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 상장 신청건 50~60건... 중소 운용사, ‘판매사 독립’ 가능해질까
은행·증권사 판매 의존 관행 바뀔 수도
ETF 존재감 없던 중소형 운용사 ‘기대’
일반 공모펀드가 이르면 올해 안에 상장지수펀드(ETF)처럼 한국거래소에 상장된다. 일반 펀드도 증권사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와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모펀드 상장은 그동안 ETF 시장 성장에서 소외됐던 중소형 자산운용사에 기회가 될 전망이다. 펀드를 판매해 주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눈치를 덜 봐도 되기 때문이다. 펀드가 상장되면 중소형 운용사가 은행·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더 많은 투자자에게 상품을 노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자산운용사 약 30곳이 현재 운용 중인 공모펀드 일부를 한국거래소에 상장하고 싶다며 금융위원회에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신청이 접수된 펀드의 개수는 50~60개다. 이 중 금융위원회가 기존 금융 서비스와의 차별성을 인정한 펀드만 승인을 받아 ETF처럼 거래될 예정이다.
올해 안에 상장 공모펀드를 내놓겠다는 게 금융위의 목표다. 올 초 금융위는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혁신금융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신청하라는 메시지를 냈다. 상당수 펀드가 승인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펀드는 가입한 방법과 수수료 납입 방식에 따라 클래스가 나뉜다. 오프라인 가입인 A클래스, 온라인 가입인 C클래스에 이어 상장 공모펀드용 X클래스가 추가된다. 상장은 기존 투자자의 동의를 받는 과정을 거친다. 공모펀드를 상장하려는 운용사는 클래스별 가입자에게 ‘상장을 위해 X클래스를 만들 건데 이동하겠냐’라고 묻게 된다. 공모펀드 총 설정액이 1조원이고 X클래스 이동을 승낙한 투자자 자금이 3000억원이라면, 3000억원 규모로만 상장하게 되는 것이다.
공모펀드 상장 절차가 본격화하면서 중소형 자산운용사 사이에선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전만큼 판매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간 운용사가 공모펀드를 만들어 가입자를 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게 판매사에 잘 보이는 것이었다. 매달 새 공모펀드가 쏟아져 나오는 탓에 판매사의 추천 펀드 리스트에 드는 게 쉽지 않다. 1조원대의 투자자 손해가 발생한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판매사들은 펀드 판매에 덜 적극적이 됐다.
그렇다 보니 이 리스트에 포함되려면 자산운용사는 보수적으로 상품을 설계해 늘 판매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판매사가 ‘NO’하면 아무리 좋은 상품이어도 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형 운용사는 별도의 ETF 조직을 갖추지 않고도 관련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상장 공모펀드는 사실상 ETF라서다. ETF 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큰 비용과 시간이 든다. 조직을 신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고 마케팅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모펀드를 상장하면 이런 수고를 덜 수 있다. 현재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며 ETF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ETF와 달리 공모펀드 상장 과정에선 자금을 모집할 필요도 없다. ETF를 상장하려면 자본시장법상 국내 증권사들과 유동성공급 계약을 맺고 이들로부터 최소 70억원을 받아야 한다. 공모펀드는 기존 펀드를 상장으로 전환만 하면 된다. 증권사를 돌아다니며 시딩(초기설정자금)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ETF보다 운용의 자율성이 크다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ETF는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라 이 지수와 괴리율이 높아지면 최악의 경우 상장이 폐지될 수도 있다. 운용역들은 ETF를 운용할 때 기초지수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상장 공모펀드는 이런 기초지수가 없다. 더 공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운용역의 운신 폭이 넓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높은 수익률로 연결되진 않는 만큼 운용 실력이 그대로 드러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 공모펀드도 경쟁이 치열해지면 ETF처럼 시장이 대형사 중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운용사들이 판매사로부터 독립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위는 상장 공모펀드를 우선 혁신금융서비스로 운영한 후, 시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상장 공모펀드를 아예 법제화할 계획이다. 시기는 일러야 내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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