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싫어" 바보 취급 당하며 만든 이 맥주…하이네켄도 제쳤다[월드콘]

김종훈 기자 2024. 7. 13.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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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사진=애슬레틱 X
"거래 사고가 아니라면 내 이름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트레이더로 살다 2017년 논알코올(non-alcohol) 맥주 스타트업 애슬레틱 브루어리 창업자로 변신한 빌 슈펠트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남자였다. 미국 억만장자 스티븐 코헨이 이끄는 헤지펀드 포인트72에서 근무한 그는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헬스장에 들렀다가 6시 반부터 일을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말 그대로 눈코뜰새 없이 일하고, 퇴근 후에는 항상 업무차 저녁 식사를 가졌다. 주말에는 지인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모임마다 항상 술이 함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2월 WSJ 인터뷰에서 그는 "나처럼 매일 보람찬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알코올은 맞지 않았다. 내 삶의 유리 천장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음주 후 피로와 숙취로부터 벗어나겠다면서 술을 끊기로 결심했지만, 모임 상대방과 잔을 맞춰야 했기에 아예 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14년 한 저녁 자리에서 논알코올 맥주를 주문하는 도전을 감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는 WSJ 인터뷰에서 진흙탕 같은 맛이 났다고 회고했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누가 제대로 된 논알코올 맥주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자, 아내는 "당신이 하면 되겠다"고 맞받았다. 그 말에 솔깃한 그는 바로 시장조사에 착수, '퇴준생' 생활을 시작했다.

논알코올 맥주 스타트업 애슬레틱 브루어리의 빌 슈펠트 창업자(왼쪽)와 존 워커 공동창업자./AFPBBNews=뉴스1
"논알코올 맥주에 투자? 당신 바보냐"
당시 논알코올 맥주 시장은 전체 맥주 시장의 0.3%밖에 되지 않을 만큼 비주류였다. 슈펠트에게 이 상황은 노다지처럼 보였다. 미국 성인 55%가 맛만 보장된다면 논알코올 맥주를 마실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설문을 접한 뒤 확신이 굳어졌다. 슈펠트는 지난해 8월 남성잡지 GQ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중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고 했다. 제대로 된 논알코올 맥주를 개발한다면 기존 맥주 소비자는 물론, 술을 안 마시던 소비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고 봤던 것.

여느 스타트업처럼 창업 과정은 쉽지 않았다. 슈펠트는 "논알코올 맥주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해달라고 말할 때마다 바보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맥주 개발에 꼭 필요한 양조업자를 섭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조업자들은 논알코올 맥주 이야기를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논알코올 맥주 이야기는 빼고 양조업자 구인 글을 올렸다. 이때 만나게 된 이가 존 워커 공동 창업자다.

워커가 논알코올 맥주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자, 슈펠트는 마음이 바뀔까 부리나케 그가 있는 뉴멕시코 산타페로 날아갔다고 한다. 의기투합한 두사람은 코네티컷 주로 이동, 한 차고에 간이 양조장을 차린 뒤 맥주 개발에 착수했다.

논알코올 맥주 스타트업 애슬레틱 브루어리의 빌 슈펠트 공동창업자가 제품을 살펴보는 모습./AFPBBNews=뉴스1
전에 없던 새로운 주조법 개발…의외의 강점 '온라인 판매'
논알코올 맥주는 '무알코올'과 '비알코올'로 나뉜다. 무알코올은 알코올이 발생하는 발효 과정 없이 맥주의 향과 탄산을 첨가한다. 비알코올 맥주는 맥주를 빚은 뒤 끓이거나 걸러내는 방식으로 알코올을 제거한다. 어떤 방식이든 일반 맥주와 같은 향을 내기는 어렵다.

슈펠트와 워커는 기존 공정을 통해서는 만족할 만한 제품을 얻기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주조법을 개발하기로 했다. 물, 맥아 보리, 오트, 홉, 밀을 재료로 발효를 거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내용은 '영업 비밀'이라고 한다. 결과물은 대성공이었다. 미국 음료회사 크루그 닥터 페퍼의 저스틴 위트모어 최고전략책임자(CSO)는 "그냥 맥주와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닥터 페퍼는 2022년 애슬레틱에 5100만 달러(703억원)를 투자했다.

제품 개발 후에는 논알코올 맥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스포츠대회 후원을 통한 마케팅에 돌입했다. 논알코올 맥주를 '맥주 대용품'이 아니라, 또 다른 맥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것. 일반 맥주와 달리 논알코올 맥주는 온라인으로 판매 가능하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시제품 판매를 끝내고 온라인 판매를 개시하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슈펠트는 "30초에 30박스를 팔았다"면서 지난해 매출이 9000만 달러(1240억원)를 넘겼다고 했다.

논알코올 맥주 스타트업 애슬레틱 브루어리에서 판매하는 논알코올 맥주 제품들./사진=애슬레틱 브루어리 홈페이지 갈무리

종류도 웬만한 맥주 회사 제품보다 많다. 현재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종류만 16종에 이른다. 라거, IPA, 흑맥주 등 익숙한 맛은 물론 블랙베리 맛, 라임소금 맛 등 이색적인 향을 첨가한 제품도 판매한다. 대부분 알코올 농도 0.5%도 이하로, 한국 기준으로는 비알코올 맥주에 속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구독자들만 먼저 받아볼 수 있는 비공개 한정판 맥주도 판매한다는 것. 한정판으로 소비심리를 자극하려는 마케팅 전략이 엿보인다.

컨설팅업체 닐슨IQ 조사에 따르면 애슬레틱은 미국 논알코올 맥주 시장의 19%를 점유, 버즈와이저와 하이네켄을 제쳤다고 한다. WSJ 보도에 따르면 애슬레틱은 최근 투자모금에서 5000만 달러(689억원)를 조달, 기업가치 8억 달러(1조1000억원)를 인정받았다. 미국 Z세대(1990년대 말~201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논알코올 맥주 시장이 인기 더해가는 만큼 애슬레틱도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애슬레틱은 양조장을 추가로 인수해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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