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선관위, 원희룡·한동훈 동시 제재…당내선 “전당대회 아닌 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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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전대 경선 분석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막말과 폭로가 얼룩진 막장극으로 치닫자 12일 당 지도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하지만 이미 ‘무너진 둑’이었다. 이날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TK) 합동연설회에서도 난타전이 벌어졌다.
당 선관위는 이날 원희룡·한동훈 후보에게 각각 ‘주의 및 시정명령’을 내렸다. 두 후보가 ‘후보자 비방 및 흑색선전, 인신공격해선 안 된다’는 등의 당헌·당규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전날 TV 토론회에서 원·한 후보는 서로 언성을 높이며 폭로와 비난을 주고받았다. 당 선관위 관계자는 “주의 및 시정명령은 가장 낮은 단계의 제재”라며 “다음 단계인 경고나 당 윤리위 회부 등의 제재를 받으면 합동연설회나 TV토론 참여가 제한되는 등의 불이익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한 후보는 선관위 제재에 불복해 이날 오후 이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앞서 오전엔 대구 중견 언론인 모임에 참석해 “선관위가 기계적 균형을 맞춘 것 같다”며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으면 그냥 다 경고하느냐”고 말했다. 전날 2차 TV토론회에서 원 후보가 한 후보를 향해 비례대표 ‘사천(私薦)’ 의혹을 제기했고, 한 후보의 이모부가 민청학련 주동자라는 ‘색깔론’을 꺼내든 걸 비판한 듯 보인다. 원희룡 후보 측은 선관위에 위반 내용을 알려달라고 질의했다.
당에선 전대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요즘 국민께 제일 걱정을 많이 끼쳐드리는 것이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의힘 전당대회란 말이 들려온다”라며 “선거보다 선거 이후가 중요하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막말과 진흙탕 싸움 선거라는 혹평을 듣지 않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거운동을 전개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영남 의원은 “전당대회가 아니라 꼭 분당(分黨)대회를 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날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합동연설회 현장에선 여전히 거친 말이 쏟아졌다. 비한계 주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고향인 대구에서 ‘탄핵’을 고리 삼았다. 한 후보를 겨냥해 “나 하나 살자고 당무개입이니, 국정농단이니 핵폭탄급 발언 쏟아내며 대통령과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고 민주당에 앞장서서 탄핵 구실을 갖다 바치는 후보”(나경원), “박 전 대통령 탄핵당하고 우파가 분열될 때 여러분과 누가 울어줬냐”(윤상현)고 했다.
원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나. 누군가는 인생의 화양연화였는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지옥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 후보의 “검사 인생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권 초반”이란 발언을 의식한 공격이었다. 원 후보는 한 후보가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제안한 데 대해 “영화 ‘대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적과 화해를 주선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그가 배신자”라고 했다.
이에 비해 한 후보는 발언 수위를 낮췄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큰 분’이라고 했다. 그는 “저로 인해 고생하신 것에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총선 때 찾아뵈었을 당시) 박 대통령께서는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과거 손에 어떻게 붕대를 감는지 목 관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차 안에서 어떻게 김밥으로 영양 보충을 해야 하는지 자상하게 말씀해주셨다”면서다. 또 원고에 있던 “쌍팔년도식 색깔론과 더러운 인신공격, 한 방에 날려주자”는 부분도 읽지 않았다.
이 같은 막장극이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경선 룰)에서 한 후보의 지지율은 45%였다. 이어 나경원(15%)·원희룡(12%)·윤상현(3%) 후보 순이었다(표본오차 ±4.1%포인트). 2주전엔 각각 한 후보가 38%였고 원·나(각각 15%)·윤(4%) 후보 순이었다. 한국갤럽은 “한동훈 대 비(非)한동훈 구도로 보면 2주 전의 38% 대 34%에서 45% 대 30%로 격차가 커졌다”며 “일명 ‘읽씹 논란’ 격화 후 무당층에서 한동훈 선택이 늘었다(13%→26%)”고 해석했다. 나 후보와 원 후보 간의 순위바꿈도 있었다.
김기정 기자, 대구=윤지원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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