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출산에… ‘할마·할빠’도 10년씩 뒤로 밀려
손주들 돌보느라 건강 더 해쳐
평일에 열 살, 아홉 살배기 손주 둘을 돌보느라 딸(45) 집에서 지내는 이모(71)씨는 손주들이 초등학교에 등교한 뒤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손주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무릎이 시큰하고 허리도 쑤셔, 물리치료라도 받아야 좀 낫다”며 “맞벌이로 바쁜 딸과 사위에겐 나 말고는 육아를 맡길 대안이 없으니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마흔이 다 돼서야 아이를 낳는 경우가 늘면서 손주를 돌보는 할마(할머니+엄마)와 할빠(할아버지+아빠) 나이도 50·60대에서 60·70대로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부모 나이가 30대 초중반이고, 조부모는 60세 전후인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들어 10년씩 뒤로 밀린 것이다.
12일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육아를 하느라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60대는 1만7229명으로 1년 전(3만5302명)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같은 기간 육아에 전념한 20대도 7만1325명에서 6만1699명으로 13.5% 감소했다. 육아를 전담하는 20대는 2019년에는 12만7702명에 달했지만, 불과 5년 만에 반 토막이 날 정도로 급감했다. 반면 다른 직업 없이 손주를 돌보는 70대는 같은 기간 7642명에서 7885명으로 소폭 늘었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가 줄어들며 육아를 전담하는 부모와 조부모가 동시에 줄어들고 있는데, 70대 이상의 육아 부담만 되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창 일터에서 바쁜 40대 부부로서는 조부모 외에 양육을 맡길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당장 자녀를 낳으면 아이를 키우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양자택일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일 발표한 ‘2024년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여성이 모성을 선택하면 커리어는 자연스럽게 희생해야 하는 구조가 한국 저출생의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OECD는 “유급 육아휴직이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경제적 두려움으로 그 사용률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매우 낮다”고 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손주 유치원 등원시키는 70대 할머니’를 한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도 아동 종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하원한 0~5세의 주된 보호자가 조부모인 비율은 8.5%로 2018년(7.4%)보다 1.1%포인트 증가했다.
결국 맞벌이 부부들로선 아이를 낳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연로한 부모까지 고생시킬까 봐 출산을 더욱 꺼리게 되는 상황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부부의 42.4%만 자녀 출산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양육 부담을 가정에서 오롯이 짊어져야 하다 보니 70대가 건강을 해쳐가며 아이들을 돌보는 현실”이라며 “초등학교 돌봄 교실을 확대하는 등 아이를 낳으면 사회가 같이 키워주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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