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연구 삶을 걸었다… 마침내 새 의학 시대를 열었다
고국 떠나 美 대학서 이방인생활
평생 치료용 mRNA 외톨이 연구
코로나 19 백신 개발에 큰 기여
2023년 노벨상… 집념의 회고록
“당신은 가능성·씨앗… 멈추지 말라”
돌파의 시간/ 커털린 커리코/ 조은영 옮김/ 까치/ 1만8000원
“커티,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요. 내일부터 전화에서 불이 날 테니까.”
커리코는 30년간 mRNA 연구에 매진했다. 하나하나 연구 성과를 쌓아가던 그는 1996년 mRNA를 세포에 집어넣어 혈전 형성의 위험을 줄여줄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복사기 차례를 기다리다 드루를 우연히 만났다. 자신처럼 ‘논문 읽기광’이라 복사기 앞을 떠나지 않는 면역학자였다.
자물쇠와 열쇠처럼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당시 드루는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백신을 세포에 전달할 방법을 고심 중이었다. 이들은 백신용 mRNA 연구에 의기투합했다. 실험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mRNA를 넣어 세포가 HIV의 단백질을 기억하고 훗날 진짜 바이러스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큰 난관이 불거졌다. 세포가 대량의 염증성 면역반응을 보였다. 다시 몇 년간 거듭된 연구 끝에 발견한 해결책은 ‘슈도유리딘’이었다. 뉴클레오타이드(RNA의 기본 단위체)가 변형된 mRNA를 사용하면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세포에서 더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었다. 2005년 논문은 바로 이 결과를 실었다.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박봉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첫발을 뗐다. 존스홉킨스대로 이직 기회가 왔다. 그를 고용했던 미국 생화학자 로버트 수하돌닉이 저주를 퍼부으며 화냈다. 미국을 떠나게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우여곡절 끝에 커리코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유펜) 의대에 연구 조교수로 자리 잡았다. 유펜 시절은 ‘불운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는 mRNA로 한 번도 연구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공공·민간 모두에서 거절당했다. 5년간 조교수로 일하자 ‘부교수로 승진 아니면 퇴출’의 순간이 왔다. 승진에 실패했다. 나가는 대신 선임연구원으로의 강등을 택했다. 오십대가 될 때까지 그는 박사급 연구원 하나 없이 혼자서 실험을 다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대학 신경외과 과장은 그에게 툭하면 실험실 공간 비용만큼의 값어치를 하라고 닦달했다. 2005년 논문 출판 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교수직 복귀를 요청했지만 인사팀에서 “교수 자격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2013년에는 강제로 방을 빼는 수모를 당했다. 하루아침에 실험실 물품이 모두 복도에 내놓아져 있었다. 그는 “저 실험실은 언젠가 박물관이 될 것”이라며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책의 진가는 이런 ‘노벨상 수상자의 극적인 실패기’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한 과학자가 ‘치료용 mRNA’라는 꿈을 향해 묵묵히 정진한 과정, 그가 가진 연구 철학과 삶의 자세가 감동을 끌어낸다.
커리코는 과학에 대해 “앞서간 과학자들이 성취한 수천 가지 다른 발견들로 이뤄진 모자이크”라고 말한다. 모든 과학자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강조한다. 대학을 떠나 독일 제약 스타트업 바이온텍에서 일한 그는 화이자·바이온텍의 백신 개발 주역이지만, 자신의 성과는 수많은 선행 연구자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여긴다.
그에 따르면 과학 실험은 고되고 느리다. 인내심을 갖고 ‘한 가지 더’라는 자세로 변수를 바꿔가며 기약 없이 미지의 땅으로 걸어가야 한다. 연구자의 삶을 포기할 이유는 많고, 포기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과거 자신처럼 ‘무명의 삶’을 사는 후배들에게 “당신은 가능성이자 씨앗이니 멈추지 말아라”라고 당부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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