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휴가, 쿨하게 접거나 쿨할 때 간다
“비수기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달 초 최근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의 시기와 장소가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 쿨케이션이다. 쿨케이션은 ‘cool’(시원한)과 ‘vacation’(휴가)을 합친 신조어로,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처럼 전통적으로 각광받는 여름 휴양지가 아닌, 냉대기후의 국가나 상대적으로 추운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을 뜻한다. 극심한 더위가 이어지자 피서객들이 말 그대로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장소뿐 아니라 시기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코로나 확산이 꺾인 이후에도 매년 숙박·항공에 드는 각종 여행 비용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몰리는 여름을 피하려고 해서다. 성수기 여행이 한풀 꺾이고 반대로 소위 중간 시기나 비수기 여행이 뜨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뜨거운 여름휴가는 접는다 ’쿨케이션’ 열풍
마스터카드 경제연구소는 지난달 발표한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서 “성수기 전후를 뜻하는 소위 중간 시기(shoulder season)에 떠나는 여행이 최근 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칠말팔초(7월 말 8월 초)로 불렸던 성수기는 갈수록 외면받고, 비(非)성수기 여행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여행사 ‘인트레피드 트래블’도 최근 작년 가장 많은 예약이 들어온 계절은 6~8월 같은 전통적인 휴가철이 아닌 9월과 10월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유럽 전역의 기온이 치솟으면서 서유럽의 비성수기 여행 예약은 61% 증가했다”고도 했다.
성수기 여행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로는 극단적인 기후가 꼽힌다. 무더운 여름휴가 기간에 이상기후로 유명 휴양지들이 몸살을 앓는 경우가 늘어나서다. 여름휴가 명소로 꼽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더는 관광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 2월 현지 당국이 가뭄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물 사용량이 제한되면서 이곳 숙박 시설들은 화장실과 샤워 시설 등을 제대로 갖출 수 없게 됐다. 인기 휴양 국가로 꼽히는 그리스도 비슷하다. 지난 2일 도데카네스 제도의 코스섬에선 산불이 번져 관광객과 주민 1만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었다. 지난주 크레타섬과 키오스섬에도 산불이 발생했다.
아예 시원한 나라로 떠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슬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지난해 관광업으로 약 124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전년 대비 약 6% 증가한 수치다. 블룸버그는 올해도 이곳 국가들에선 지난해 여름에 비해 여행 예약이 27% 증가했다며 “올해 스칸디나비아 여행 기업들은 호황의 해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행비 폭증에 난기류로도 ‘울상’
해마다 폭증하는 여행 비용도 ‘쿨케이션’ 열풍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행 수요가 폭증하고 여비도 덩달아 치솟다 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성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는 비성수기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글로벌비즈니스여행협회(GBT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호텔의 일일 객실 평균 가격은 2019년 대비 29.8% 상승해 161달러(약 22만원)를 기록했다. 항공 운임과 렌터카 비용도 각각 약 72.2%, 9.8% 올랐다.
이상기후로 인한 각종 난기류 사고도 성수기 휴가 인기를 꺾는 요인이다. 이달 초엔 남미 우루과이로 가던 스페인 항공기가 난기류 사고를 당하면서 승객 30명이 부상했다. 지난 5월엔 카타르 항공기가 난기류를 만나 탑승객 12명이 다쳤고, 비슷한 시기 싱가포르 항공기를 탄 승객 한 1명은 난기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국적 항공기가 올해 1분기 겪은 난기류 사고 역시 약 600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0% 늘었다. 이에 지난 1일 대한항공은 서비스 수칙을 변경, 모든 중·장거리 노선에서의 객실 서비스를 착륙 40분 전에 마감하기로 했다.
일부 유명 휴양 도시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최근 스페인에선 마요르카섬, 카나리아 제도, 바르셀로나 등 관광지에서 관광 반대 시위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관광객 때문에 단기 임대가 만연해 주거난이 커졌고, 환경오염과 교통 체증 문제도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쿨케이션
’cool’(시원한)과 ‘vacation’(휴가)을 합쳐 만든 신조어.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바닷가처럼 전통적으로 각광받는 휴가지 대신 기후가 서늘한 지역을 찾아 떠나거나, 무더운 극성수기를 피해 여행을 가는 것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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