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괜찮아요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7. 1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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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여기는 괜찮아요

전성태 지음, 창비 펴냄

“못다 쓴 이야기, 꼭 쓰고 싶은 소설이 아직 내게 있다고 믿는다.”

소설가 전성태의 신작이고, 9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 리얼리즘 소설 분야에서의 어떤 성취를 대변한다. 작가는 그동안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는 분단, 여순 사건,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등 현대사의 사건을 불러낸다. 비극적 소재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한때 우리가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무언가’를 일깨운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한국어와 정감 어린 방언. 이야기 자체가 발산하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이 이제 당신에게 묻고 있어요. 당신이 계신 그곳은 어떤가요, 괜찮은가요?’ 최진영 소설가의 추천사다.

 

사물의 표면 아래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박희원 옮김, 아고라 펴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국가 개념을 다시 상상해보면 어떤가?”

언제부턴가 인문학은 밥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송하다(문과라 죄송하다)”라고 연신 사죄해야만 했다. 언어학·역사학·고고학 등 다양한 줄기로 이루어진 인문학의 정점에는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 인류학이 있다. 이 ‘가장 쓸모없는 학문’을 연구하던 저자는 팬데믹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인류학의 미래를 발견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나약해진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절대적이라 믿었던 기존 세계 질서가 얼마나 공허한 약속이었는지 설명할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염병 국면에서 정치·사회적 치부를 드러낸 ‘1등 국가‘ 미국을 다룬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다시 출발선에 선 인류에게 타산지석이 되기에 충분하다.

 

보이지 않는 목격자

이승환 지음, 김영사 펴냄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수사’보다는 ‘법과학’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는 32년 만에 검거되었다.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가 활용되었다. 숫자로 표기된 DNA 프로필을 DB로 만들어 관리하다가 미궁에 빠진 사건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비교해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시스템이다. 분자유전학 박사로 30년 동안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서 근무한 저자는 이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베테랑 법과학자인 저자는 DNA 감정의 기초 개념부터 DNA 감정이 수사에 활용된 국내외 사례까지 풀어냈다. 실제 사건을 통한 설명이 생생하고, 다양한 법과학 수사 기법 이야기가 흥미롭다. 뛰는 범죄자 위에 나는 DNA 있다.

 

잔인한 낙관

로런 벌랜트 지음, 박미선·윤조원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사람들은 왜 좋은 삶이라는 관습적 환상에 매달리는 것일까?”

계층 상승, 안정적 직업, 정치·사회적 평등, 지속적 친밀감은 ‘환상’일까. 저자는 “그런 것은 불안정하고 취약하고 커다란 대가를 요하는 것이라는 증거가 넘쳐”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본다. 책은 ‘좋은 삶’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애착이 우리를 어떻게 마모시키는지 살펴본다. ‘근대적 주체’와 ‘신자유주의’의 감정 통치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자연히 뒤따른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낙관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림에도 불구하고, ‘지금’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그 낙관과 애착이라는 점 역시 드러낸다. 변화를 갈망하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우울의 이유라면, 그런 우울 역시 ‘정치화’의 자원으로 삼을 수는 없을지 탐구한다.

 

돼지 복지

윤진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노력이 곧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는 일.”

책은 20여 년 전 저자가 본 양돈장 풍경으로 시작된다. 돼지 몸이 겨우 들어가는 너비의 철제 케이지, 하루 한 번 지급되는 사료, 생후 2~3일 만에 거세한 새끼 돼지들의 모습을 적었다. 이 일을 계기로 저자는 북유럽에서 돼지 복지를 공부하게 됐다. 꼬리 자르기, 항생제의 부작용 등 동물 복지 선진국의 여러 논의를 소개한다. 제도나 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돼지의 스트레스를 걱정하고 증상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좋은 농장 관리자’가 핵심 요소라고 썼다. 책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고기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구절도 없다. 오히려 동물 복지 축산물이 제대로 된 가격에 많이 판매되길 바란다고 적는다. 그럼에도 책을 읽은 뒤 돼지고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이전과 퍽 달라진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20년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지만, 얻은 것은 흥분제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서구 세계를 당대 주요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 요즘 식으로 명명하자면 ‘폴리아모리’를 선언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사이의 은밀한 갈등, 망명지마다 애인을 둔 ‘나쁜 남자’ 베르톨트 브레히트, 끝없는 바람기로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스탈린, 결혼한 뒤에도 하이데거를 계속 그리워한 한나 아렌트…. 이 외에도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럴드, 달리, 비트겐슈타인, 괴벨스 등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깊은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된다. 대공황과 파시즘의 부상,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사건들이 휘몰아친 이 시기를, 지극히 사적이고 때론 자극적이고 지질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개인사들을 통해 새로이 인식할 수 있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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