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소리] 공멸로 치닫는 윤석열과 한동훈의 3차 충돌
분명한 건 국민의힘·보수진영이 내부 분열로 자멸의 길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현직 대통령과 영부인, 유력한 당권-대권 주자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른바 '읽씹 파동'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봉건시대 궁중암투에서도, 세계 정치사에서도 보기 드문 권력투쟁이 대한민국 여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김건희 여사가 한 방송인과 57분 동안 통화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어 점입가경이다. 도대체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며, 수습책은 없는 것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와 집권 세력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가장 위험한 것은 내부 분열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수많은 전례가 말해 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김건희-한동훈 측의 진실게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최악의 악재로 여권 핵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선 한동훈-원희룡-나경원-윤상현 등 4명의 당권 주자가 5차례의 합동연설회와 역시 5차례의 TV 토론을 거치며 연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고, 덩달아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들도 '윤석열이냐? 한동훈이냐?'를 놓고 갈라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들 별로 없어
지금 이대로 간다면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은 자멸(自滅)의 길로 빠져들 것이다. 이번 문자 파동을 통해 확실히 드러난 사실 하나는 윤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후보 사이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의 관계가 얼마나 험악했길래 김 여사가 직접 나서서 한 전 위원장에게 문자로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한번만 브이(윤 대통령)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떨지요?"라고 통사정했을까. 김 여사와 한 전 위원장의 관계도 매우 껄끄러워진 것 같다. 검사 시절 시동생처럼 편하게 대했던 한동훈 후보에게 김 여사는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라고 극존대를 썼다. 이미 올해 1월부터 세 사람은 편한 사적 관계에서 한참 벗어난 불편한 공적 관계로 전환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관계가 최소한 올해 1월부터 7월 중순 현재까지 6개월 이상 계속돼 왔으니 사태 수습이 쉽지 않아 보인다. 요컨대, 세 사람이 사적 관계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하지 않으면, 공적 관계도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대체 김건희 여사의 문자는 누가, 왜 흘렸을까? 현시점에서 이 문제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다. 한동훈 후보 쪽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문자를 공개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 여사 본인이냐 주변인이냐도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한동훈은 절대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문자 파동이 터지자 원희룡 후보를 비롯한 친윤파들은 "한동훈이 당대표가 되면 당정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고 대통령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강도 높게 전파하고 있다. 이 논리가 당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기 위해서는 김건희 여사가 디올백 문제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었다"는 점이 분명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애매모호하고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공개된 문자와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김 여사는 지난 1월 한 위원장에게 5차례에 걸쳐 '사과하고 싶다'와 '사과하면 후유증이 걱정된다'는 상반된 두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 여사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한 위원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면,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컨대, 김 여사는 1월19일 한 전 위원장에게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를 하고 싶다"고 사과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동시에 "대선 정국에서 이력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 빠졌고…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 것 같다"는 부정적 견해도 함께 보냈다. 그 무렵 다른 지인들에게는 "사과하면 들개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는 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방송인 진중권씨는 김 여사와 57분간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한동훈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때 김 여사와 논의했다면 국정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았다"는 한동훈의 정무적 판단론에 설득력을 더한 것이다. 한동훈은 "7·23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된 이후에도 영부인과 공적인 문제를 의논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사실 그게 냉혹한 권력의 세계다.
그러나 김건희-한동훈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가. 한때 형님 같았던 윤석열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은 형수와 시동생처럼 300통이 넘는 문자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자를 읽씹하기 시작했다면 누구나 섭섭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내를 두고 '마리앙트와네트'라는 소리가 나온다면, 발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건을 보면, 과거 1990년대 후반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표의 충돌이 떠오른다. 당시 집권여당의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태양' 간 치열한 신경전은 결국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공멸(共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방선거·대선 패배하면 세 사람 책임
문자 파동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즉, 윤 대통령과 김 여사, 한동훈 후보 세 사람의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여권 통합을 이룩할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윤 대통령과 한 후보가 '이대로 가면 둘 다 죽는다'는 공멸 의식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현 상태로 굴러가면 한동훈이 당대표가 되든 안 되든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은 핵분열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윤심 논란 속에 이미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김기현 등 5명의 중진이 반강제로 주저앉았고 윤핵관들마저 와해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을 보호할 호위무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민주당은 쾌재를 부르며 이재명 일극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지면서 채 상병 특검, 검찰 청문회, 방통위 무력화 등 초강공 드라이브를 마음껏 밟을 것이다. 급기야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이 핵분열로 인해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하고 폭망하면, 모든 책임은 윤석열-김건희-한동훈 세 사람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을 절감한다면 20여 년 옛정을 되살려 대타협을 모색할 수 있다. 한때 형님-형수-시동생 관계처럼 허물없이 지냈던 세 사람이 국민을 위해 재결합한다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번 문자 파동을 비롯해 만사형통의 해법은 '민생 올인'이다. 야당 대표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먹사니즘'을 내세우는 판에 윤 대통령은 과감하게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민생에 올인하면, 국정 지지율도 올라가고 정치적 영향력도 되찾을 수 있다. 탈(脫)정치야말로 친(親)정치의 지름길이다. 아울러 자의든 타의든 이번 전당대회에서 전 국민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김건희 여사는 앞으로 정치적 행보 하나하나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상황에 몰렸다. 윤과 한의 대타협과 윤 대통령의 민생 올인, 김 여사의 신중한 행보만이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제2, 제3의 읽씹 사건을 예방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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