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1주기, 당신에게 부치는 편지 [전국 인사이드]

박누리 2024. 7. 1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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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돼 14명이 사망했다.

약속 장소에서 당신을 보고는 (잠시 당황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더랍니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 활동에, 당신 대신 참여해온 당신의 동생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 당신에게 가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러니 곧 도착할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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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16일, 전날 폭우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3년 7월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돼 14명이 사망했다. 곧 1주기가 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는 더디기만 하다. 1주기에 맞춰 오송 참사 유가족·생존자 구술 기록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충북 청주 등지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도 이어진다. 7월8~15일 도보 행진과 추모제가 개최된다. 이 글은 구술 기록을 위해 만난 한 피해자 어머니에게 띄우는 편지다.

솔직히 고백할게요. 약속 장소에서 당신을 보고는 (잠시 당황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더랍니다. 본래 그날은 당신이 아닌 당신의 동생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지요.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 활동에, 당신 대신 참여해온 당신의 동생 말입니다.

조금 궁금하긴 했습니다. 왜 당신은 유가족 활동에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아직은 자식 잃은 슬픔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는, 동생의 전언에 그저 수긍할 뿐이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당신이지만, 그날 카페 문을 열자마자 직감했어요. ‘당신’이구나.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기에 내심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곧 기자의 본능처럼 기대감이 차올랐죠. 유가족 활동을 지원하는 시민대책위원회의 그 누구도 만나본 적 없다던 당신에 대해 말이에요.

사실 그 저변에 새로운 이야기를 ‘독점’할 수 있겠다는 욕심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특종’이기에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사소하지 않다’고 떠들어댔지만, 그 순간 내 안에선 그 경중을 매기는 위계가 철저하게 작동했던 거죠. 목격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순수하기만 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쾌재를 부른 첫 마음과 달리 당신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돌덩이 같았어요. 생계엔 관심 없던 남편 대신 가정을 건사하느라 바빴던 당신은, 딸과의 기억이 많지 않다며 겸연쩍어했습니다. 사회에 막 발을 내디딘 스물네 살의 딸은 친구와 여행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오송역으로 향하던 길이었죠. 꾸역꾸역 꺼내놓는 이야기 사이로 당신은 조금 훌쩍였고 끝내 울음을 삼켰지요. “주변 사람들 말대로 딸의 명이 여기까지였던 거 같다. 얼른 다 잊어야 한다”라는 말에 약간 놀라기도 했습니다.

“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사회적 참사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른 체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붉어진 눈으로 “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라는 당신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비치는 저녁노을을 볼 때에야 당신의 마음이 조금 이해됐던 거 같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울음을 참은 것이 아니라, 울 수 없었던 거라고. 그동안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말을 꺼내느라 차마 울지 못했던 거라고요.

나는 종종 공론장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하곤 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말해야 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실은 몇 번이나 인터뷰 일정을 확인하고 그 시간까지 내내 나를 기다렸을 당신을.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내 등을 두드리며 시원한 음료를 건네던 떨리는 손길을.

당신을 공론장으로 불러낼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있는 곳을 공론장으로 만들어야 함을 이제는 압니다. 그것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다음에 당신을 만날 땐 함께 울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직 당신에게 가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러니 곧 도착할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또, 당신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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