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새 카드 놀이 ‘관단’, 마작·골프 제치고 마오타이 주가 끌어내렸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7. 1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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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의 차이나 온 에어]
지난해 8월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카드 게임 ‘관단’ 대회. 빨간 조끼를 입은 참가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카드를 살피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유명 훠궈 체인점 '하이디라오'에선 올해 초부터 대기하는 고객을 위한 '관단 게임 전용구역'을 만들었다.(왼쪽) 중국의 증권사 중신증권이 제작한 관단 선물 세트./샤오훙수

베이징에서 최근 만난 중국의 문화 관련 대기업 대표 A씨는 지난해 남방 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공중 관단(掼蛋)’을 했다고 자랑했다. ‘관단’은 중국에서 인기 몰이 중인 카드 게임이다. 비행기에 두 회사의 대표와 비서진이 함께 탔는데, 카드 게임 몇 판으로 술자리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중국에서 지난해 초 코로나 방역 해제 이후 열풍을 일으킨 카드 게임 관단이 금융계와 관료 사회를 휩쓸며 접대 문화를 바꾸고 있다. ‘식사 전 관단’이 접대 공식이 되면서 음주까지 줄어든 것이 특히 큰 변화다. “‘관단 접대’가 늘면서 마오타이주(酒) 소비가 줄었다”는 볼멘소리가 접대의 상징인 마오타이주 판매상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다. 관단은 사교·접대에 중요한 오락이란 점에서 ‘종이 골프’라 불린다. 중국 전역에 애호가가 1억4000만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베이징의 찻집들은 최근 앞다퉈 간판에 ‘관단’을 추가하고 있다. 베이징 싼위안차오 주변을 검색하면 10곳에 가까운 관단 전문 찻집이 검색된다. 지난해부터 올해 5월 중순까지 새로 문을 연 관단 관련 기업은 340곳에 이른다. 50위안대 관단 카드는 집들이 선물로도 인기다.

관단은 네 명이 두 조로 나눠서 하는 게임이다. 포커 등 기존 카드 게임보다 약간 큰 전용 카드 두 세트를 사용한다. 팀전(戰)으로 치러지고, 먼저 패를 다 내려놓은 사람이 속한 팀이 승자다. 포커·브리지 등 글로벌하게 대중화한 다른 카드 게임에 비해서도 규칙이 복잡한 편이다. 베이징에서 30대 금융인의 집들이에 갔다가 관단 게임을 어깨너머로 구경했는데, 빠른 속도로 패를 조합해서 던지는 터라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하 관계의 두 사람이 한 팀이 되면 상사를 밀어주는 ‘칭상(情商·눈치)’도 보여줘야 한다.

1960년대 장쑤성 화이안에서 탄생한 게임인 관단의 인기가 갑자기 치솟은 배경엔 대(對)중국 해외 투자 급감이라는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까지 중국 금융업계에선 영미권 투자자들이 즐기는 ‘텍사스 홀덤’이 인기가 높았는데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갈등 심화 등을 거치며 서방 국가들의 투자가 줄었다. 대신 장쑤성·저장성 등 자본이 많은 남방 지역 투자자가 더 중요해졌고, 이들이 고향에서 즐기던 관단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 세계 기업 임원들이 한때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를 배웠듯, 중국 기업 임원들은 관단을 배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재계 거물들도 소셜미디어 등에 ‘관단 애호가’임을 인증하는 사진 등을 올리고 있다. IT(정보기술) 대기업 ‘360′의 저우훙웨이 회장은 지난 4월 중국 대기업 대표 세 명과 관단 모임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중국 대형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의 총수는 “학창 시절엔 관단이 없어서 다행이었다”(있었으면 학업에 지장을 받았을 것이라는 뜻)라면서 ‘관단 마니아’임을 인증했다. 30·40 IT 창업자들은 ‘계약 체결’을 내기 조건으로 걸고 관단을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직장인들은 승진을 위해 500위안(약 9만5000원)짜리 ‘관단 과외’를 받고, ‘관단 심판’ 자격증을 주는 2000위안(약 38만원)짜리 코스도 인기다.

중국 전역에서는 '관단 학원'(왼쪽)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주요 쇼핑몰이나 음식점, 찻집들은 관단 전용 구역(오른쪽)을 마련했다./샤오훙수

정부 관료들도 관단을 즐기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관단을 통해 ‘꽌시(정부 인사와의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는 관단 열풍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마작·골프 등은 사치스러운 오락으로 보고 반(反)부패 표적으로 삼았지만, 관단은 카드와 테이블만 필요하고 사행성도 약하다는 이유로 양질의 스포츠로 봐주는 것이다.

관단 열풍으로 예기치 못한 ‘나비 효과’가 발생 중이란 이야기도 돈다. 중국 블로거들은 최근 ‘마오타이 주가가 내려간 이유는 관단 때문’이란 제목의 글들을 올리고 있다. 중국 시가총액 1위를 2022년부터 차지했던 마오타이가 최근 그 자리를 공상은행에 내줬다. 마오타이 주가는 2022년 초 2050위안이었다가 1478위안으로 내려갔는데 그 배경엔 관단의 인기가 있다는 식의 분석이다. ‘맨정신’이어야 승산이 커지는 관단이 음주를 대체하면서 과음이 줄었고, 그에 따라 마오타이 소비가 줄었다는 논리다. 반면 마오타이 실적·주가 하락은 중국의 소비 심리 악화와 주요 고객인 부동산 기업들의 실적 부진, 젊은 층의 외면 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카드 게임 ‘관단(掼蛋)’

중국 남부 장쑤성 화이안(淮安)에서 유래한 카드 게임. 의역하면 ‘폭탄을 내던진다’는 뜻이다. 네 명이 두 조로 나눠서 대결하고, 카드는 두 세트를 사용한다. 패를 나눠 가진 후 규칙에 따라 한 장씩 카드를 내려놓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카드를 가장 먼저 다 낸 사람이 속한 팀이 이긴다. 2014년에는 화이안 시립 무형 문화유산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중국 금융계를 중심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어 애호가 1억4000만명을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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