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45분, 지금도 눈이 떠진다"…오송참사 유족의 1년

성소의 기자 2024. 7.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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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대피시키고 못 나온 버스기사 故이수영씨 아내
집 앞 마트 갈 때도 따라가던 남편…하루아침에 잃어
참사 이후 멈춘 유족의 시간…”앞으로 갈 일이 없다”
“1년 가까이 사건 진상은 미궁 속”…거리 나선 유족
[청주=뉴시스] 성소의 기자 = 오송 참사 시민대책위원회 등이 지난 10일 오송 참사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청주 사창사거리 지구대~청주지검~청주교대까지 6.6㎞를 행진하고 있다. 故이수영씨 아내 박진아씨(가운데)가 행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so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청주=뉴시스]성소의 기자 = "잠을 자다 보면, 여기서 막 덩어리 같은 게 올라와서 깨요. 그게 아침 저녁이면 괜찮은데 꼭 새벽 2시45분이야. 새벽 2시45분은, 나한테는 멈춰있는 시간이에요."

지난해 7월15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로 목숨을 잃은 고(故)이수영씨(사망 당시 58세) 아내 박진아씨(59)는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진아씨는 알람을 맞춘 것 마냥 새벽 2시45분에 눈이 벌컥 떠진다. 2시45분은 이씨가 출근 준비를 위해 일어나던 시간이다. 출근 전 이씨가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나갈 채비를 마치면 방에 누워있는 진아씨에게 다가와 다리를 주물러주곤 했다. 2007년 흉선암 수술을 받고 뼈마디가 자주 아리는 진아씨의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진아씨는 매일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이씨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싸줬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그 알람소리에 내가 깨서, 같이 일하는 거예요." 진아씨가 말했다.

"집 앞 마트 갈 때도 따라가던 남편"…하루아침에 잃어

진아씨의 남편 이씨는 지난해 7월15일 충청북도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됐을 당시 747번 버스를 운행하던 기사였다. 미호강 인근에 임시로 쌓아둔 둑이 무너지면서 6만t(톤)의 물이 삽시간에 차도를 덮쳤을 때 이씨가 몰던 버스가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순식간에 버스가 물에 잠겼지만, 이씨는 승객들을 대피시키느라 버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빨리 나오시라'는 시민의 외침에도 이씨는 나머지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한다며 버스로 향했고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이씨를 '의인'이라고 칭했다.

평소에도 이씨는 책임감 강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이었다. 39년을 같이 산 아내 진아씨에게는 집 앞 마트를 갈 때도 따라가는 단짝 같은 남편이었고, 직장에서는 근면성실한 베테랑 운전사였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이씨가 몰던 747번 버스는 청주공항에서 오송역까지 다섯번 밖에 서지 않는, 회사가 신임하는 운전기사에게만 앉히는 자리였다. 사고가 나기 불과 두달 전에는 회사에서 선행상도 받았다.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오송참사 유가족이 지난 11일 충북 도청 정문 앞에서 열린 참사 1주기 결의대회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헌화를 하고 있다. 2024.07.11. juyeong@newsis.com


어딜가나 든든하고 신체의 일부와도 같던 남편과의 헤어짐을 진아씨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사고가 났던 작년 7월15일 아침, 티비에서 '오송역 근처 지하차도가 물에 잠기고 있다'는 뉴스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그 현장에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날 오후 이씨 부부는 사돈댁과 천안으로 놀러가기로 했고, 이씨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집에 오기로 돼있었다. 오전 10시쯤 진아씨가 준비물 관련해 상의할 게 있어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긴 신호음만 이어졌다. ‘운전 중이라 전화를 못 받는가보다.’ 진아씨는 의심 없이 넘겼다.

진아씨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오후 12시쯤이었다. 다시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신호음만 가고 받질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진아씨는 아들을 시켜 이씨가 다니는 회사 동일운수에 전화해보라고 했고, 아들은 회사로부터 "기다려보라"는 말만 전해 들었다.

무언가 나쁜 일을 직감한 진아씨는 이씨의 평소 친한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입을 열길 망설여하는 동료기사를 채근한 끝에 듣게 된 말은 이씨의 버스가 침수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미 버스가 물에 끝까지 잠겨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후였다.

가족과 함께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갔다. 구조당국이 차도 100m 앞에서 이씨를 발견한 그날까지 이틀 밤을 꼬박 샜다. 17일 새벽 1시5분, 잠깐 차에서 눈을 붙이던 진아씨에게 큰 아들 중훈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씨가 인양됐다는 소식이었다. 진아씨는 영안실에 안치된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고 까무라쳤다.

"전날 제가 바리깡으로 남편 머리 깎아주고, 무스도 발라줬거든요. 그 무스 발린 2㎝ 길이 스포츠 머리 그대로더라고. 그래서 내가 남편한테 그랬지. '내가 엊그저께 머리 잘라준 건데, 그게 마지막이었네. 잘 가, 여기 걱정하지 말고. 아이고 힘들게 간다. 잘 가.'"

[청주=뉴시스] 조성현 기자 = 지난해 7월20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버스환승센터에 마련된 지하차도 침수 참사 초모 공간에 추모의 글이 붙어있다. 2023.07.20. jsh0128@newsis.com

참사 이후 멈춘 유족의 시간…”앞으로 갈 일이 없어”

슬픔은 온 몸으로 찾아왔다. 사고 충격으로 진아씨는 후각의 60%를 상실하고, 몸의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집 안 어딜 가나 남편의 흔적이 보여 10년째 살던 34평짜리 집도 떠났다. 그래도 남편 생각이 나 하루에도 몇번이고 통곡한다.

부엌에 있는 정수기를 보면 찬물을 자주 마시는 이씨의 표정이 떠오르고, 설거지 선반을 보면 몸이 안 좋은 진아씨 대신 그릇을 헹궈주는 이씨의 뒷모습이 겹쳐진다. 밤 11시에는 일을 마친 이씨가 ‘드르륵’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올 것만 같다. 새벽에 눈 뜨면 납골당부터 찾는다. 납골당 매점 주인이 이씨의 납골함을 보며 무너지는 진아씨에게 "이제 그만 오시라"고 말할 정도다.

진아씨는 '그날 이후로 시간이 멈췄다'고 말한다.

"나뿐만이 아니고, 그냥 그날로 다들(유족들) 멈춰 있어요. 앞으로 갈 일이 없어. 다른 분들은 직장 다니니까 거기에 얽매이다 보면 조금씩 잊혀지고 괜찮아지겠지. 근데 나 같은 경우는 24시간 이렇게 있잖아. 그래서 나는 멈춰있어요."

[청주=뉴시스] 이도근 기자= 충북 오송 참사 유가족·생존자, 시민단체 등이 지난 11일 오후 충북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을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 참사현장인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시작으로 이날 충북도청까지 청주시내 곳곳을 도보행진하는 '기억과 다짐의 순례'를 진행했다. 2024.7.11. nulha@newsis.com

“1년이 다 됐지만 ‘그날의 진상’ 알 수 없어”…거리로 나선 유족

참사 이후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나서야 이씨의 죽음은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진아씨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씨가 승객들을 대피시켰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를 확인할 길도 없었다.

진아씨는 수사당국에 사고 당시 현장이 기록된 블랙박스 확인을 요청했다. 당국은 블랙박스 1개가 '먹통'이라고만 했다. 진아씨가 직접 요청해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까만 매직으로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화면이 나왔다. 진아씨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유가족 면담 신청을 해서 수사 당국과 마주앉은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건 진상이 아니더라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만 알고 싶어하는 진아씨에게 검사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작년 참사 현장에 진아씨를 비롯해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러 왔던 관계기관 사람은 질책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사실 우리의 관할이 아니다"라며 회피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행정부의 수장은 장례식에 나타나기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었다.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안 있었을 거잖아요. 가족을 지금 이렇게 잃었으면, 나서서 뭐라도 할 건데. 가족을 왜 안 지키고 있는지…”

[청주=뉴시스] 성소의 기자 = 오송 참사 시민대책위원회 등이 지난 10일 오송 참사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청주 사창사거리 지구대~청주지검~청주교대까지 6.6㎞를 행진하고 있다. so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한파가 이르게 찾아온 작년 11월 말 진아씨는 거리로 나왔다. 청주검찰청 앞에서 매일 1시간씩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발가락이 얼어붙는 경험을 처음 해봤지만,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가 많이 내리고 더웠던 지난 8~11일에는 작년 비극을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말자고 말하며 시민들과 함께 하루 4~7㎞를 걸었다.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양쪽 무릎이 까졌지만 "흙탕물에서 살려고 발버둥쳤던 그분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진아씨는 말했다.

시간이 멈췄다고 말하는 진아씨가 바라는 건 하나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우리들이 뭘 바라겠어. 이제는 사과같은 것도 아무 의미 없고. 국정조사해서 원인이 규명되고 말단 공무원들이 아닌, 책임자들도 반드시 처벌해야 해요. 국회에서 무조건 이걸 다뤄줘야 돼."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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