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높이는 어디까지를 말할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7.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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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기록엔… 지면부터 성 돌이 끝나는 지점까지
60개 시설물, 원성·곡성으로 이뤄진 ‘화성’
땅 속 기초·미석은 성 높이에 포함 안돼
성 높이는 어디까지일까.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은 성과 시설물로 구성된다. 시설물은 19개 유형에 60개 시설물이고 성은 원성과 곡성으로 나뉘고 있다. 의궤에 화성의 전모를 여섯 가지 특징으로 나눠 언급하고 있다.

첫째, 전체 형국은 만년의 금성탕지다. 둘째, 산이 많아 안팎으로 성을 쌓는 협축으로 하지 않고 내탁으로 했다. 셋째, 모두 돌로 쌓았다. 넷째, 성 밖에 자연 도랑이 있어 호참을 설치하지 않아도 저절로 견고한 성 구실을 할 수 있다. 다섯째, 성을 쌓는 제도는 허리가 약간 잘록한 홀(笏) 모양으로 했다.

끝으로 성의 여러 규격을 언급하고 있다. “높이는 2장, 두께는 아래는 5장, 위는 3장, 전체 둘레 길이는 2만7천600척이므로 4천600보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성 두께는 성석과 내탁을 합친 두께이고 성의 총 길이는 원성과 곡성을 합한 길이 임을 밝히고 있다. 성 길이는 옹성과 용도 길이는 제외한 길이이다. 의궤에 옹성과 용도를 성과 분리해 별도로 보고 있다.

그런데 성 높이 기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없다. 과연 성 높이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할까? 특히 높이에 미석이 포함될까, 아닐까? 성을 성 밖에서 보면 아래부터 성석, 미석, 여장이 보인다. 성의 기초는 땅속 부분이라 보이지 않다.

의궤에 체성 위에 미석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결론을 말하면 ‘성 높이는 지면부터 성 돌이 끝나는 지점까지’가 답이다. 따라서 미석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유를 찾아보자. 미석이 성 높이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몇몇 기록이 있다. 의궤도설 여첩 편을 보자. 첫째, 미석을 설명하며 “체성 위에 미석을 물렸는데 마치 처마 모양처럼 됐다”라는 기록이 있다. 원본에서 미석의 위치를 ‘체성 위에’라 했다. 이 말은 ‘체성은 미석 아래까지’라는 의미다. 체성과 미석을 구별한 근거로 볼 수 있다.

둘째, 여장을 설명하며 “미석 위에 장대를 설치하고 장석을 붙였다”고 기록했다. ‘장대(墻臺)를 설치한 지점이 미석 위’라는 말은 ‘여장이 미석 위부터’ 시작됨을 말하는 것이다. 장대란 여장 돌 쌓기의 밑바탕 긴 돌을 말하고 장석은 여장을 쌓는 돌을 말한다. 그렇다면 ‘체성’이 ‘성’과 같은 말이냐를 확인하면 된다.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에서 체성에 대해 “성벽의 몸체 부분으로 성곽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구성 요소”라고 했다. 여기서 성벽의 몸체는 바로 ‘성신(城身)’이다. 또 화성의 성 모양에 대해 “화성의 성신 모양은 규형”라는 기록이 있다. 규(圭)형을 형성하는 부분이 성신이고, 지면에서부터 미석 밑까지를 말하는 것이므로 성신은 성을 의미한다.

땅속 성터 기초는 ‘성근(城根)’, 즉 성의 뿌리란 용어를 사용하므로 성신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땅속에 있는 성의 기초 부분은 성 높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성 높이 기준은 지표면에서부터 미석 아래까지’로 정의할 수 있다. 땅속에 있는 기초 두께와 미석 두께는 성 높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조는 화성 성역에서 성의 기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초의 깊이는 정약용의 기본계획 4척보다 50%를 더 늘린 6척으로 했다. 수원지방의 동한(凍限)을 고려한 깊이다. 기초의 넓이는 10척 계획에서 100% 더 늘린 20척으로 했다. 성의 석한(石限)을 고려한 넓이다. 요즘 용어로 동결심도와 지내력을 말한다.

1970년대 복원 시 사용한 벽돌 미석은 현재 균열이 생기고 깨져 나간 상태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지금부터는 ‘미석(眉石)’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미석 재료다. 특별히 살피는 이유가 있다. 현재 화성에는 돌로 만든 미석과 벽돌로 만든 미석이 모두 설치돼 있어 탐방객들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원래 미석 재료는 돌일까, 벽돌일까, 아니면 혼용했을까?

먼저 미석이란 용어에서 재료가 돌임을 알 수 있다. 미석에서 석은 돌을 말한다. 만일 벽돌로 미석을 만들어 사용했다면 ‘미벽(眉甓)’이란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구조로 봐도 돌이어야 한다. 미석은 두께가 3촌(寸)에서 5촌 사이이다. 얇은 판으로 된 미석은 그 위에 설치된 여장의 하중을 장기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돌이어야만 한다. 벽돌 재질로는 장기간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내용은 지금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복원 시 많은 구간에서 미석 재료로 돌 대신 벽돌을 사용하였다. 아마 얇은 판형의 돌로 가공하는 것이 공사비와 공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잘못 사용된 벽돌 미석은 균열이 가고 깨졌다. 복원 당시 벽돌을 사용한 구간이다. 보기도 흉할 뿐 아니라 최초 성역 당시 장인이 부실공사했다고 오해받는 형국이다.

미석 재료는 돌이다. 동장대 뒤 여장처럼 여장이 벽돌 여장이라 해도 미석은 돌로 만든 미석이어야 한다. 미석 재료는 돌이어야 여장 하중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성 높이 기준을 알아보며 미석은 성 높이에도, 여장 높이에도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세 치만큼 돌출한 미석은 단조로운 성면에 다양한 아름다운 요소를 더해준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이제는 미석의 설치 목적이다. 미석은 두께가 4치인데 성면에서 3치가 눈썹처럼 돌출돼 있다. 미석의 기능에 대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물 끊기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일 뿐이다.

그러면 무슨 역할을 했을까? 더 중요한 목적은 성의 단조로운 면에 긴장감을 주기 위한 심리적 미적 디자인 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변화, 단락, 강조, 명암 등 미적 요소를 더해 주고 있다. 미석이 없는 성벽을 상상해 보라. 시집가는 새색시가 연지곤지도 없고 눈썹도 민 모습일 것이다.

세 치 돌출로 미학적 완성도를 이뤄낸 미석은 정조가 선사한 화성의 화룡점정이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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