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유머를 잃지 않은 약사 출신 '치료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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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슈피츠베크(1808~1885)는 독일 화가다.
이름은 익숙하지 않을지언정, 그의 작품들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그림에 대한 애정과 재능을 바탕으로 화가의 꿈을 간직하던 중 이탈리아 여행에서 본 대가들 작품에 영향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작품을 죽 펼쳐 놓고 그의 따뜻한 마음을 상상하며 보는 일은 '사랑의 교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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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카를 슈피츠베크(1808~1885)는 독일 화가다. 이름은 익숙하지 않을지언정, 그의 작품들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작품마다 품격 있는 유머를 심었기 때문이다.
슈피츠베크 원래 직업은 약사였다. 그림에 대한 애정과 재능을 바탕으로 화가의 꿈을 간직하던 중 이탈리아 여행에서 본 대가들 작품에 영향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뒤늦게 전업 화가가 된 특이한 이력이다.
제일 유명한 작품은 '가난한 시인'(1837)이다. 궁핍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집 실내 궁벽한 침대에 한 시인이 누워 있다.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쳤고, 벽에는 떠오른 영감을 적어놓은 듯 글자가 쓰여 있다. 땔감이 부족한지 안타깝게도 난로에 원고 뭉치를 태우고 있다.
시인이 도서관을 찾은 것일까? '책벌레'(1850)라는 그림이다. 사다리에 올라 여러 책을 한 번에 든 주인공은 눈과 코를 책에 박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몰입의 시간을 우습게 그렸고, 장서 분위기는 마냥 부럽다.
시인이 과거에 있었던 연애 시절을 추억하는 것일까? '연애편지'(1846)에서 담장 너머로 한 남자가 모자를 흔들며 뒷모습으로 앉은 젊은 여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니 얼마나 조바심을 태울까?
시인이 드디어 그녀와 데이트한다. 연인을 데리고 숲을 찾은 남자가 아리따운 그녀를 위해 정성을 다해 플루트를 연주하는 장면을 그린 '솔로'(1855)다.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가 들려오는 듯하다.
시인은 그녀와 결혼해 대가족 가장이 됐을까? '일요일 소풍'(1841)이라는 작품인데, 가족을 이끌고 들판에 나선 남자는 즐겁지 않은 표정이다. 휴일에 쉬려고 했지만, 가족 성화를 못 이겨 억지로 나온 것으로 상상해 본다. 흐릿하게 그렸지만, 아빠 손을 잡은 막내는 그를 달래주고 있을 것이다.
그린 시기는 다른 작품에 앞서지만, '일요일 소풍'을 보며 유머와 사랑의 종착지는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온 가족이 다사로운 자연 아래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가족이란 '같이'일 때 행복의 요람이 된다.
슈피츠베크가 그림에 유머를 실은 동기에 대해 전해지는 사연이 인상적이다. 1836년 대규모 콜레라가 독일을 엄습해 그도 시골로 피신해 겨우 살아남았는데, 이때 주변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마음의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자 다짐했으며, 이를 잊지 않고 실천했다고 한다. 약사 출신으로 '치료 화가'로 부를 만하다.
그의 그림에 아돌프 히틀러마저 매료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지만, 그만큼 인간 본성을 잘 표현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그린 건 유머를 넘어서 사랑이었다. 그가 그린 작품을 죽 펼쳐 놓고 그의 따뜻한 마음을 상상하며 보는 일은 '사랑의 교실'이 된다.
현재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 취미, 애호가 무엇이든 유머와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사랑은 넓게 퍼지며 세상을 밝히는 유산이 될 것이다. 단순한 것 같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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