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인정 확정판결 ‘0건’… 브레이크등 켜진 일부 사건 무죄

최원영 기자 2024. 7. 13.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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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시청역 참사 계기로 본 ‘급발진’ 의심 사건들
2018년 BMW 몰고 가던 부부 숨져… 2심 재판부, 차량 제조사 책임 인정
“운전자 사고 이력 없어, 차 문제”… 고려대서 경비원 친 50대 운전자
차 방향 틀고 브레이크등도 켜져… 사고 회피 노력 인정받아 ‘무죄’
판결에 활용하는 사고기록장치… 사고 전 5초간 브레이크 작동 기록
“차 미쳤다” 블랙박스 음성도 근거
《‘급발진’ 인정 확정판결 0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가해 운전자가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급발진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 내려진 급발진 의심 사고 판결문을 분석하고, 급발진 의심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9명의 희생자를 낸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참사의 원인을 경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가해 차량 운전자가 주장한 “급발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에 있었던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 사례들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급발진으로 의심을 받았던 교통사고는 최소 20건 가까이 있었지만, 대법원이 급발진으로 확정판결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 급발진은 도대체 왜 일어나고, 왜 발생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울까. 동아일보는 최근 5년 새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 판결문을 전수 분석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봤다.》


● 2018년 BMW 부부 사망, 2심서 제조사 패소

급발진 의심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왔을 때 대법원이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사건은 아직 없다. 특히 운전자가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을 때에는 차량에 결함이 있는지, 급발진이 맞는지를 운전자가 입증해야 한다. 차량 설계 및 성능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제조사와, 차량 구조에 대해 비전문가인 운전자가 맞붙으면 운전자가 불리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하급심에서는 운전자 손을 들어준 민사 판결이 한 건 있었다. 2018년 5월 충남 논산시 방면 호남고속도로에서 60대 운전자 부부가 BMW를 몰고 가다가 도로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숨졌다. 이들의 자녀는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2020년 11월 2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가 1심 판결을 뒤집고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인정했다.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것. 다만 제조사는 곧바로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남겨 두고 있다.

2심 재판부는 사고 차량이 300m가량을 비상등을 깜빡이며 갓길을 고속 주행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 운전자에게 과속 습관이나 과태료 처분 전력이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급발진이라고 판단했다. 제조사는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은 것에 비춰 볼 때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아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차량 엔진에 결함이 있을 경우 브레이크가 딱딱해질 가능성 등이 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시도를 안 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급발진이 직접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분석도 나온다. 운전자에게 잘못이 없으니 차량에 결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라는 취지다.

● 5년 동안 3건은 운전자 ‘무죄’ 확정

2022년 12월 6일 강원 강릉시에서 발생한 티볼리 에어의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을 소방대원들이 수습하는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민사가 아닌 형사재판에서는 급발진 의심 사례에서 운전자 손을 들어준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형사재판에서 운전자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검사가 입증을 해야 한다. 급발진 때문이 아니라 운전자가 위험하게 운전해서, 혹은 운전 중 착각이나 실수를 해서 사고가 났다는 것을 검사가 입증하지 못하면 운전자는 무죄로 결론 날 때가 많다. 운전자가 사고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했을 경우 무죄가 나온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 같은 판결이 차량 급발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차량 급발진 때문에 사망 교통사고를 냈다”고 주장한 50대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지난해 6월 대전지법 판결이다. 2020년 12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캠퍼스에서 지하주차장을 나온 50대 운전자의 그랜저가 갑자기 캠퍼스를 질주해 60대 경비원을 치어 숨지게 했다. 당시 그랜저는 주차장을 빠져나온 직후에 시속 10km로 천천히 우회전하다 갑자기 13초간 급가속하면서 시속 68km로 달려 피해자를 쳤다. 그랜저는 보호난간과 충돌한 뒤에야 멈춰 섰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고 달리는 중 여러 차례 브레이크등이 켜진 점으로 볼 때 차량 결함을 의심하기 충분하다”고 했다.

이 사건은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운전자가 차량을 세우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이 재판에서 인정돼 무죄가 확정된 형사판결은 최근 5년간 3건 있었다.

2022년 11월에는 제주지법이 차량 2대를 들이받은 제네시스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첫 충돌 직전 블랙박스에 담긴 운전자의 음성이 “어우”, “어 뭐야” 등인 것을 감안하면 운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차량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운전자는 역주행하면서도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을 피해 연석에 최대한 차를 붙여 운전했고, 속도를 줄이려 일부러 연석에 충돌했다. 이어 신호등 기둥을 향해 운전대를 조작해 3차 충돌을 일으킨 후 차량을 세웠다. 재판부는 “20초 넘게 조향장치는 제대로 작동시키면서 제동장치 조작을 못 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차량이 운전자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2022년 1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추돌 사고로 1명을 숨지게 한 그랜저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고 지점으로부터 약 140∼170m 전방부터 브레이크등이 켜진 영상을 확인하곤, 이는 운전자가 차량을 멈추려고 노력한 증거라고 봤다. 또 사고 지점에 오기 전까지 비정상적인 운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2020년 3월 의정부지법은 그랜저가 편의점 건물로 돌진해 여성을 숨지게 한 사고에 무죄를 선고했다. 운전자는 “차량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브레이크 페달이 밟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운행 도중 브레이크등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죄 판단의 주된 근거는 블랙박스 음성이었다. 재판부는 “‘미쳤어, 이 차가 미쳤어’라는 육성이 녹음돼 있어 (운전자 진술의) 신빙성을 강하게 지지해 준다”고 판단했다.

● 대부분은 운전자 과실로 인정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급발진 의심 사건들에서는 운전자에게 유죄가 내려졌다. 최근 5년간 급발진 의심 형사사건 총 17건 중 14건이 운전자의 유죄를 확정했다. 사고 당시 운전자가 제동장치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지난해 10월 청주지법 충주지원은 교통사고로 2명이 숨진 사건에서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금고 4년을 선고했다. 사고 전까지는 가해 차량의 브레이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사고 지점에 이르기까지 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았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도 법원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된다. EDR은 차량에 장착된 기록 장치로 사고 직전 5초간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의 작동 상황을 기록한다. 지난해 1월 부산지법은 교차로에서 4명을 치어 중상을 입힌 벤츠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더 빨리 진행하는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EDR에 브레이크를 밟은 기록이 없고 브레이크등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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