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포기하지마… 80대 가르치는 80대
‘노인 구조단’ 꾸려 강습 봉사활동
“빵을 버터번으로 바꾸실 거면 버튼을 누르세요. 버터번은 우유 맛이 진하게 나는 빵이고 500원 더 들어요. 빵을 선택하셨으면 세트 여부를 선택하세요.” 지난 10일 송파구 롯데리아 송파삼전점. 최순자(82)·이정희(84)·김광열(86)씨가 노인 8명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를 다룰 줄 모르면 굶어야 하는 시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를 보면 국내 키오스크 대수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2022년 45만4741대로 늘었다. 카페·음식점 등 요식업 부문은 5479대에서 8만7341대로 16배 늘었다. 디지털 주문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롯데멤버스가 202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대 이상이 ‘키오스크를 선호한다’고 답한 비율은 35.0%에 불과했다. 20대(73.5%)의 절반 수준이다. 키오스크 주문을 돕기 위해 ‘디지털 안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의 62.7%였다.
낯선 스크린 앞에서 몇 번 터치를 헤매는 사이 뒤에 줄을 선 젊은이들의 눈총에 노인들은 외출을 포기하곤 한다. 최순자·이정희·김광열씨는 “우리 노인의 어려움을 우리 스스로 극복하자”며 ‘키오스크 노인 구조대’를 꾸렸다. 이들은 송파구노인종합복지관에 “키오스크 전문 강사 양성 과정 프로그램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3개월 동안 ‘키오스크 전문 강사’가 마련한 ‘상황별 시나리오 교재’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 이후 복지관 소속 ‘스마트시니어봉사단’을 만들어 2021년 7월부터 일선 업장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노인들에게는 키오스크 기계 사용법뿐 아니라 기계 안의 내용도 낯설게 느껴진다”며 “이런 어려움은 노인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는 “한글과 영어가 마구 뒤섞인 데다가 메뉴 이름도 길고 어렵다”며 “사이즈 표기법, 각종 사이드 메뉴 추가 등 방식도 노인들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카페인이 제거된 디카페인 커피가 왜 일반 커피보다 비싼지, 햄버거 가게에서 ‘단품’과 ‘세트’ 메뉴의 차이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는 노인도 별로 없다고 했다.
“어렵지 않네. 이제 나도 할 수 있겠어요.” 이날 롯데리아 송파삼전점에 ‘현장 실습’을 나온 노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송파구노인종합복지관에서 미리 파워포인트와 동영상 자료로 교육을 받고 오자 키오스크 세상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배운 대로 천천히 몇 번 눌러보니 쉽게 따라갈 수 있다”고 했다. 햄버거 세트 주문에 성공한 박수갑(81)씨는 “기계 사용법만 빠르게 가르쳐주는 젊은이들에게 ‘이 메뉴가 뭐냐’ ‘이건 무슨 뜻이냐’고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며 “‘스마트시니어봉사단’은 우리가 뭘 모르는지 우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고마웠다”고 했다. 박씨는 “이 교육이 끝나면 손주와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키오스크로 ‘햄버거 세트’를 시켜볼 것”이라고 했다.
은퇴 후 적적하게 살았던 이들에게 키오스크 봉사는 삶의 원동력이다. 초등학교 교감으로 퇴직한 이정희씨는 “퇴직 후 20년이 지났지만 가르침을 업(業)으로 삼았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최순자씨는 “체력이 약해지는 노인들이야말로 스마트 기기, 인터넷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며 “비교적 간단한 키오스크 교육에서 시작해 인터넷 쇼핑법도 배우고 친인척을 만나러 가기 어려우니 카카오톡 선물하기 사용법도 단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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