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좀 더 절실함이 생겼어요” 다시 미국으로 향한 이현중, NBA 도전은 계속 된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호주에서의 첫 시즌 돌아본다면?
굉장히 뜻깊었다. 프로에 와서 처음으로 건강하게 치른 시즌이다. 힘들기도 하고, 기복도 있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팀이 하위권에 있다 상위권으로 올라갔다가 겨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개인적으로 배울 점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 출전 시간이 적어서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은데?
그때가 마음고생이 심했다. 호주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그래야 된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힘들었지만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내가 잘해서 실력을 인정받아 출전 시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피지컬에서 스스로 과소평가를 하지 않았나 싶다. 전술적으로도 힘든 리그였다. 공격에서 다양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시즌 중반까지 스탭백 3점슛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떻게 하면 공을 잡았을 때 효율적으로 득점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고, 스킬 훈련을 통해 스탭백 3점슛을 장착하게 됐다.
주변에서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제이콥) 재코마스 감독님이 나에게 출전 시간을 주지 않았고, 팀도 지는 경기를 많이 했다. 주변에서는 다 감독님 탓을 하더라. 만약, 나 또한 감독님 탓을 했으면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재코마스 감독님이 경질되고 2주 정도 휴식기가 있었다. 그때 준비를 더 철저하게 했다. 테이텀 감독님과 미팅을 했고, 어떤 부분에서 내가 팀에 기여 할지 스스로 찾았던 것 같다.
시즌을 치르며 수비력이 향상된 게 인상적이었는데?
수비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내 자세가 많이 높아서 아직도 수비에 약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엔 NBA를 비롯한 모든 리그에서 수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같은 팀 동료와 일대일을 많이 하니까 수비가 빨리 늘더라. 팀 수비에서는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코트 밖에서도 동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인데 인종차별은 없었는지?
어릴 때 NBA 아카데미 소속으로 호주에서 생활을 했다. 그때 같이 했던 친구 4명이 일라와라에 있었다. 그래서 차별은 없었다. 타 팀 선수들도 굉장히 매너가 좋다. 트래시 토킹이 있긴 하지만 별로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팀이 하위권에 있다가 정규리그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재코마스 감독님께 죄송하지만 선수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 특정 선수를 차별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으로 인해 선수들이 불만이 있었다. 테이텀 감독님은 선수단 분위기를 잘 잡아주셨다. 친구처럼 지내 돼 공과 사 구분은 확실하게 하셨다. 선수들끼리도 감독님이 두 번 경질되는 일은 없게 하자고 힘을 합쳤던 것 같다.
너무 아쉬웠다. 1차전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방심하다가 내줬다. 1차전을 이겼다면 2차전에서 끝내고 파이널에 갈 수 있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나는 바로 일본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정신없이 짐을 챙겨 이동했던 것 같다.
호주에서 뛰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이 정도만 하면 되겠다’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해야 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농구는 팀 스포츠 아닌가. 팀원들끼리 소통이 잘 되어야 경기도 잘 풀린다. 우리 팀을 봐도 감독님만 바뀌었고 멤버는 똑같았는데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 케미스트리와 소통이 중요하다. 훌륭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만약, 내가 미래에 남자농구 대표팀에 가게 된다면 선수들끼리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
“일본은 점점 발전하고 있는 리그”
호주에서의 첫 시즌을 마친 이현중은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B.리그 소속 오사카 에베사와 2개월 단기 계약을 맺은 것. 그는 3월 20일 류큐 골든 킹스와의 데뷔 경기부터 24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활약했다. 단숨에 팀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으며 16경기에서 평균 15.3점 5.5리바운드 2.5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다. 짧은 기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아시아 무대는 좁다는 걸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NBL을 마친 후 곧바로 일본으로 향한 이유는?
NBL 일정이 일찍 끝난다. 경기 텀이 길고 경기 수도 별로 없어서 몸이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 한국에서 개인 훈련을 할 수도 있었지만 혼자 운동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기 감각 키우는데 일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결정했다.
G리그도 시즌이 빨리 끝난다. 미국 넘어가서 비자 받고 팀을 물색하다보면 뛸 수 있는 경기가 별로 없다. 선수들이 개인 플레이 성향이 강해서 시즌 막판 팀에 합류하면 존중을 못 받는다. 출전 시간도 고려해서 일본으로 갔다. (마티아스) 피셔 감독님과 미팅을 했는데 내 포지션이 비어서 오면 무조건 30분씩 뛸 거니까 준비하라고 하셨다.
B.리그 첫 경기였던 류큐전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자신감이 넘쳤다. B.리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했고, NBL에서 뛰었다. 여러 무대에서 뛰어봤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플레이하려 했다. 경기 뛸 때 마인드는 항상 같다.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눈여겨보지만 특정 선수에 따라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호주에서 뛰다가 일본으로 가니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진 것도 있는지?
호주와 일본의 수준을 판단하기는 싫다. 한 가지 확실한 건 B.리그는 내 포지션 선수들 신장이 작더라. 그래서 플레이하기가 수월했다. 골밑의 몸싸움은 NBL처럼 굉장히 치열하다. 뛰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는 리그라는 걸 느꼈다.
오사카에서 볼 핸들러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호주에서도 안 한 게 아니라 내 롤을 정한 거다. 팀에서 내 역할을 찾은 거라고 볼 수 있다. 항상 기회가 오면 볼 핸들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있었다. 훈련 때도 많이 했다. 덕분에 오사카에서 볼 핸들러 역할을 맡았을 때 혼란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다.
내가 영어에 능숙했던 것이 큰 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외국선수들과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같이 아파트에 살아서 출퇴근을 같이 했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숀)롱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 심판에게 항의를 많이 하다 보니 한국 팬들에게 악동 이미지가 있는데 내가 볼 때는 승부욕 때문이다. 쉬는 날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등 농구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다.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숀의 이미지와 성격은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평가한 거라고 생각한다.
주말 백투백 일정 때문에 체력적인 문제는 없었는지?
굉장히 힘들었다. 백투백 경기를 대학 시절부터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됐다. 한번은 토요일에 연장전까지 가서 이기고 일요일 또 경기를 하는데 같은 팀과 하다 보니 너무 잘 아니까 더 힘들고 발이 움직이지 않더라. 4, 5주 정도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출전 시간까지 늘어나다보니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엄지손가락 부상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농구를 하다보면 당연히 부상을 당할 수 있다. 부상이 없다면 아마 누구나 다 커리어하이를 찍었을 거다. 부상도 운이고 실력이다. 블록슛을 시도하다 백보드에 부딪쳐서 엄지손가락을 다쳤다. 참고 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경기력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준비 잘해서 뛰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부상에 대한 아쉬움보다 부상당한 후 마음가짐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일본농구가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직접 뛰어보니 어떤지?
솔직히 수준이 떨어지는 팀들도 있다. 내가 팀에 합류한 후에는 강팀과 경기가 없었다. 우승팀 히로시마, 류큐와 맞대결을 펼쳤는데 다들 슛이 좋더라. B.리그는 마케팅에도 진심이다. 프로필 사진 찍은 후 이틀 만에 내 굿즈가 나왔다. 또한 내 이름을 따서 김치 불고기 타코야키를 팔더라. 사람들도 친절하고 본인이 맡은 일에 진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B.리그 시즌을 마친 이현중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힘들법도 했지만 휴식은 없었다. 하루에 3번씩 개인 훈련을 하며 꾸준히 몸을 만들었다. NBA 서머리그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유니폼을 입고 서머리그에 나섰지만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며 자존심을 구긴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절실함을 갖고 서머리그를 넘어 꿈의 무대 NBA 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운동만 하고 있다. 작년에 서머리그 도전한다고 했을 때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서머리그는 가족과 생계가 달린 전국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모두가 굶주려 있는데 내가 너무 얕잡아봤다. 그래서 작년 서머리그에서 많이 두들겨 맞았다. 올해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준비했다. 하루에 3번씩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훈련하고 있는지?
공격에서 다양한 스킬을 늘리려고 한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자세가 높아서 계속 낮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수비에서는 빨리 차고 나갈 수 있도록, 공격에서는 진짜 힘들 때 슈팅을 넣을 수 있게 연습 중이다. 김효범 선생님과 강성우 박사님이 많이 도와주신다. 작년에는 슈팅 몇 개 던지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운동을 했다면 이번에는 열심히 뿐만 아니라 잘하려고 한다.
작년 서머리그를 생각하면 오기가 생길 것 같은데?
작년에 정말 힘들었다. 경기도 많이 못 뛰었고, 들어가도 내 마음대로 안 됐다. 작년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넘어져보고 큰코 다쳐야 배울 수 있다. 좋은 자극제가 된 것 같다. 만약, 작년으로 돌아간다면 그 아픔을 똑같이 느껴보고 싶다. 그래야 지금처럼 열심히 할 수 있다.
좀 더 절실함이 생겼다. 작년에는 팬들이 지켜보고, 한국농구의 미래니까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구를 했다면 지금은 내가 더 잘하고 싶어서 농구를 하고 있다. 스스로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정말 잘해서 한국농구를 한번 일으켜보고 싶다.
계속된 도전에 지칠 것 같기도 한데?
전혀 지치지 않는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거다. 힘들었으면 진작 그만뒀을 것 같다. 도전하면서 내가 더 단단해지고 있다. 실패도 소중하다. 높은 위치에 있는 많은 선수들이 실패를 두려워한다. 나는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놨다. 그러다 보니 정말 재밌게 살고 있다. 스트레스도 전혀 받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NBA에 갈 수 있는 방법은?
투웨이 계약이다. 투웨이 계약을 통해 정식 계약을 따낼 수 있고, 트레이닝 캠프에서 잘해서 정식 로스터에 들어갈 수도 있다. 나는 내 위치에서 최선을 계속 찾으려고 한다. 자꾸 NBA에 신경쓰다보면 마인드 컨트롤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몸을 잘 만들어야 한다.
NBA에 데뷔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면?
정신없지 않을까 싶다. 처음 뛰어서 기분은 좋겠지만 NBA에 가면 오히려 더 독하게 해야 된다. 지금 NBA에 가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하는데 진짜로 가게 된다면 혹독해져야 한다. 안주하진 않을 것 같다. 그때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더 기계처럼 농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머리그 준비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미니캠프에 초청된다면 가서 미친 듯이 할 생각이다. 서머리그에서도 미친 듯이 해야 된다. 지금은 가족, 친구보다도 이게 제일 우선이다. 가족들도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만 참고 있다. 일단 미국에 가서 상황을 보고 팀을 구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인사 한 마디?
계속해서 도전할 테니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사진_문복주 기자, 일라와라 홈페이지, B.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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