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쏟아지는 ‘영피프티’ 왜
“책임의식 부재” 비난에 X세대 “젊게 살고 싶은 게 죄냐”
[주간경향] 이 정도로 비판받으리라고는 아마 당사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61)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달 그가 내놓은 개념 ‘영피프티(Young Fifty)’ 얘기다.
김 교수는 지난 6월 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영피프티 개념을 선보이며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1970년대생이 50대에 접어들었어요. 이들은 체력은 40대이고, 패션은 30대 같아요. 회사에서 나이는 X세대 부장님인데 퇴근 후에 밴드 활동을 한다거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면서 신입사원과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기도 해요. 연령을 뛰어넘어 다른 세대와 계속 교류하고 배우고, 이런 성향들이 강하죠.”
영피프티란 조어가 알려지자, 20~30대 이용자가 많은 X(옛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주로 이런 내용이다. “얼굴은 50대, 체력은 40대, 패션은 30대. 끔찍한 혼종 아니냐”, “영포티였던 40대가 50대가 되니까 영피프티가 나온 거냐, 지겹다.” 반면 젊은 중년으로 ‘지목된’ X세대 당사자들은 청년들의 이런 냉소가 의아하다. “예전 부장님 세대보다 젊은 거 맞는데 왜 이리 비난하나. 젊게 살고 싶은 게 죄냐.”
‘영피프티’는 왜 욕을 먹을까. 짧게 고찰해보자.
■영피프티 하면 떠오르는 ‘그들’
대중문화가 꽃을 피웠던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X세대는 개인주의를 내면화한 ‘신인류’였고 소비문화·대중문화를 적극 향유한 첫 세대였다. 장년에 접어든 이들을 다시금 새롭게 명명해 소비 진작을 꾀하는 것은 어쩌면 마케팅 업계의 생리 아닐까. 누군가의 말대로 김난도 교수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영피프티 개념을 향한 비난과 비판이 쏟아질까. 영피프티 하면 떠오르는 ‘그들’이 문제다.
“나이에 걸맞은 책임을 잊은 기성세대를 향한 경멸이 깔려 있어요. ‘수박’(더불어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을 부르는 멸칭)이란 유치한 유행어를 만들어 상대를 조롱하는 걸 힙하다(멋지다)고 여기는 행태 혹은 집값 상승으로 자본을 축적한 기득권이면서 동네에 청년주택 들어온다고 하면 집값 떨어질까 봐 반발하는 행태들이요. 이런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 젊다고 하니 참 어른답지 못하다 싶은 거죠.”
청년정책 싱크탱크 ‘청년정치 크루’의 대표 이동수씨(36)가 “영피프티 비판이 쏟아져 나온 배경엔 정치·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본다”며 한 말이다. ‘영피프티’는 사실 조어 의도와 관계없이 계급성을 내재한 개념이다. 퇴근 후 밴드 활동이나 30~40대로 보일 만큼의 외모·체력 관리는 대기업 정규직 등 중상위 계층이 아니라면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2030세대는 이 점을 빠르게 눈치채고 조롱을 보낸 것이 아닐까. 30대 여성 직장인 A씨 역시 영피프티를 ‘기득권의 젊음 소유욕’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반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집 마련의 기회, 양질의 일자리, 덜 경쟁적인 문화를 누리며 기득권이 됐는데 불평등 심화 등 세상이 이 꼴이 난 것에 대한 책임의식은 없는 것 같아요. MZ세대 다수는 50대가 돼도 영피프티들만큼의 구매력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모든 걸 다 가지고 젊음까지 갖겠다니,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닌가요.”
한마디로 2030에 ‘잘사는’ X세대는 86세대 엘리트들과 함께 지금의 사회구조를 만든 또 다른 기득권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젊음이란 자산까지 거머쥐려고 하다니, 적어도 성찰적 태도는 아니지 않으냐는 게 2030의 얘기다.
2030의 목소리 중엔 직장에서 마주하는 ‘영피프티’의 구체적 얼굴들을 떠올리며 나오는 비판도 있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30대 남성 B씨는 ‘젊게 살겠다는 X세대’가 왜 욕먹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게 X세대는 직장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꼰대는 좀 꼰대다워야 하는데 관리자 자리에 있으면서 욕먹기 싫어서 그 역할에 소극적이에요. 게다가 뒤에서는 ‘MZ스러움’에 대한 흉을 가장 많이 보는데, 그러면서도 막상 (젊어 보이겠다고) MZ 따라 하면 보기가 좀 그렇죠. 나잇값을 못 하는 것 같고….”
일반화하기 힘든 B씨의 개인적 경험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유사한 지적을 한 이는 그만이 아니었다. X세대 당사자이기도 한 40대 후반의 여성 C씨는 이런 말을 했다.
“X세대 사회성이 MZ보다 떨어진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어요. 저, 그거 되게 와닿았어요. 1990년대에 4년제 대학을 다닌 또래에 국한해 말하자면, 광장과 계급보다는 일상의 혁명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막상 대의를 무너뜨렸을 때 뭘 다시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이 없는 채로 완전히 상품화된 대중문화 복판에 있었달까요. (그러다 보니) 어른스러운 이가 별로 없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C씨가 말한, X세대 사회성 점수가 MZ세대보다 낮다는 연구는 실제로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2년 12월 발표한 ‘코로나19 시대 MZ세대의 사회성 발달 연구’를 보면, 성인·청소년 527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분석 결과 사회성 점수가 평균 이상인 유형(일반패턴의 높은 사회성 유형)은 Z세대에 가장 많았고 X세대에 가장 적었다. 반면 사회성 점수가 가장 낮은 유형(비일반 패턴의 불안정한 사회적 행동 유형)은 X세대에 가장 많았다. X세대는 그러면서도 본인의 사회성 발달 수준을 평가하는 항목에선 Z세대와 함께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내가 사회생활 좀 잘하지’라고 생각하는 자칭 영피프티가 있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볼 만한 연구 아닐까.
■젠더적 함의
영피프티가 욕먹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젠더적 함의도 짚어야 한다.
사실 영피프티 논란은 기시감이 있다. 영피프티의 10년 전 버전인 ‘영포티’ 역시 마케팅 연구자들이 만들었고, 2030세대는 이를 우스운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만들었다. 애초 제안된 영포티 개념이나, 희화화된 영포티 밈이나 가리키는 대상은 ‘남성’인데 밈의 내용은 사용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일단 여성 청년들에게 영포티 밈은 2018년 나온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박동훈 부장에 자신을 이입하며 나이 어린 여성과의 교감을 꿈꾸거나, 사생활과 외모에 대해 거침없이 묻고 참견하는 ‘선 넘는 중년 남성’, 소위 ‘개저씨(개+아저씨)’의 이미지다.
반면 남초 커뮤니티에서 영포티엔 주로 ‘서윗(sweet)’이 붙는데, 이는 이중성에 대한 조롱이 담긴 수식이다. 2030 남성들은 영포티가 성장 과정에서는 성차별의 수혜를 보고, 이제 와 짐짓 성평등을 가르치려 한다고 본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20대 남성이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라면 영포티나 영피프티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자예요. 그런데 그 ‘여유’는 그들이 사실 성차별주의의 수혜자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거든요. 자신들의 권력을 성찰하고 분배할 수 있는 사회정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그것이 적대적 성차별의 토양을 만들었음에도 그저 20대 남성을 한심하게만 보죠.” 결국 다시 책임의식 부재의 문제로 돌아온다.
■“민망합니다”
여기까지 읽은 X세대와 50대는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우리를 젊다고 정의해 달라’고 외친 적은 없지 않은가.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는 X세대 남성은 기자에게 ‘당사자의 변’으로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영피프티 정의를 누가 내리고 있느냐 하면 대개 86세대예요. 그들은 ‘사회 트렌드는 여전히 우리가 이끈다’는 의식을 여전히 가진 게 아닐까요. 영피프티요? 부끄럽고 민망하죠.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영피프티를 스스로 사용하지 말자’쯤 되겠네요.”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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