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방해하는 러브라인 필요 없다…로맨스 없는 요즘 장르물

오명언 2024. 7.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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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완성도에 주력한 '커넥션'·'크래시'…각 방송사 올해 최고 시청률
왼쪽부터 SBS '커넥션'·ENA '크래시' [SBS·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범인 잡으러 다니는 형사들부터 생사가 오가는 수술실 의사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변호사들까지….

장르물 속 주인공들이 그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와 눈이 맞아 연애하는 전개는 한국 드라마의 공식처럼 통한다.

그러나 최근 흥행한 장르물은 다르다. 이른바 러브라인은 과감하게 덜어내고, 미국 수사 드라마처럼 캐릭터를 부각해 사건 해결에 집중한다.

최근 종영한 SBS 범죄 수사물 '커넥션'이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는 탄탄하게 짜인 극본과 몰입감을 높이는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로 호평받으며 인기몰이했다.

첫 회 시청률 5.7%로 출발했고, 이후 입소문과 함께 상승세를 타더니 자체 최고 시청률 14.2%로 막을 내렸다. 올해 들어 방영된 SBS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이다.

드라마 '커넥션'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인공 장재경은 후배들의 존경과 선배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순경에서 시작해 특진을 거듭했고, 경기 남부 최대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한 성과를 인정받아 이른 나이에 경감 자리까지 오른다.

드라마는 장재경이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마약에 중독되며 시작한다. 그는 거액의 보험금을 남긴 고교 동창 준서(윤나무 분)의 죽음과 자신의 중독이 관련돼 있음을 눈치채고, 그 뒤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은 장재경의 고등학교 동창인 오윤진(전미도)이다.

준서의 장례식장에서 20년 만에 재회한 둘은 친구가 남기고 떠나간 보험금으로 인해 다시 얽히기 시작하고, 겹겹이 쌓인 미스터리를 풀어내기 위해 내내 붙어 다니게 된다.

드라마 '커넥션' 방송 화면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커넥션'이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떨떠름하게 다시 만난 두 주인공이 점차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사랑을 키워갔겠지만, 장재경과 오윤진은 연애에는 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마약 팀 형사, 그리고 지역 신문사 기자로서 서로의 능력을 빌려 가며 수사와 취재에 집중할 뿐이다.

'커넥션' 집필을 맡은 이현 작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러브라인을 덜어낸 것은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느 직장이건, 남녀만 갖다 놓으면 러브라인이 자동으로 생기는 극적 설정이 '커넥션'처럼 현실에 기반을 둔 수사 스릴러를 속도감 있게 끌고 가는 데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크래시' 방송 화면 [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NA 흥행작 '크래시'도 마찬가지다. 이민기, 곽선영이 주연을 맡았는데, 끝까지 로맨스는 없었다.

'크래시'는 도로 위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교통범죄수사팀(TCI)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수사극이다.

시청률 2.2%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배우 변우석 신드롬을 낳은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최고 시청률 5.7%)와 동시간대 경쟁하면서도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 6.6%로 막을 내렸다.

ENA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최고 시청률 17.5%)에 이어 채널 역대 두 번째 흥행 기록이다.

'크래시' 주인공들도 사랑 대신 일에 매달린다. 주인공 차연호(이민기)가 10년 전 겪은 교통사고 미스터리를 큰 줄거리로 놓고, 매회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물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드라마 '크래시' 주연배우 이민기(왼쪽)와 곽선영 [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스트 출신인 차연호는 민소희(곽선영)가 팀장으로 있는 TCI에 특채로 합류한다. 냉철한 논리력을 가졌지만, 사회성과 눈치가 없는 그는 선배 민소희의 지도하에 진짜 경찰로 성장한다.

민소희도 단번에 사건을 파악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후배 차연호의 도움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해가는데, 둘의 관계는 사랑보다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러브라인 없이 두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가는 전개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오히려 수사와 추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쓸데없는 러브라인으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니 드라마의 완성도가 더 높다", "담백하고 깔끔하게 장르물의 본질에 충실한 전개가 마치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등의 호평이 나왔다.

드라마 '크래시' 방영 화면 [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연을 맡은 배우 곽선영도 인터뷰에서 "시즌2를 한다고 하더라도 연호와 소희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좋은 선후배 관계를 유지할 것 같다"며 "로맨스가 끼어들면 수사물 특유의 재미가 덜해질 것 같다"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과거부터 장르물을 만들 때는 드라마 시청층을 확장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로맨스를 집어넣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며 "그래야 기본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서서히 그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어떤 장르든 로맨스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기승전 로맨스'라는 비판도 꾸준히 있었는데, 제작진이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커넥션'과 '크래시' 같은 경우에도 로맨스를 덜어낸 덕에 장르적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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