니다. 올리베이라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 1979년 육상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로 당시 세단뛰기 세계 기록(17m 89) 보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안 캠벨은 23살 신예로 1979년 육상 월드컵 동메달을 획득한 떠오르는 유망주였습니다.

호주의 이안 캠벨

그런데 심판들이 올리베이라와 캠벨에게 연이어 실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세단뛰기에서 실격 판정을 받는 경우는 대부분 구름판을 넘어가서 밟을 때인데, 이때는 이것 말고도 'SCRAPE FOUL'이라는 것을 적용했습니다. 영어로 SCRAPE는 '긁다, 긁어내다'라는 뜻인데 도움닫기를 할 때 한쪽 발을 바닥에 끄는 행위를 하면 실격 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육안으로 봐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심판들은 이들이 발을 끌었다며 실격을 선언했습니다. 이 규정은 이때 크게 논란이 된 이후 폐지됐습니다.

세단뛰기는 모두 6번 뛰어서 가장 잘 나온 기록으로 승부를 가립니다. 그런데 캠벨은 6번의 점프 중에서 무려 5번이 실격이었습니다. 딱 한 번, 2차 시기 16m 72만 기록으로 인정됐습니다. 그런데 실격 처리된 것 중에는 17m 60 정도 뛰었던 점프도 있었습니다.

당시 올림픽 기록이 17m 39였고, 이때 소련 우드매에의 우승 기록이 17m 35인 것을 고려하면 올림픽 신기록에 해당하고 우승까지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점프가 무효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캠벨은 결국 5위에 그쳐 메달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올리베이라도 6번의 점프 중에서 4번이나 실격당했습니다.

특히, 캠벨과 올리베이라 두 선수 모두 4차 시기부터 6차 시기까지 3연속 실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올리베이라도 실격 처리된 것 중에 18m가 넘는 세계 신기록도 있었습니다. 올리베이라는 결국 3차 시기에서 기록한 17m 22로 동메달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호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심판들은 모두 소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국제육상연맹에서 파견한 제3국 심판들도 있어야 했지만 모스크바 조직위원회는 이들을 모두 철수시켰습니다.

이런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소련 선수 2명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드매에가 17m 35로 금메달, 4연패를 노렸던 사네예프는 17m 24로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특히 사네예프는 마지막 6차 시기에서 가장 좋은 17m 24를 기록하며, 2위를 달리던 올리베이라에 2cm 차로 역전했습니다. 올리베이라가 4차 시기부터 6차 시기까지 3연속 실격되는 상황에서 역전한 것입니다. 두 소련 선수는 실격 횟수도 2번(우드매에)과 1번(사네예프)에 불과했습니다.
 

코자키에비치, 소련 관중 향해 '주먹감자'


이렇게 세단뛰기에서 한바탕 판정 파문이 불거지고 6일 뒤에 문제의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 경기가 열렸습니다. 논란의 주인공은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코자키에비치. 경기가 열린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과 결승전도 이곳에서 열림)은 7만 관중으로 가득 들어찼습니다.

코자키에비치는 1979년 유럽 실내육상선수권 우승자로 모스크바 올림픽 두 달 전인 1980년 5월에는 5m 72를 넘으며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코자키에비치는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는데 주요 경쟁자는 1980년 유럽 실내육상선수권 챔피언이었던 개최국 소련의 콘스탄틴 볼코프였습니다. 코자키에비치는 결선에서 쾌조의 컨디션으로 순항했습니다. 5m 70까지 5차례의 높이 모두 1차 시기에서 가뿐히 뛰어넘었습니다. 그런데 바를 성공적으로 넘은 이후에 사달이 났습니다.


5m 70 바를 넘고 착지한 다음에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는데 팔동작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른바 '주먹감자'를 날리는 동작이었습니다. 이어서 5m 75도 1차 시기에 성공하며 소련의 볼코프(5m 65)를 누르고 금메달을 확정했는데 이때도 관중석을 향해 똑같은 팔동작을 해 보였습니다. 이후 5m 78 세계 신기록에 도전했는데 2차 시기에서 성공한 뒤 환호했습니다.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소련 "코자키에비치 금메달 박탈해야"

개최국 소련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소련과 폴란드 양국의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됐습니다. 소련 정부에서는 코자키에비치가 소련 국민들을 모욕했다며 그의 금메달을 박탈하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폴란드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폴란드 측에서는 "코자키에비치가 팔 근육이 아파서 한쪽 손으로 감싸며 세리머니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런 동작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하며 코자키에비치를 감쌌습니다. 결코 '주먹감자'가 아니었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결국 금메달 박탈까지는 안 이뤄지고 넘어갔습니다. 소련은 이후 코자키에비치를 자국 입국 금지자 명단에 올리는 조치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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