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두고 "트럼프", "아무튼"만 21번 반복…사퇴론 뒤집기 역부족
‘TV 토론 폭망’ 뒤 사퇴 후폭풍에 휘말린 조 바이든(81)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대선 레이스 완주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이라고 잘못 말하는 등 말실수가 잇따라 사퇴론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마지막 날에 열린 바이든의 기자회견은 건강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워싱턴 정가에선 “사퇴론에 기름을 부을 만한 대형 사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퇴론을 뒤집기에도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은 이날도 목소리가 잠겨 있었고, 기자회견 동안 모두 15번에 걸쳐 마른기침을 하거나 목소리를 가다듬는 행동을 반복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지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나는 그를 한 번 이겼고, 또 이길 것”이라고 답했다.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가 돼 트럼프를 상대할 경우 어떤 우려가 있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부통령’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부통령으로 뽑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으로 잘못 부른 말실수였다.
이날 앞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협약’ 행사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여러분, 푸틴 대통령입니다”라고 잘못 소개했다가 바로잡기도 했다. 바이든은 “푸틴을 이기는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다”며 “(푸틴이 아니라) 젤렌스키 대통령”이라고 정정했다.
이날 58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아무튼(anyway·by the way)’으로 총 21회였다. 바이든은 맥락과 다른 답변을 하다, 답변이 ‘삼천포’로 빠지면 “아무튼”이라는 말로 바로 잡았다. 바이든은 ‘신체·인지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 2월까지 신경과 전문의로부터 세 번에 걸쳐 강도 높은 신경 검사를 받았지만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없더라도 신경과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하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North Korea)’을 말했어야 할 자리에 ‘한국(South Korea)’을 잘못 사용했고, 회견 직전까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인도·태평양 파트너(IP4) 국가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호주, 뉴질랜드, 일본…. 호주”라며 말을 흐렸다. 그리고는 “아까 호주를 언급했는데”라며 끝내 AP4에 포함된 한국을 기억해내지 못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간혹 답변이 흔들리긴 했지만 외교 정책에서는 깊은 통찰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2주 전 대선 TV 토론과 같은 최악의 순간이 재현되지는 않았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기자들 질문에 유창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단어와 이름이 뒤섞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소 엇갈린 성적을 거뒀다”고 분석했다.
한편 나토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다른 정상은 그의 건강이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 모두 가끔은 실수한다”며 “백악관 만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오래 대화를 나눴는데 항상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지는 대통령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양자 회담을 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매우 건재하다. 세부 사안에 막힘이 없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바이든 캠프에 존재하는 후보 사퇴론 배후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에 따르면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뉴욕타임스(NYT)에 바이든 사퇴 주장을 담은 기고문을 게재하기 전 오바마 전 대통령과 사전 상의를 했다”고 전했다. 이 때 오바마는 클루니의 주장에 동조하진 않았지만, 기고문을 NYT에 보내는데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김형구·강태화 특파원, 임선영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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