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30원’… 勞 반발, 使도 불만
내년 1.7% 인상… 月209만원
勞 “물가 따지면 사실상 삭감”
使 “자영업자 한계상황 내몰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12일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정했다. 올해(9860원)보다 170원(1.7%) 오르면서 1988년 최저임금제도 시행 후 37년 만에 처음 시간당 1만 원을 넘게 된 것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급 기준으로 환산하면 209만6270원이 된다.
최임위는 전날(11일) 오후 3시부터 이어진 밤샘 회의 끝에 이날 오전 2시 반경 제11차 전원회의에서 투표를 거쳐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전날 밤 10차 전원회의에서 3차례 수정안을 냈으나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공익위원 제시구간을 참고해 노동계와 경영계의 최종안이 각각 1만120원, 1만30원으로 제시됐다.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퇴장한 가운데 투표를 진행해 23명 중 14명이 경영계 최종안에 찬성했다. 공익위원 과반이 경영계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경영계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 개막’을 우려했고 노동계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에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에서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동결돼야 했다”며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7%는 (2021년 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로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넘은 만큼 이제라도 그동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돌이켜보며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1만 원은 최저임금 급등 과정에서 소상공인에게 ‘심리적 마지노선’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는 물가 인상률, 경제성장률 등을 적절하게 반영한 공식을 법제화하고 이에 따라 정해야 매번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되풀이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심의 나흘만에 결정 ‘졸속’ 논란… “시스템 근본 개편 필요”
[최저임금 1만원 시대] 내년 최저임금 1만30원
경영-노동계가 의견 차이 못좁히자… 공익위원이 임금 결정 패턴 되풀이
비정규직 목소리 반영못해 한계… “물가-성장률 반영 산식 만들어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임위에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 건 올해 3월 29일이었고, 이후 5월 12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할 최임위 위원 27명이 구성됐다. 하지만 최저임금 금액에 대해 본격 심의가 시작된 건 이 장관 요청으로부터 100일 넘게 지난 이달 9일이었고 심의는 불과 나흘 만에 근로자위원 일부가 퇴장한 끝에 마무리됐다. 이를 두고 ‘졸속 결정’이란 비판과 함께 매년 법정시한을 넘겨 되풀이되는 파행을 멈출 근본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근로자위원 일부 퇴장 속 투표로 결정
9일 9차 회의에선 이례적으로 최초요구안을 제시한 직후 1차 수정안이 나왔고, 11일 10차 회의에선 오후 3시부터 몇 시간 간격으로 2∼4차 수정안이 나왔다.
최초요구안으로 올해보다 27.8% 오른 1만2600원을 제시했던 근로자위원과 9860원 동결을 주장했던 사용자위원은 4차 수정안으로 각각 1만840원과 9940원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공익위원들은 차수를 바꿔 12일 오전 1시부터 열린 11차 회의에서 양측 의견 차를 줄이기 위한 심의촉진구간을 1만∼1만290원으로 제안했다. 그러자 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은 “심의촉진구간 금액이 지나치게 낮다”며 투표 직전 퇴장했고 남은 위원 23명이 투표해 14명이 경영계 요구안에 찬성하며 12시간가량 이어진 마라톤 심의가 끝났다.
●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 이젠 한계”
이 위원장의 지적처럼 최임위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협의해 정하라는 취지와 달리 거의 매년 한쪽이 집단 퇴장하고 공익위원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노사가 합의하거나 공익위원 요구안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여 결정한 것은 7차례에 불과하다. 공익위원이 거의 매년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다 보니 양측 모두 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일도 반복됐다.
법정 기한 내 심의를 마친 것도 9차례에 불과하다.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 보니 회의장을 점거하거나 회의를 보이콧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일도 잦다. 올해는 특히 의사봉 탈취, 투표용지 파손 같은 전례 없는 물리력 행사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 중심 양대 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는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 인상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저소득 근로자 300만 명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실업 급여와 출산휴가 급여 등 26개 법령에 연동돼 있어 임금액 변동에 따른 여파가 광범위하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맞아 매년 되풀이되는 파행을 막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개선 방안으로는 물가 인상률, 경제성장률 및 이에 대한 노동 기여분 등으로 객관적인 최저임금 결정 산식을 만들어 자동 적용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벨기에처럼 정부가 전년도 임금에 물가 상승률만 더한 기준 금액을 제시하고 기한 내 노사가 합의하지 못하면 해당 금액으로 확정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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