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직’ 라디오가 깨어났다…‘잠자리 안테나’의 아날로그 접속 [ESC]

신승근 기자 2024. 7. 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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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짠내 수집일지 FM 안테나
빈티지 오디오, FM 수신 한계
아버지댁 창고에 있던 안테나
세우니 라디오 주파수 또렷이
라디오 난청 지역인 경기도 가평에 이사한 지인을 위해 초단파(VHF) 야기 안테나를 설치했다.

짠내 수집을 통해 라디오 전파를 잡는 튜너·리시버(튜너와 앰프 일체형 오디오)가 하나둘 늘면서 선명한 에프엠(FM) 라디오 전파 수신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소품 오디오 한두 개 있을 땐 고민할 게 없었다. ‘막선’으로 불리는 일반 전선의 피복을 벗겨낸 뒤 구리선 가닥을 튜너·리시버의 안테나 단자에 연결한 뒤, 전파가 잘 잡히는 곳까지 선을 길게 늘어뜨렸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다’는 속담처럼 그러다 보면 그럭저럭 들을 만한 라디오 신호를 잡아냈다.

하지만 빈티지 오디오 수집품이 늘면서 제품 고유의 음색을 드러내는 잡음 없고 온전한 에프엠 전파를 수신하기 위한 수고와 번거로움도 커졌다. 대부분 빈티지 오디오 뒷면엔 75옴(Ω) 1개, 일종의 접지 단자인 그라운드(GND) 1개, 300옴 2개 등 모두 4개의 에프엠 연결 단자와 1개의 에이엠(AM) 안테나 연결 단자가 설치돼 있다. 75옴 단자와 그라운드 단자는 실외 안테나로 수신한 전파를 동축케이블로 오디오 본체에 전달하는 데 쓰인다. 동축케이블 플라스틱 보호바 안에 있는 구리선을 75옴 단자에, 보호바 바깥 흰색 그물망 전선은 그라운드 단자에 연결한다. 300옴 단자는 납작당면 형태의 두 가닥 전용선을 좌우에 한 가닥씩 연결하는 방식인데, 납작선 자체가 안테나 역할을 한다. 납작당면 형태의 300옴 전용선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국내에선 거의 생산하지 않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 국외 직구를 하거나 막선을 대체품으로 활용한다.

라디오 난청 지역

안테나 가설 뒤 엠비시(MBC) 에프엠 주파수 95.9㎒를 선명하게 수신한 마란츠 오디오.

문제는 빈티지 오디오의 안테나 연결 단자가 오디오 제조사마다 선호하는 형태나 모양이 다르고, 미국과 유럽 등 생산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대개 피복을 벗겨낸 구리선을 단자에 묶은 뒤 나사로 조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내가 당근마켓에서 산 독일 뢰베옵터 진공관 라디오(Magnet Fonovox 05737W)는 본체 내부 윗면에 알루미늄판을 부착한 자체 안테나에 연결한 납작선을 뒷면 소켓 형태의 안테나 단자에 플러그처럼 꽂는 방식이다. 1959년산 60여년이 넘은 빈티지 진공관 라디오 특유의 따듯한 음색을 구현하고 싶지만 제품에 내장한 안테나로는 한계가 있다. 엠비시(MBC) 에프엠(95.9㎒) 등 몇 개 방송사 주파수만 잡히는 데 소리가 속삭이듯 약하다. 2020년 이 라디오를 구한 뒤 5년 동안 선명한 방송을 듣기 위해 플러그형 납작선을 찾아다녔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일반 안테나 선의 피복을 벗기고 납작선 플러그에 연결한 뒤 최대한 베란다에 가깝게 두는 게 나름 터득한 해법이다. 소리는 조금 커졌지만 여전히 안 잡히는 주파수가 더 많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2020년 서울 동묘에서 구한 마란츠 튜너(ST530)는 동축케이블을 연결하는 75옴 안테나 단자 형태로, 이른바 유럽형인 팔(PAL) 방식이다. 미국·한국 제품은 동축케이블의 구리 심선을 원형 구멍에 꽂는 방식인데 이 제품은 본체에서 두꺼운 수나사 형태로 돌출한 부위에 암나사 형태로 케이블을 끼워야 한다. 일반적 동축케이블에 연결하려면 유럽형 안테나 변환 커넥터(젠더)가 필요하다.

경기도 가평으로 이사한 지인에게 음악을 들으며 전원생활을 만끽하라고 내가 수집한 마란츠 튜너(ST530)와 앰프(PM630), 인켈 스피커를 최근에 선물했다. 그런데 1m 길이의 팔 방식 기존 안테나로 서울에선 잘 잡히던 전파를 수신할 수 없었다. 엠비시 에프엠(95.9㎒), 시비에스(CBS) 음악 에프엠(93.9㎒) 등 즐겨 듣는 주파수는 아예 수신조차 안 됐다. 춘천 엠비시 라디오의 표준 에프엠(92.3㎒)과 음악 에프엠(94.5㎒)이 들렸지만 잡음이 섞였다. 난청 지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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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돌아가서

외부 안테나를 설치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1년 전 서울 집에서 전파가 잘 안 잡히는 파나소닉 튜너의 음질 개선을 위해 마련한 2m 길이의 폴대형 외부 안테나를 연결하면 이 정도 난청은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대형 외부 안테나 연결용 장치를 부착한 3m 길이의 동축케이블에 마란츠 튜너에 맞는 유럽형 안테나 변환 커넥터를 구해 마란츠 튜너의 75옴 단자에 연결했다. 그러나 전파 수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적합한 안테나를 구하러 용산 전자상가를 뒤졌다. 미국산 팡파레 안테나가 에프엠 신호를 잡는 데는 ‘지존’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팡파레 안테나 정품은 2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오디오를 선물 받은 지인도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용산에선 국산 카피 안테나를 권했다. 외관은 내가 설치했던 폴대형 안테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음질이 개선될 것이라는 확신도 서지 않았다.

지금보다 난청 지역이 많던 1970~80년대, 그 시절엔 어떻게 에프엠 전파를 잡았을까? 지직거리는 잡음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또 라디오와 텔레비전 모두 아날로그 전파를 송출하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지붕 위에 ‘잠자리 안테나’를 설치했다. 잠자리 안테나는 30~300㎒의 초단파를 수신하는 브이에이치에프(VHF) 야기 안테나다. 1926년 일본 야기 박사가 발명한 안테나로 주파수 87.5~108㎒ 대역의 에프엠 라디오 신호와 216㎒ 이하의 2~13번까지 텔레비전 채널의 영상과 음성을 수신하는 데 적합했다. 그 시절 좀 더 선명한 영상과 음질을 수신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 잠자리 안테나를 돌리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고화질·고음질 방송을 위해 극초단파인 유에이치에프(UHF) 방송과, 이동하며 시청 가능한 디지털 방송인 디엠비(DMB) 방송이 일반화하고, 광케이블로 집집마다 쌍방향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 멀티멀티미디어 구동이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면서 그 많던 잠자리 안테나도 사라졌다.

라디오 신호를 잡기 위해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아버지가 거주하는 양평 전원주택의 전 주인이 난청을 해결하려 안테나를 달았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 건물 위, 복숭아 나무 사이에 우뚝 선 안테나가 처음 눈에 들어왔다.

지난 7일 안테나를 분해해 가평 지인의 전원주택으로 옮겼다. 혹시 몰라 지붕 위에 설치하기 전 마당 난로에 묶어 안테나를 세웠다. 에프엠 수신의 감도를 알려주는 마란츠 튜너의 바 형태 램프는 그동안 1개 이상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자리 안테나를 연결하자 세번째 옅은 노란색 램프까지 선명하게 불이 들어왔다. 엠비시, 시비에스, 클래식 에프엠 등 그동안 들리지 않던 거의 모든 주파수가 수신됐다. 지켜보던 이들이 환호했다. “휴대폰에 방송사 앱을 다운 받으면 나라 밖에서도 선명한 디지털 에프엠을 듣고 보는 시대에 무슨 청승이냐“고 면박을 주는 이들이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똑같이 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이런 수고 자체가 아날로그의 맛”이라고 나는 답한다.

글·사진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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