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한반도 미 핵자산, 사실상 상시 배치

정영교 2024. 7. 1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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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 ‘핵작전 지침’ 첫 문서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인도·태평양 4개국(IP4) 정상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바이든 대통령,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김현동 기자
“미국 핵자산에 전·평시를 막론하고 (북핵 억제와 북핵 대응을 위한) 한반도 임무가 특별히 배정될 것임을 확약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그간 재래식 전력에 기반을 뒀던 한·미동맹을 확고한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했다. 비핵 국가로 양자 차원에서 미국과 직접 핵 작전을 논의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다.” (국방부 관계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채택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의 핵심은 전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미국의 핵자산에 북핵 대응 임무가 부여됨으로써 ‘한반도 상시배치’에 준하는 효과가 생겨난다는 데 있다. 미국이 정상회담 문서에 이런 내용을 명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핵우산(확장억제) 개념도 종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김 차장은 “이젠 한반도 핵 운용에 있어 우리 조직, 우리 인력, 우리 자산이 미국과 함께하는 확장억제로 진화됐다. 핵-재래식 전력통합은 미국의 핵전력과 우리의 첨단 재래식 전력이 통합돼 북핵을 억제하고 북핵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효과는 북한의 피부에 전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전의 확장억제에 ‘일체형’이란 수식어가 더 붙은 ‘일체형 확장억제’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핵전력 사용은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확장억제 제공’이라는 큰 틀의 약속 아래 전략자산 전개 등을 미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한국에 통보해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작전지침에 따라 앞으로는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아래 미국의 어떤 핵 자산을 어떻게 운용한다는 내용을 미리 설정해두고 한·미가 지속 협의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12일 “기존에는 미국이 시간이 임박해서 (전략자산 전개를) 통보하고 협의해 왔는데 이제는 평시부터 24시간 공유하면서 전략자산 전개 필요성을 논의한다는 측면”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한·미 연합 작전계획에 미국의 핵전력과 한·미 재래식 전력의 통합을 반영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이 마련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국방부 관계자는 “작계 관련 내용은 큰 로드맵 차원에서 시간을 갖고 봐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작전지침은 공동성명이 채택된 시점부터 즉각 효력을 갖는다. 미국의 ‘3대 전략 핵무기(핵 발사 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핵무기 탑재 전락폭격기)’가 한반도 방어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략 자산 전개의 실태를 상세히 공개하지는 않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미국과 양자간 핵 작전 논의, 비핵국가 중 최초이자 유일”

미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지난달 26일 한·미·일 군사훈련 ‘프리덤 에지’ 참가를 위해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국방부 관계자는 “전략자산 운용을 공개하는 것은 적에 대한 억제 메시지를 현격히 약화한다”며 “별도로 공개하지 않더라도 상시 배치 수준으로 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미는 새로운 작전지침에 맞는 도상 훈련을 연례적으로 시행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가할 수 있는 다양한 핵 위협 및 사용 시나리오를 고려해서 연합 훈련과 연습의 내용을 가다듬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작전계획의 형태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지속 검토하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핵무기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될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핵·재래식 전력 통합(CNI) 작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대응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쪽 분량으로 알려진 이번 지침에는 양국이 핵·재래식 통합에 필요한 정보는 물론 북핵 위기 시 민감한 정보의 공유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보 공유 확대를 위해 요구되는 보안절차 강화 조치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공동성명은 지난해 4월 합의된 ‘워싱턴 선언’을 심화시키고 실효성을 높인 것이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에 가까운 조약을 맺은 상황에서 북핵 문제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 이번 공동성명 채택을 촉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지난해 7월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1년 만에 이 같은 지침을 완성하는 성과를 거둔 것을 평가하면서 “북한의 한국에 대한 어떠한 핵 공격도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작전지침 마련에 특히 한국 정부가 속도를 낸 건 오는 11월 미 대선 변수와도 무관치 않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반도 방위를 위한 전략자산의 전개 비용 등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간 한국은 공동 핵전략 운용 방안을 최대한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양국 간 합의가 법제화되지 않으면, 트럼프 집권 시 NCG를 흔들거나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한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불붙는 상황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미국은 정상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협의 채널을 통해 강력한 확장억제 제공 의지를 공개적으로 꾸준히 밝혀 왔지만 한국민의 체감도는 낮은 편이었다. 이 때문에 유사시 미 확장억제의 실질적인 작동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공을 들였을 것이란 얘기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핵무장 주장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지고 있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강력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핵우산·핵협의그룹을 활용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자체 핵무장이나 미국 핵무기 재배치 없이도 북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할 수 있는 동맹의 핵·재래식 통합 기반 체계를 확립한 것”이라 덧붙인 것도 역설적으로 국내 일각의 자체핵무장 여론 확산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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