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최저임금 1만원 넘었다

이우림.나상현.이수정 2024. 7. 1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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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시대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렸다. 12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시급 9860원)보다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확정했다. 월급(주 40시간·월 209시간 근무)으로 환산하면 209만6270원으로 올해(206만740원)보다 월 3만5530원을 더 받게 된다.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은 건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7년 만이다.

11일 오후 3시부터 이어진 약 12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지만, 최저임금을 두고 노사 간 충돌은 더 격해질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최저임금 1만원 돌파가 엄청난 것인 양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질 임금은 사실상 삭감됐다”며 “역사적이니 뭐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결정된 1.7% 인상률은 2021년 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다.

경영계도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업종별 차등 적용이 부결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이유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60대 김선웅씨는 “직원은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수당까지 계산해 월급을 올려줘야 하고, 아르바이트생은 지금도 1만2000원씩은 줘야 일하러 오는데 더 오르면 어떻게 식당 운영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최임위에서도 심의 파행이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난 만큼 제도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일 최임위에서는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 표결을 앞두고 노동계 측 위원들이 의사봉을 뺏고 투표용지를 찢기도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국회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이나 공식이 법제화되면 갈등이 되풀이되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모적 갈등을 반복하다 공익위원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올해에도 표결 가능한 수정안을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한 노사의 요청에 공익위원 측이 12일 새벽 심의촉진구간(1만~1만290원)을 제시하면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기응변적인 산식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중장기적 예측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 “제품값 올려야죠” “알바 줄일 수밖에” 당혹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가 끝난 뒤 퇴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노사 양측 최종안의 표결을 통해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안을 둘러싸고 노사 모두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12일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고용부는 이의제기 절차 등을 거쳐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고시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고시에 앞서 노사가 최저임금안에 대해 이의제기할 수 있지만, 재심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김경진 기자
이날 결정된 최저임금에 그동안 ‘동결 또는 인하’를 주장해 온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 9860원에서 1.7%(170원) 오르는 것이지만, 최저임금이 다섯 자리가 된 만큼 피부에 와 닿는 부담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중소기업들은 고용 규모를 줄이거나 상품 가격을 올리는 등의 대응 방식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시급 1만1000원을 주고 아르바이트 직원 1명을 고용해 김치찌갯집을 운영하는 유모씨는 “현재 1인분에 9000원인 김치찌개 가격을 최저임금이 오르는 시기에 맞춰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난해 2명이던 아르바이트생을 1명으로 줄였는데, 식자재값과 임대료에 더해 인건비까지 오르면 현재의 가격으로는 도저히 가게를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유씨는 “불경기에 손님들 주머니도 어려운 걸 알지만, 최저임금이 올라 어쩔 도리가 없다고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매출에 타격이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늘려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점주들도 있다. 서울 중구에서 부부가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오지현(48)씨는 “지금으로써는 아르바이트생 서너 명을 요일·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고용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모두 고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점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임재성(41)씨는 “바쁜 편의점도 있겠지만, 다른 업종 대비 편의점·PC방 등의 업무는 강도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지역과 업종 구분 없이 똑같은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씨는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이라는 보호막이 두텁게 보장되는 만큼 고용주의 어려움 대한 보호막도 함께 보완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이날 논평을 내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소공연은 “국내 사업체의 95%가 넘는 소상공인들은 이미 매출 저하 등으로 지불 능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지불 주체인 소상공인의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로 결국 ‘나홀로 경영’을 강요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현재의 높은 최저임금은 준수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취약 사업주는 범법자가 될 위험을 안고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며 “업종별 지불 능력을 고려한 최저임금의 구분 적용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저임금 노동자 최저 임금 수준 보장과 생활 안정이라는 최저임금의 취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노동계가 꺼내 든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두고도 공방이 예상된다. 특수고용노동자(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 중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이들을 위해 도급제 최저임금을 정하자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이 문제를 최임위에서 정하자고 주장했으나, 경영계는 최임위가 정할 권한이 없다며 맞섰다. 한국노총은 이날 “편파적 공익위원 구도에서 결정된 최저임금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하반기 플랫폼·특수형태고용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업종별 차별 적용 완전 철폐를 위한 입법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우림·나상현, 이수정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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