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의사, '개인택시 운전사'와 비슷…최악의 의정갈등 촉발 이유"
'필수의료'란 용어 어폐 지적…"더 중요한 건 '보편적 의료(공공의료)'"
"전공의 공백 메운다고 '무의촌' 만들고 공공병원 2~3곳 지을 돈 퍼부어"
'절대적 공공의료 공급 확충·건보 보장성 강화·全국민 주치의제 실시' 등 제언
"한국의 의사는 교통업에 비유하면, 개인택시 면허제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의사들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을 해요. (의대) 입학한 친구들이 '나 이제 (의사)면허 땄으니 개원해서, 잘 살아야지' 하는데, 그럼 의사 숫자를 늘리면 어떻게 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경쟁자인) 면허자를 늘리겠다니까 당연히 반발하죠."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의료시스템의 질적 변화-시장에서 공공으로'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애초에 유럽처럼 공공병원 중심의 공공의사를 양성했다면, (의사 확충이) 동료가 늘어나는 것이기에 (의료계의) 반대가 덜했을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더불어민주당 김윤·김남희 의원과 진보당 전종덕 의원 등이 공동 주최했다.
정 위원장은 또 "(동료라 생각하면) 자신의 노동강도가 떨어지고 상의할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니 (공적 성격의) 버스운전사나 기관사 같은 사람도 늘려야 되는 것"이라며 "(만약) 한국의 교통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인택시 면허를 늘리자고 하면, 누가 여기에 동의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같은 맥락에서, 올 2월 '의대 2천 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시장 중심 의료공급 체계'라고 봤다.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의 비중이 2020년 기준 5.5% 남짓에 불과한 구조적 불균형에 더해, 민간병원마저도 거의 수도권에 밀집된 '쏠림' 현상을 짚은 것이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의료개혁'을 대표하는 대규모 의대정원 확대는 처음부터 공공성 기반이 아니라 '시장의 요구'에 따른 인력공급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국내 최우수 엘리트들이 앞 다퉈 지원하는 의과대학 입시 문제까지 겹쳐진 점을 들어 "현재 전공의 파업으로 촉발된 의료사태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사집단의 (단순한) 반발로만 해석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의사가 더 많이 배출되는 것이 꼭 '좋은 의사'가 더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했다. 정 위원장은 "(가령 승객이) 서울역에서 신촌에 가자고 하면, 그냥 (정직하게) 가는 의사들도 있겠지만 (수익 극대화를 위해) 막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기는 거 아니겠나"라고 되물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정 위원장은 앞서 정부가 표면상 의사 증원의 명분으로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필수의료'란 말 자체에 일종의 어폐가 있다는 해석도 내놨다. 우선 학술적으로 봐도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해외엔 필수 의료(Essential medicine)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필수적' 의료인가는 각국의 주관적 기준일 수밖에 없다며 "사실 (환자의 생명·건강을 위해) 꼭 해야 되는 것을 일컫는 거라면, 곧 '공공의료'"라고 규정했다.
경상의료비 중 임의가입(민간의료보험)이 지난 2004년 2% 수준에서 2020년 9.1%로 치솟은 점을 꼽으며, 민영보험 활성화를 부추긴 공급구조도 지적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의료보장성이 높아 실손보험상품이 별로 팔리지 않는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진료 양산과 더불어 과잉 진단·검진·투약 등이 문제인 기형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등엔 이러한 시장의존적 체계를 개선할 대책이 거의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도 정부가 '필수의료' 문제만 해결되면 의료이용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는 양 말하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밝혔다.
현 정책위원은 "필수(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다 같이 필요한 '보편적 의료'"라며 "이는 보장성을 확대해야 가능한 치료인데, 이 얘기가 쏙 들어간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정부가 현재 60%대 정도인 보장성을 더 이상 제고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과 관련, "이렇게 되면 전 국민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이 약화될 수 있다"며 "결국 국민들이 민간 실손으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정부가 의료공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대처들이 정부 정책의 모순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 정책위원은 정부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겠다고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등을 주요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한 후 비대면진료를 보건소·보건지소까지 확대한 것을 두고 "그렇지 않아도 지역에 하나뿐인 의사들을 도시로 유출시켜 실질적인 무의촌(無醫村)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또 다른 대체인력으로 활용 중인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등에 대해서는 "인턴·레지던트의 경우에도 수개월 혹은 수년간 훈련하고도 위험한 행위들이 있는데, (정부가) 98가지 업무를 (간호사에게) 넘기면서 교육과 훈련을 각 병원에 떠넘겼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사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공의 이탈로 경영난에 빠진 대학병원 등을 살리려고 건보 재정과 국비를 연이어 투입하는 상황을 놓고 "(항상) 정부 재정이 없어서 취약지 공공병원을 못 짓는다고 하더니, 이미 앞선 석 달 간 최소 2~3개의 (300~400병상 규모) 공공병원을 지을 돈을 쏟아 부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가 다섯 달째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들인 건보 재정은 약 1조 원에 달한다.
현 사태를 부른 의사 증원 역시 '2천'이란 숫자만 남은 채 정작 늘어난 의사들의 배치와 역할 등의 '알맹이'는 빠졌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 등은 지금의 '시장 의료' 탈피를 위해 △절대적인 공공의료 공급의 확충 △건보 보장성 강화와 혼합진료 금지 △복지 기반으로의 의료체계 전환 △주치의제도 등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 위원장은 "현재 논의 중인 의사 증원 등은 12년 정도 뒤에나 구현 가능한 방안"이라며 "당장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의사인력은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진료과에 대한 획기적 지원과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필수의료과의 경제적 보상을 높여주는 것뿐 아니라 임상교수의 사회적 지위 보장 등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 정책위원은 '전 국민 주치의제' 실시를 통해 질병의 예방적 관리에도 힘써야 한다고 봤다. 또한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법인 형태의 좋은 공공병원이 인구 20만 명당 500병상 종합병원 이상 규모로 필요하다"며 "근무인력은 지역 공공의대 등에서 배출하고 가급적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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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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