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北 10대 소녀의 일상…“실상 알아야 통일 보여”
[앵커]
'북한' 하면 김정은 위원장이나 미사일 발사 등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북한 주민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북한에서 특히 청소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10대 여학생의 시선으로 북한의 현실을 담아낸 '은경이 일기'라는 책이 출간됐는데 북한판 안네의 일기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북한의 일상을 잔잔하게 알리면서 북한 사회와 인권 문제의 실상을 다뤘는데, 뮤지컬로도 제작이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김옥영 리포터가 준비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은경이 일기/'옷차림 단속을 피하는 법' 中 : "날씨가 따뜻해지니 치마를 입으라고 난리다. 오늘부터는 학교 정문에 규찰대를 세워 옷차림 단속을 시작한단다."]
책에는 우리와 같은 듯 다른 북녘의 일상이 담담하게 적혀있는데요.
남한에선 상상하기 힘든 상황도 담고 있습니다.
[은경이 일기/'장작과의 전투' 中 : "우리 집은 아파트지만 장작을 피워 집도 덥히고 요리도 한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북한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한 탈북민의 일기입니다.
10대 북한 소녀의 일상 속에 자유를 향한 꿈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요.
이 책이 만들어진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은경이 일기'가 탄생한 연구소입니다.
50여 년간 북한의 실상을 연구한 이곳엔 흔치 않은 자료가 가득했습니다.
책의 주인공, 은경이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김영수/북한연구소장 : "(저는 은경이 일기라고 해서 은경 씨를 직접 뵙는 줄 알고 왔는데, 교수님이 계시네요?) 은경이는 원래 일기를 썼던 탈북한 소녀였고요. (본인이) 저자로 나서기에는 두 아이의 엄마라서 탈북한 엄마라는 게 알려지는 게 싫다고 그래서 일단은 숨겨뒀어요."]
탈북 여학생 은경이는 2000년대 북한 양강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회고하면서 쓴 책인 건데요.
["은경이가 쓴 일기를 파일을 모아가지고. (원본인 거예요?) 그렇죠. 보세요."]
6년여에 걸쳐 은경이의 기억을 수집하고 기록해 나갔다는 김영수 소장.
그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삶을 더욱 폭넓게 연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영수/북한연구소장 : "하루는 동네 아저씨들하고 술을 마셨는데 엄마들도 데려오자고 해서 왔는데 엄마들이 술을 더 잘 마신 거죠. 그걸 보면서 아 가부장적 문화라는 것도 내가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봤구나..."]
담담하지만 파란만장했던 은경이의 경험담은 이제 뮤지컬로 재탄생할 참입니다.
쇼케이스 준비가 한창인 공연장.
11월 첫 공연을 목표로, 대사와 노래를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제작진은 북한 주민의 일상이 공연을 통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고 있었는데요.
[한진섭/연출가 : "서로가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내가 원하는 바가 뭔지 꿈에 대한 부분들이 뭔지 이런 부분들을 잘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둘 기대감에 찬 관객들이 객석을 메우고,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캄캄했던 무대에 은경이가 등장합니다.
["문득 궁금해졌어. 왜 나는 늘 꿈꾸며 살았나. 오랜 추억 가득한 내 고향을 떠나면서까지..."]
은경이와 은경 엄마, 학교 선생님과 친구 진옥, 동네 오빠 정철이 펼쳐나가는 서사.
고교생 은경이의 천진난만한 일상에는 북한 사회의 단면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엄마!" (아이고, 깜짝이야.) 우리 다음 달에 감자 동원 간단다. 온종일 애들이랑 놀 생각 하니까 좋아 죽겠어. (놀러 간다니? 그거이 뼈 빠지게 일하러 가는 거야.)"]
짝사랑하는 정철 오빠가 남한 영상을 봤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장면에선 격정적인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수십 종의 괴뢰 화면물을 시청 유포한 것이 확인된 바 정철 군에게 노동교화형 15년 언도한다. (오빠 안된다.오빠.) 은경아 어디 있든 항상 응원할게."]
자유를 꿈꾸는 은경이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공연.
북한의 실상과 인권을 알리기 위해 동참한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사투리로 열연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공연을 준비하며 북한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혜민/배우/은경 역 : "저는 (북한에서) 직업을 자기가 선택하지 못 하는 줄 몰랐어요.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이런 곳이 또 있을까..."]
["뭐 때문에 스스로 직업도 못 고르게 합니까."]
[이혜민/배우/은경 역 :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그런 마음도 쉽게 들지 않는 환경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역할에 몰입하며 자유를 빼앗긴 마음도 이해해 나갔습니다.
[유정한/배우/정철 오빠 역 :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라도 마지막에 해보는 데 거기에 있어서 감정을 조절하는 게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북한 주민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김재은/배우/진옥 역 : "북한에 대해서 무지했다고 생각하는 게 저희처럼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엄마한테 투정부리고 이러는 (모습이) 저희랑 똑같은 거예요."]
관객들 또한 북한에 대한 마음속 빗장을 걷어낸 듯했습니다.
[문미옥/관객 : "북쪽 뉴스나 이런 것조차도 싫어했었는데 오늘부터 마음을 열게 됐어요. 북한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인권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네요."]
북한 통치자의 소식은 알아도 정작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들의 실생활을 알아야 그들이 처한 인권실태가 보이고 그래야 제대로 된 통일이 보인다고 은경이 일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성월 씨에게 '은경이 일기'는 남다른 여운을 안겼다고 합니다.
[이성월/관객 : "저희 엄마가 탈북민이시고 저는 아빠가 중국분이시기 때문에 제3국 출신인 자녀입니다."]
탈북 과정에서 두 차례나 강제 북송을 당한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이성월/관객 : "'엄마도 공개재판이나 이런 거 봤어요'라고 물어 보니까 '그건 무조건 봐야 된다 안 보면 안 된다' 책을 보면서 옆에 엄마 얘기도 들으면서 하니까 더 와 닿는 거예요."]
남북 간의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김영수/북한연구소장 : "북한이 어떤지 모르면서 통일한다는 생각만 하는데 상대를 모르고 하게 되면 시행착오도 크고 실망감도 커요. 생생한 삶을 알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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