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 다자녀 가족의 아파트 살이 이야기 [임보 일기]
나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곤줄박이예요. 크기가 참새만 한 우리를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뭉뚱그려 ‘참새’라고 부르기도 하죠. 5월13일 오늘은 새끼들이 인공새집 속 둥지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이소(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것)를 하는 날이에요. 인공새집을 달아준 인간은 오늘 새끼들이 떠날 걸 어떻게 알았는지 새벽부터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더군요. 거슬리긴 하지만, 집을 제공해준 건물주니 그냥 참고 넘어가야지 별수 있나요. 인공새집은 가로 12㎝, 세로 16㎝, 폭 12㎝의 작은 나무상자에 지름 3㎝짜리 구멍이 뚫려 있는 모양입니다. 나무 구멍이 부족한 도시에서 그나마 새끼들을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죠.
지난해에도 아파트의 인간 주민이 인공새집을 여러 개 달아주어 전나무에 달린 인공새집을 신혼집으로 정했는데 웬걸? 이끼를 몇 번 물어 나르기도 전에 참새 부부가 빠른 속도로 둥지 속 재료를 채우면서 우리 부부는 그 집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좁고 위험한 아파트 외벽 환기구에 둥지를 틀었어요. 올해도 참새들이 인공새집을 다 차지해 환기구 쪽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인간 주민이 인공새집을 몇 개 더 달아주어 운 좋게 인공새집에 자리를 잡았어요.
내가 사는 이 아파트는 1997년에 지어졌어요. 전에는 야산이 있고 밭 사이에 집들도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15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간들이 땅을 싹 밀어버렸어요. 곤줄박이 조상님들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해야 했죠. 그런데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안에 심은 나무들이 쑥쑥 자라 도시 속 작은 숲이 형성되었어요. 꽃과 나무가 있는 그곳에 곤충이 돌아왔고, 우리 가족의 먹거리인 열매와 곤충이 많은 이곳에 나도 돌아왔습니다.
먹을 것도 있고 쉴 곳도 있어서 평상시 살아가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문제는 봄이 되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구멍이 있는 나무가 없는 거예요. 이곳저곳을 찾다 보니 가스레인지 후드와 연결된 외벽 환기구에 망이 없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냄새와 연기가 나가야 하는 구멍을 막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새끼를 길러야 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구멍이 뚫린 상자 하나가 벚나무에 달렸어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참새도 박새도 집을 보러 들락거렸지만 근처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틀었던 박새가 쫓아내 결국 모두 쫓겨났어요. 그 이듬해에는 인간 주민이 인공새집 8개를 달아주었지만 떼로 다니는 참새들이 모두 차지하고 말았어요. 결국 나는 또 아파트 외벽 환기구 속에 둥지를 틀어야 했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올해, 인공새집이 추가로 달리면서 드디어 그중 한 군데를 분양받아 쾌적한 공간에서 새끼를 키워낼 수 있었어요. 아파트 인간 주민은 가끔 지붕을 살짝 열고 뭔가(휴대전화 카메라)를 집어넣으면서 ‘찰칵’ 소리를 냈어요. 우리를 위협하거나 안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기도 하고, 임대료도 공짜라 건물주에게 항의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새끼를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는 게 어디냐 싶었죠.
드디어 오늘은 새끼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을 여덟 마리나 집 밖에서 무사히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긴장도 됐지만 어미 말을 잘 따르는 새끼들이라 용기를 냈어요. 물어다주는 먹이를 인공새집 안에서 받아먹는 게 익숙해서인지 새끼들은 나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둥지에서 살 수는 없는 일. 먹이를 물어왔다고 불러내자 첫째가 용기를 냈습니다. 그렇게 둘째도 셋째도 그리고 막내인 여덟째도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어요.
깨끗한 집(인공새집)을 제공해준 인간 건물주는 새끼를 다 키워낸 둥지를 다시 사용하지 않는 걸 어찌 알았는지 우리가 나오는지 확인하고는 둥지를 청소하고 재료로 썼던 이끼 등은 주변에 던져놓더군요. 인공새집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주민이 재활용하라고 말이에요.
나는 이제부터 한두 달 정도 새끼들에게 아파트 어디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교육할 거예요. 둥지 안에서 키울 때보다 더 긴장하며 세심하게 보살펴야겠죠. 봄이면 벌레를 잡아먹고,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먹고 난 씨앗으로 아파트 정원에 나무가 자라게 하면서 인간 주민과 함께 아파트를 가꿔나가는 우리는, 인간들만 산다고 생각하는 도심 속 아파트의 또 다른 주민입니다.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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