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태현 고백 덕분에 정신과 문턱 낮아져…좋은 베르테르 효과”

김명지 기자 2024. 7.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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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공황장애 고백, 일반인 관심 높여 진단 급증
배우 차태현이 영화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모습. 차태현을 포함해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고백이 잇따르면서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이 낮아졌다는 연구가 나왔다. /뉴스1

가수 김장훈이 지난 2011년 8월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소속사는 그가 신곡 방송 활동과 사진집 출간, 페스티벌, 공연 준비까지 과로를 했다고 설명했지만, 대중은 공황장애라는 낯선 말에 더 관심을 보였다.

공황장애는 정신의학에서 흔한 병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극심한 두려운 기분이 들고,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심박수는 최고조에 이르고, 식은땀이 나며, 숨이 막혀 메스껍거나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환자들은 “극심한 공포감으로 죽을 것 같고 어찌할 바를 몰라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한다.

김장훈의 고백 당시 한국의 공황장애 환자 비율(유병률)은 1만명 당 56명 정도로 세계 최하위였다. 한국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기보다는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공황장애 유병률은 1만명당 753명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심리적으로 동조해 자살 시도가 늘어나는 것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연예인의 공황장애 고백이 환자를 늘린 것은 치료 기회를 넓힌 것이니 좋은 베르테르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김장훈과 대화를 나누다가 연예인의 공황장애 고백이 실제로 사회에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해졌다.

신 교수는 같은 병원 예방의학교실 조민우 교수와 연구를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투병 고백이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을 낮추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이 맞는지 확인했다. 신 교수팀은 2010년 12월 배우 차태현의 공황장애 고백을 기점으로 지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공황장애 진단율과 공황장애와 강박장애에 대한 인터넷 검색 건수를 분석했다.

월별 공황장애 유병률 추이 /서울아산병원 신용욱 교수 제공

공황장애 월 평균 발생률은 지난 2004년 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의 인구 10만명당 5.4명이었는데, 2010년 12월 10만 명당 6.5명으로 증가했다가 2021년에는 10만 명당 610명까지 늘었다. 차태현을 기점으로 삼은 것은 그 즈음에 공황장애 고백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인 2011년 8월 김장훈, 10월 코미디언 이경규, 2012년 1월 코미디언 정형돈도 자신의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신 교수는 연예인들의 솔직한 투병기 공개가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데 용기를 줬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다만 공황장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공황장애로 잘못 진단받은 환자가 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불안장애나 불면증인데, 편의적으로 공황장애라고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에서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공황 장애의 연간 유병률이 다른 정신 질환 진단보다 훨씬 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연예인 여러 명이 증상을 공개했지만, 차태현이 공개한 것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신 교수는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대중적인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정신건강의학과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데 차태현의 공로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11일 국제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 네트워크 오픈’에 게재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황장애는 어떤 병인가.

“마사지 팩을 하면서 얼굴 전체가 덮일 때 갑자기 숨이 막힌다거나, 비행기 안에서 문득 폐쇄 공간이란 것을 떠올릴 때 불현듯 공포감이 들면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다 공황장애는 아니다. 병으로 진단받으려면 예기치 못한 공황 발작이 반복돼야 하고, 걱정과 염려가 최소 한 달 이상 계속돼야 한다.”

–공황장애는 주로 어떤 사람이 걸리나.

“공황장애 환자를 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런 사람들은 공황장애에 잘 걸리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공황 발작이 주로 일어나는데,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발작이 일어났다면 직장 생활에서 심리적 압박을 겪는 것이고, 돌아가는 길에 발작이 일어 났다면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모든 스트레스를 참더라도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겠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 사람들도 잘 걸린다.”

–공황장애 유병률이 10여년 만에 세계 최하위에서 세계 최고가 됐다.

“그래서 엄브렐러 진단(우산 진단)이라고 의심이 든다.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대표 주자지만, 불안하고 공포증이 있다고 다 공황장애가 아니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잘 알려진 질환이다 보니, 의사들도 공황장애라고 편의적으로 진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면증도 불안장애도 공포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 공황장애라는 진단 안에 여러 세부 진단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왼쪽)·예방의학교실 조민우 교수. 두 교수는 연예인의 공황장애 투병 고백이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서울아산병원 제공

–연예인 고백 외에 다른 영향도 있지 않나.

“논문이 복잡해질까봐 세부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이번 사안에는 언론의 역할도 크다고 본다. ‘차태현을 괴롭혔던 공황장애는 무엇이었을까’라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구글 검색 패턴을 봐도 사람들이 어떤 병인지, 어떤 치료법인지 검색한 결과들이 많았다. "

–공황장애는 어떻게 치료하나.

“약만 먹어서는 다 낫지 않는다. 30%는 약으로 해결되고, 30%는 잘 듣지 않고, 30%는 심리 상담으로 해결되고, 10%는 약이 아예 듣지 않는다.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당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치료를 시작한다. 몸이 힘들다고 하니까 그것이 심리적 영향으로 숨이 막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우는 환자들도 있다. ‘내가 너무 그동안 안달복달 살았구나’라고 한다. 그러니 템포를 좀 늦추는 심리적 접근을 환자 스스로 해서 삶이 조정되면 약물 반응도 좋다. 상담 몇 번으로 낫는 경우도 있다.”

–치료 기간은 어떻게 되나.

“증세가 완화되더라도 약을 더 오래 복용하는 환자가 많은 편이다. 공황장애와 같은 우울증 치료제로는 세로토닌을 쓴다. 세로토닌을 투약하면 사람이 좀 느슨해진다. 성격이 무덤덤해 진다는 뜻이다. 공황장애는 환경도 문제지만 성격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증세가 좋아져도, 예민한 사람들은 약을 끊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약을 계속 복용하는 경향이 있다.”

–약을 평생 먹어도 하나.

“이 약은 신경안정제나 조현병약과 달리 속이 약간 메슥거리는 정도 외에는 큰 부작용이 없다. 세로토닌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내는 호르몬이라서 그 농도가 10년 이상 좀 높게 지속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 세로토닌을 복용하면 성욕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는데, 조루가 있는 남성 환자에게는 오히려 약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이 있다. 항불안제 스무 종류 중에서 성욕 저하가 없는 약도 세 종류 정도 된다.”

–’공황장애는 연예인병 아니냐’는 말도 있다.

“연구 결과를 신중하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예인의 고백이 불필요하게 정신과 진단률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은 오히려 환자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연예인이 고백한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참고 자료

JAMA Network Open(2024), DOI: https://doi.org/10.1001/jamanetworkopen.2024.2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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