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끝난 ‘전 국민 임금협상’…그날 새벽까지 ‘최저임금위’에선?
매년 6~7월은 ‘최저임금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른바 ‘전 국민 임금협상’이라고도 불릴 만큼, 많은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어제(12일) 새벽 2025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0,030원’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월급 기준으론 209만 6,270원입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지 37년 만에 상징적인 숫자인 ‘1만 원’ 문턱을 처음으로 넘은 겁니다.
최저임금은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 현행 26개 법령에 활용되고 있으며, 실업급여, 출산휴가급여, 장애인 고용장려금, 북한이탈주민 정착금, 형사보상금 등 다양한 정책에 폭넓게 영향을 줍니다.
■ 노동계 ‘최저임금 1만 원’ 투쟁 10년…드디어 넘었지만 노사 모두 ‘한숨’
최저임금 1만 원, 사실 어제오늘 나온 얘기는 아닙니다.
노동계가 처음 ‘최저임금 1만 원’ 구호를 들고 나온 건 2013년으로 무려 11년 전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협상 테이블에 노동계가 1만 원 최초안을 처음 제시한 것도 2015년이죠.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적용’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노동계로선 오랜 염원 같던 고지를 드디어 넘긴 셈이지만, 표정은 좋지 않습니다. 삼겹살 2만 원·냉면 1만 2,000원 시대, 가파른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6%에 달합니다. 그 사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제도 변화도 있었습니다.
한국노총은 “1만 원 넘었다고 역사적이니 뭐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며 “명백한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노총도 “밥값은 한 번에 2,000원씩 오르는데 딱 170원 인상”이라며 “고물가 시대를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쪼들리는 고통 속에서 1년을 또 살아가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코로나19가 유행하며 경기가 침체됐던 2021년 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1.7%입니다. 노동계가 올해 최저임금 협상 과정에서 처음 제시했던 12,600원(올해 대비 27.8% 인상)과 비교해도 2,570원이라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경영계 표정도 어둡긴 마찬가집니다. 경영계는 경기 악화로 인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한계 상황을 강조하며 올해 최초안으로 9,860원, ‘동결’을 주장했습니다. 이어진 심의 과정에서도 10원, 20원, 30원 등 ‘소폭 인상’을 이어가며 1만 원 선 저지에 주력했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한계상황에 직면한 우리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동결돼야 했다”며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취약업종의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매출은 줄고 비용은 늘어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현재의 높은 최저임금은 준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범법자가 될 위험을 안고 사업을 영위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호소했습니다.
■ 나흘 만에 끝난 ‘전 국민 임금협상’, 속전속결 배경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의 법정 심의 기한은 지난달 27일이었습니다. 2주가량을 훌쩍 넘겨 결론이 나온 셈이죠. 사실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 기한을 지킨 건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단 9차례뿐입니다.
하지만 정작 ‘임금 수준’, 즉 금액 논의는 얼마나 진행됐을까요? 지난 9일 9차 전원회의에서 노사의 최초안이 제시된 뒤 단 나흘 만에 속전속결로 결정됐습니다. 최저임금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심의가 매년 빠듯한 일정에 쫓기며 마치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듯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정을 넘겨 협상이 진행된 올해 10차·11차 전원회의를 되돌아 봐도, 하룻밤 사이에만 노사 각각 4개의 수정안(2~5차 수정안)이 나온 셈이죠.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위원들이 대거 새로 임명된 데다, 노사가 ▲도급제 근로자로의 최저임금 적용 범위 확대 ▲업종별 구분 적용 논의 등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임금 수준 심의는 상대적으로 더 짧았습니다.
일각에선 최저임금위원회를 ‘상설기구화’해 충분한 논의를 이어가거나, 노사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구조로 개편하는 것 등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가상승률 등 경제 지표를 활용한 객관적인 결정 계산식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장인 이인재 인천대 교수는 2018년 자신의 논문에서 아예 정부가 노사 의견을 들은 뒤 직접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 사실상 ‘열쇠’는 공익위원 손에?…그때그때 다른 ‘심의촉진구간’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최저임금을 결정할 ‘열쇠’는 9명의 공익위원 손에 있게 됩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명·사용자위원 9명·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돼있지만, 근로자-사용자 사이 간극이 워낙 크다 보니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몇 차례 수정안이 오간 뒤, 결국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권고안이나 ‘심의촉진구간’ 안에서 최종 임금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그런데 이 심의촉진구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공익위원들이 선정하는 상·하한선의 근거가 매년 달라지다 보니, 그때그때 달라지는 정권 기조에 맞춰 이른바 ‘답정너’ 계산식을 들고 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올해의 경우,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 하한선인 1만 원을 중위임금 60% 수준과 지난해 노동계 최종안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상한선인 1만 290원은 올해 경제성장률(2.6%)과 소비자물가상승률(2.6%)을 더한 뒤 취업자증가율(0.8%)을 뺀 인상률을 적용했다고 밝혔죠.
지난해엔 어땠을까요? 공익위원은 지난해 7월 18일 제14차 전원회의에서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했는데, 하한선은 30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임금총액 상승률 2.1%를 반영해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상한선은 평균 물가상승률 3.4%와 생계비 개선분 2.1%를 더한 인상률로 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와 비교해봐도, 아무런 일관성이 없는 기준들입니다.
공익위원 간사를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어제 이 같은 심의촉진구간 선정 기준의 편향성·모호성에 대한 질문에 “가급적 노사 양측 논리를 존중해 구간을 정하려고 애를 쓴다”고 반박했습니다.
권 교수는 “이번 심의 과정에서 노동계 위원들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때 경제성장률 또는 물가인상률 등 경제 지표들을 고려해 수준을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청이 있었고 그 요청에 기반해서 상한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했다”고 부연했습니다.
특히 이른바 ‘정부 지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이것은 근로자와 사용자 위원들이 제안한 최종안을 놓고 투표한 거라 사전에 그런 게 있을 수 없다”며 “그런 시나리오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비상식적이고 논리성도 없는 소문이라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 올해도 반복된 파행·퇴장…위원장도 “제도 개선” 한목소리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매년 파행이나 퇴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올해도 지난 2일 제7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구분적용’ 여부를 표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이 투표용지를 찢고 의사봉을 뺏는 등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그 여파로 다음 회의인 지난 4일 제8차 전원회의에는 경영계가 집단 불참하며 회의가 파행을 빚었습니다.
어제 새벽 최종 임금 표결 과정에서도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은 공익위원들의 심의촉진구간이 터무니없다며, 회의장을 나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모두 표결에 참여해 노동계 안에 표를 던졌어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겠지만, 이런 상황을 야기하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회의장을 빠져나온 박정훈 근로자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임금을 좀 더 상승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이라든지 논의의 기회를 줬다면 좀 더 심도 있게 얘기를 할 수 있는데, 오늘 새벽에 인상률 4.4%로 캡을 씌워버리니까 합의 정신이라든지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익위원들의 ‘산식’이라는 것도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의 차수라든지 수정안도 지난해에는 10차례 받다가 올해는 5차례만 받겠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예측하고 합의를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습니다.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촉구한 건 공익위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제 최저임금 결정이 끝난 뒤 이인재 위원장은 “지금의 결정 시스템으로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 개편에 대해서 심층 논의와 후속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전했습니다.
공익위원 간사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도 “정부나 국회에서 관련된 절차를 통해 권고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 ‘특고’ 최저임금 확대 논의 첫 발…‘업종별 구분’, 내년에도 쟁점될 듯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첫 발을 뗀 의미 있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바로 최저임금법 5조 3항에서 촉발된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확대’에 관한 논의입니다.
노동계는 이 조항을 근거로 배달라이더·방문점검원·웹툰 작가 등 특수형태종사근로자(특고)나 플랫폼 종사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자고 주장했고, 경영계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이를 심의할 권한이 없다고 맞섰는데요.
결론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고용노동부가 도급근로자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심의 권한이 위원회에 있다는 법률 검토 결과를 밝히면서 앞으로 이 문제가 추가 쟁점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이에 맞서, 경영계가 주장해온 ‘업종별 구분적용’, 즉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결정하자는 논의 역시 내년에도 재차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큽니다. 위원회는 올해 표결을 통해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현행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이인재 위원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업종별 구분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현행 최저임금법 조항을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데 대해 “이 문제는 향후 관련된 논의가 확대되고, 사업장 기준과 근거가 철저하게 파악된다면 다시 논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올해도 “공익위원들이 제도의 취지에 구분적용이 맞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구분적용 결정을 할 때 기준 명확하냐, 범주 간의 차이가 유의미하냐, 구분적용을 과연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느냐, 구분적용을 했을 때 사회·경제적 효과와 영향이 어떠하냐 등 다양한 요소를 검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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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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