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北 유학생 강제 소환…5년 만에 사상 교육 재개
[앵커]
주민들이 외부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북한에도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는 유학생 제도가 있습니다.
대신 유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해당 분야에 실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출신 성분도 좋아야 합니다.
최근 북한이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유학생 사상교육을 5년 만에 재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유학생들은 오랜 기간 해외에 체류한 만큼 북한의 실상을 깨닫고 상당한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귀국을 앞둔 해외 근무 엘리트들이 잇달아 탈북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사상교육을 위해 소환을 앞둔 북한 유학생들, 지금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정장을 차려입은 성인 남녀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극동연방대학교을 찾아 유학 중인 북한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조선중앙TV/2023년 9월 : "원수님을 우러러 유학생들은 끓어오르는 감격과 격정을 금치 못하며 열광의 환호성을 터쳐 올렸습니다."]
또 학생들과 직접 대화하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선중앙TV/2023년 9월 :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여 위대한 우리 국가의 융성 번영에 한몫 단단히 하는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 혁명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뜨겁게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1년도 채 되지 않아 중국과 러시아에 나가 있는 유학생들을 강제 소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환 교육'이 재개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통일부는 "국경 봉쇄로 중단됐던 조처들이 재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과거 북한은 해외 체류 유학생의 사상 이완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학생들을 소환해 사상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국경을 폐쇄하면서 잠정 중단됐던 건데요.
5년 만에 재개되는 사상 교육인 만큼 그 어느 때 보다 강도 높게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금혁/김일성종합대학 출신/2012년 베이징 유학 중 탈북 : "북한도 2020년 반동문화사상배격법 제정 이후로 매해 청년 학생들을 통제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잖아요. 북한 당국은 아마도 이들이 5년이란 시간 동안 본인들의 통제에 벗어나 있을 때 북한 체제에 대해서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른다. 잠재적인 반혁명 분자들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도 저는 있다고 봅니다. 소위 북한말로 허튼 생각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을 지금 북한 당국이 하고 있을 거라고 보고요. 상당히 벼르고 있겠죠."]
일반 주민들에게는 해외여행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북한.
하지만 당국의 필요에 따라서는 유학생을 파견해왔습니다.
다만 선발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해당 분야의 능력은 물론 출신 성분과 사상 검증까지 통과해야 유학길에 오를 수 있습니다.
[김금혁/김일성종합대학 출신/베이징 유학 중 탈북 : "유학생 선발 시험이란 걸 거쳐서 일정 수준에 학업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또 충성심이라든가 혹은 과거 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 혹은 대학교 때 말썽을 피웠는지 안 피웠는지 이런 경력까지 조회해서 엄선된 사람들로 내보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대부분 학생이 90퍼센트 이상은 평양 출신입니다."]
엄격하게 선발된 엘리트들이지만 북한은 유학생들이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합니다.
유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사건이 발생하면 전격 소환하기도 하는데요.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 직후엔 중국 유학생 전원을 불러들였고,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붕괴 당시에도 유학 중인 학생들은 모두 소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엄중한 조치에도 유학생들의 탈주를 전부 막을 수는 없었는데요.
[KBS 뉴스9/1989년 3월 : "북한 유학생 두 명이 오늘 기자회견을 갖고 탈출 경위와 과정을 자세히 밝혔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유학생들의 탈북 빈도가 늘기 시작한 겁니다.
1989년 한해에만 체코, 폴란드, 동독에서 북한 유학생들이 잇따라 귀순했습니다.
당시 유학생들은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소환 조치와 해외 체류 경험에서 알게 된 김씨 일가의 실체를 귀순 이유로 꼽았습니다.
[장영철/당시 동독 유학생/1989년 탈북 : "동구권이 개방하니까 북조선 유학생들이 튈까 봐 유학생은 무조건 북조선으로 소환시킨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김은철/당시 체코 유학생/1989년 탈북 : "특히 (서울) 올림픽 방영 계기를 통해서 북조선 정치가들이 선전해 오던 선전 내용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해외 유학생 수를 크게 늘렸습니다.
파견국도 중국, 러시아는 물론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로까지 확대했는데요.
스위스 유학파 출신인 김 위원장이 유럽식 제도와 문물을 적극 도입하기 위해서 유학생을 대폭 늘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국비 유학생으로 파리의 한 건축대학에서 유학한 김정국씨도 자신의 유학이 김 위원장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깊을 거라고 전합니다.
[김정국/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2015년 파리 유학 중 탈북 : "김정은 정권이 막 자리 잡아 올라오던 시기였었기 때문에 그때 건설 붐이 있었습니다. 평양시 창전거리부터 시작해서 여명거리, 과학자거리 하면서 그 이후로 쭉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런 대대적인 건설을 예상하고 필요한 건축가들을 키우려고 선발했나 저희 학생들 입장에선 그렇게 예측하는 거죠."]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지도자가 달라졌어도 북한 유학생들을 향한 감시의 눈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나라에 머물든 사상적 이완은 용납하지 않는 겁니다.
[김금혁/김일성종합대학 출신/베이징 유학 중 탈북 : "어디 수업 끝나고 운동을 한다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대부분 다 보고를 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터넷 사용 문제거든요. 2인 1조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그날 사용한 인터넷 사이트는 무엇이고 어떤 자료를 다운받았는지 세세하게 기록하게끔 돼 있는 것이 유학생 지침이고요."]
[김정국/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파리 유학 중 탈북 주말, 토요일에는 대사관을 갔습니다. 거기 가서 외교관, 외교관 부인들, 외교관 자녀들과 합류해서 본국에서 온 정치 자료 이런 것들 가지고 시청할 거 시청하고 보급할 건 보급하고 외울 건 외우고. 그게 끝나면 조직별 생활총화가 들어가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감시하고 통제해도 북한 당국의 실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데요.
[김금혁/김일성종합대학 출신/베이징 유학 중 탈북 : "북한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교육 이런 것들은 사실상 해외에 나와서 한두 달이면 다 허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대표적인 징후가 어디 이동할 때 택시 타잖아요. 그럼 기사님이 물어보세요. 어디서 왔냐고. 초반에는 차오시엔, 북한에서 왔다고 이야기하거든요. 한 3개월 지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합니다.북한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창피한 거죠. 부끄럽고."]
또 북한 유학생들끼리도 인터넷 사용을 눈감아 주기 때문에 외부 정보로부터 받는 심적 동요는 더 크다고 합니다.
[김정국/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파리 유학 중 탈북 :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싶은 거 다 검색하고 다 찾아보고 그랬죠. 2년 동안 그런 생활을 하게 되니까 당연히 생각이 바뀌죠. 마인드가 한국 사람에 가까워진다 싶을 정도로 충성이나 복종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면서 한마디로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돼가는 거 같았어요 스스로도."]
지난해 국내 입국한 엘리트 계층 탈북자는 10명 내외, 이중 상당수는 해외파로 유학생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들 역시 해외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류현우/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 : "대리 하늘과 같이 믿었던, 저 신과 같은 김씨 일가가 '우리를 이렇게 속여 먹었어' 하는 그 배신감, 이런 것 때문에 막 이렇게 분노가 끓어오르는 거죠."]
이번에 소환 지시를 받은 유학생들의 경우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을 거란 추측도 나옵니다.
유학 생활이 길어질수록 북한 정권의 대한 반발심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김금혁/김일성종합대학 출신/베이징 유학 중 탈북 : "북한의 체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이 상당히 착잡할 것이고 그리고 5년이란 시간 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혹은 예측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북한에서 코로나 이후에 많이 일어나면서 정말 많은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있을 거 같아요. 아마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혹은 제3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유학생들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태어나서부터 시장화를 경험하고 외부 문화를 지속적으로 접해온 장마당 세대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평가입니다.
[김정국/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파리 유학 중 탈북 : "사상 교육은 많이 받았지만 저도 그랬다시피 그 친구들도 사상 크게 중요치 않고 그냥 내가 재밌고 내가 편하고 내가 좀 더 잘 살 수 있고 내 좋은 머리로 더 잘 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면 그런 쪽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죠 사실."]
검증에, 검증을 더해 선발된 엘리트 '북한 유학생', 그러나 한편으론 외부 세계와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북한 주민이기도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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