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기업 주도 경제성장… 성공과 실패 되돌아보다
일부 국가는 1인당 소득 20배 늘어
20세기 ‘물질적 빈곤’의 종식 평가
美·유럽 중심 성장 이룬 시장경제
대공황·극심한 불평등 우려 시각도
사회민주주의적 정책 평가도 눈길
20세기 경제사: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가/ 브래드퍼드 들롱/ 홍기빈 옮김/ 생각의힘/ 3만7800원
지금에야 틀린 분석이자 전망이라는 게 분명해졌지만, 그래도 그의 주장은 1870년 이전까지는 비교적 들어맞았다는 평가다. 농경의 발견 이래 1만년 동안 기술이 인구 증가와 속도 경쟁에서 빈번히 패배하면서, 인간들은 힘겹게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런 기술과 기업 주도의 근대적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북대서양 일부 국가는 1인당 소득이 1870년에 비해 20배 이상 증가했다. 지독한 가난에 가둔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최극빈층 비중 역시 1870년에는 무려 70%에 달했지만, 이제는 9%가 되지 않는다.
저자는 먼저 20세기를 단순히 1900년부터 1999년까지로 보는 게 아니라 역사와 경제의 흐름에 따라서 확장한다. 즉 인류를 극심한 빈곤에 가두었던 문을 여는 데 성공한 1870년부터 이 성공이 가져온 부의 급격한 상승 궤적의 속도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2010년까지의 140년을 ‘장기 20세기’로 규정한다.
이는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과 대비된다. 홉스봄은 19세기를 1776년부터 1914년까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흥했던 ‘장기 19세기’로, 20세기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소련이 몰락한 1991년까지 현실 사회주의와 파시즘이 세계를 뒤흔든 ‘단기 20세기’로 규정했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취가 좋았던 해법은 제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을 휩쓴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었다고 분석한다. 서구 각국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소득 부조와 누진세를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에 따라 전후 1946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평균 3.4%를 기록했다.
1990년대 인터넷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거친 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 경제위기에 주요 국가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장기 20세기는 마침내 2010년에 끝났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0.6%로 쪼그라들었다.
“… 세 번째 변화는 2008년에 시작된 대침체로, 우리가 1930년대의 케인스주의의 교훈을 모두 망각했을 뿐 아니라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할 역량도 의지도 부족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네 번째 변화는 대략 1989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가 글로벌 기후위기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사건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이후의 역사는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전혀 다른 거대한 내러티브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마치 도마 위에 재료를 놓고 멋지게 요리하듯 저자는 수많은 쟁점과 깨알 같은 디테일을 잘 요리한다. 그리하여 경제사의 주요 사건이나 경제학사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은 마치 영화의 조연처럼 빛난다. 1, 2차 세계대전, 대공황, 냉전, 사회주의 몰락, 무솔리니,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리훙장, 덩사오핑, 맬서스, 하이에크, 케인스, 폴라니, 마셜 플랜, 볼 파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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