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한 보람…'노플라잇 세계여행' 조진서 [조수원 BOOK북적]

조수원 기자 2024. 7.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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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노플라잇 세계여행' 저자인 조진서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북살롱 오티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본업인 콘텐츠 에디터이자 블로거인 조진서는 인천에서 페리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거쳐 크루즈로 대서양을 건넌 후 미국 시애틀까지 111일간 기차와 배와 자동차로 여행을 했다. 2024.07.1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집이나 땅을 사면 한 번 돌아보지 않겠어요? 지구에서 태어났으니 지구가 얼마나 큰지, 한 번 도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감을 잡아보고 싶었어요."

2023년 9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11일간 비행기를 타지 않고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한 조진서(46)는 15년 만에 꿈을 이뤘다.

"2008년 대학원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떠나면서 '기왕 가는데 한국에서부터 육로로 이동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시간이 한 달여 밖에는 없어 중국을 거쳐 파키스탄에 도착한 후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해발 4700미터 국경을 넘던 당시의 과정이 생생하게 머리에 남았습니다. 이때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고 세계 일주를 해보고 싶다는 희망이 싹텄습니다."(6쪽)
대한민국 서울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조지아,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미국까지 한 지점에서 다른 공간으로 뚝 떨어지는 여행보다 몸으로 현장을 경험하는 여행을 원했다.

"비행기를 타면 공항에서 연결 통로를 거쳐 다시 공항이라는 실내에 도착하잖아요.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도착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나와요. 그런 경험보단 여행 과정에서 사람과 민족, 또 문화가 어떻게 스펙트럼 무지개처럼 변하는지 몸으로 느껴 싶었어요."

인천에서 페리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거쳐 크루즈로 대서양을 건넌 후 미국 시애틀까지 111일간 여행했다.

기차와 배와 자동차로 이동하며 본 세상은 어떻게 달랐을까. 비행기를 타면 어디든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시대에 ‘노플라잇 여행’은 어떤 영감을 줄까.

최근 에세이 '노플라잇 세계여행'을 출간한 조진서를 만났다.

다니던 회사를 나오면서 거의 동시에 시작된 여행은 곧바로 위기를 맞았다. 중국 우한과 충칭을 여행하던 중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병 때문에 귀국을 고려할 정도였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노플라잇 세계여행' 저자인 조진서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북살롱 오티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본업인 콘텐츠 에디터이자 블로거인 조진서는 인천에서 페리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거쳐 크루즈로 대서양을 건넌 후 미국 시애틀까지 111일간 기차와 배와 자동차로 여행을 했다. 2024.07.13. pak7130@newsis.com

"서울에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충칭 다음으로 가려던 도시는 청두.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한 판다 푸바오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그런데 충칭에 있는 동안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졌다. 우한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목이 쉬고 몸살 기운이 심해지는가 하면 녹색 가래도 나왔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감기인지 독감인지 바이러스인지 뭐가 걸리긴 걸린 모양이다. 이젠 중국을, 특히 공기가 나쁜 서남부 지역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61쪽)

조진서는 "여행도 좋지만 건강이 더 중요했기에 '나중에 여행을 다시 하더라도 일단 한국에 돌아갈까'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중국을 벗어나기 위해 침대열차를 33시간 동안 타고 고속열차와 버스, 택시로 꿋꿋이 여행을 이어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기차역에 내리면 모든 사람이 외국인인 나를 주목하고, 내게 뭔가를 팔고 싶어하고, 나를 자기 택시에 (바가지 가격으로) 태우고 싶어했는데 여기 러시아에선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안 쓴다. 괴롭히는 사람도 없지만 먼저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없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문제는 내가 지금 물 한 병 사 먹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목이 탄다."(124쪽)

카자흐스탄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을 관광한 뒤 러시아 볼고그라드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로 가는 여정이지만 카자흐스탄을 거치기에 항공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시차도 있었다. 이는 올해 3월부터 카자흐스탄이 동부와 서부로 나뉘었던 표준시를 단일화해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표준시를 사용하기가 같기 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조진서는 "일직선으로 가는 기차를 탔을 뿐인데 시차가 너무 재밌었다"며 "카자흐스탄이 우즈베키스탄을 감싸고 있어서 러시아로 가는데 시간을 앞으로 돌렸다 뒤로 돌리기를 해야 하는 구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갈 때는 시계를 뒤로 늦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알마티 시간에 맞춰 앞으로 당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몇 시간 후 러시아로 국경을 넘어가면 다시 뒤로 시계를 돌려 1+2=3시간을 뒤로 늦춰야 한다. 육로여행을 하면서 희한한 경험을 다 해본다."(118쪽)
시차를 조정하면서 도착한 러시아에서 여행의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 화폐인 루블 대신 수중에는 달러만 가득했다. 당연히 환전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물 한 잔 사 먹을 수 없어 혼란에 빠졌다. 그를 구해준 건 한국에 있는 러시아 유학을 경험한 친척이었다.

"친척한테 연락했더니 지인을 통해서 제게 돈을 전달하겠다"며 "제가 숙소는 예약을 해놨는데 친척이 숙소 주인한테 연락해 숙소 주인이 저한테 현금을 주게 하고 자기가 그 숙소 주인한테 돈을 보내주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서 러시아로 송금이 안 되니까 카자흐스탄에 있는 친구한테 돈을 보내고 부탁해서 카자흐스탄 사람이 러시아로 돈을 보내고 러시아 사람이 저한테 돈을 주는 루트를 통해서 현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국제 경제 제재를 받는 중이라서 돈이 가면 안 됐는데, 이런 식이면 '얼마든지 제재를 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러시아의 전쟁을 막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하겠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 모습(사진=조진서 제공) 2024.07.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친척은 민박집 주인과 직접 통화하고 그에게 500달러를 바로 송금해주었다. 민박집 주인은 올가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그는 여기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가족과 산다고 한다. 내가 지금 짐가방을 끌고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 상태라는 걸 알고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1시에 숙소 앞으로 왔다. 그리고 꾀죄죄한 행색의 나를 보자마자 내 손에 두툼한 루블화 다발을 꼭 쥐어주었다."(128쪽)

세계 여행의 백미는 러시아와 조지아, 튀르키예,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2023년 11월26일 대서양을 건너는 크루즈에 탑승했다. 그는 7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국경을 넘으며 숙소를 잡고 밥은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느라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여행의 목표는 곧 크루즈 탑승이었다.

조진서는 "그전까지 물론 여행을 재미있게 했지만 계속 생각하면서 이동하니까 너무 힘들었다"며 "크루즈를 타는 2주간 생각을 안 해도 돼서 너무 행복했었다"고 말했다.
"노플라잇 세계여행의 콘셉트는 지구의 크기와 인류 문명의 폭과 깊이를 내 몸으로 느껴보자는 것이었다. 중국과 실크로드를 거쳐 크레타섬의 미케네 문명을 보았고, 이제는 미래 문명의 열쇠인 팰콘 로켓까지 보게 되니 나의 목적은 대략 달성한 것 같다. 우리 인간이 어떤 종족인지 이제 감을 대충 잡을 수 있다."(302쪽)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해선 렌터카로 최종 목적지인 시애틀까지 이동했다. 도착한 날짜는 올해 1월4일. 이동 거리는 5706km였다. 태평양을 건너는 배가 없어 한국까지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는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노플라잇 세계여행' 저자인 조진서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북살롱 오티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본업인 콘텐츠 에디터이자 블로거인 조진서는 인천에서 페리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거쳐 크루즈로 대서양을 건넌 후 미국 시애틀까지 111일간 기차와 배와 자동차로 여행을 했다. 2024.07.13. pak7130@newsis.com


여행 후 돌아온 조진서는 세상을 경험한 뒤 더 큰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회사원으로서 월급을 받으면서 한 20년 동안을 일했거든요. 회사원이라는 틀에 너무 갇혀서 살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시야를 넓게 갖고 인생을 길게 보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누가 물었다. 111일간의 여행으로 내 삶에서 달라진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느냐고. 이젠 한국에서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도 다 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길에서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을 때, 운전하다가 거칠게 끼어드는 사람을 봤을 때,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충돌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하지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습관의 차이,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가라앉는다. 이제는 타인의 사소한 선행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더 많은 웃음을 지으며 살고 싶다.“(398쪽)

☞공감언론 뉴시스 tide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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