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아침에 일어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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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너무 고요하다.
"지각해서 서두르는 판국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어. 어제 본 일본 영화에서도 데이트 시간에 늦은 주인공이 엄마에게 왜 안 깨웠냐고 하고 나가." 그런 말을 하면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뿐해지나? 그렇다면 스스로를 너무 한심해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
아침마다 거실에서 시끄럽던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어서다.
문득 이 아침이 낯설고 생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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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싶은 하루'의 소중함 일깨워
이소연 시인
아침이 너무 고요하다. 이상하다. 왜 안 들리지? 남편이 서진이 챙기는 소리. 들려야 할 것이 들리지 않는다. “실내화 챙겼어? 물통은?” 하며 챙긴 것 또 챙기는 소리. 왜 안 나지? 나는 스르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오늘 서진이 학교 안 가는 날이야?” 잠을 겨우겨우 밀어내며 남편이 가느다란 소리로 묻는다. “지금 몇 신데?” “8시 20분”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일어난다. “큰일 났다! 이서진, 일어나!” 후다닥후다닥 모든 게 순식간이다.
“왜 안 깨웠어?” 예상외다. 지금이라도 깨워줘서 고맙다는 소릴 들을 줄 알았는데 비난이라니. 이 부분에 대해 김은지 시인은 말했다. “지각해서 서두르는 판국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어. 어제 본 일본 영화에서도 데이트 시간에 늦은 주인공이 엄마에게 왜 안 깨웠냐고 하고 나가.” 그런 말을 하면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뿐해지나? 그렇다면 스스로를 너무 한심해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 엄마는 기꺼이 마음의 짐을 나눠 들어줄 만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나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자기 효능감이 올라간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차라리 최악을 생각하라고. 더 안 좋은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에 감사할 수 있다고. 내가 고맙다는 인사는 못 받을지언정 나까지 늦잠을 잤다면 얼마나 황망했을 것인가. 서둘러 집을 나서긴 했지만, 아들은 지각을 면했고 빠뜨린 물건도 없다. 장맛비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우산까지 잘 챙겨 갔다.
7월, 폭염과 장마가 오가는 동안, 물에 쓸려가는 것과 햇볕에 말라 죽는 것들이 생긴다.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며칠 전엔 남편이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왔는데, 정비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냉각수 호스를 집게로 집어 놓고 잊었다고. 남편이 보닛을 들어 올리자 정말 집게가 있었다. 그 상태로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죽음을 생각하니 살아있다는 게 감사하다. 그러니 죽을 뻔했다며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죽음을 생각하며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 남편은 정비소를 찾아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건네며 격려했다고 한다. 엔지니어는 이번 실수를 통해, 더 꼼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남편이 나를 원망하는 통에 말은 못 했지만, 나도 늦었다. 아침마다 거실에서 시끄럽던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어서다. 나도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 “왜 오늘 따라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를 안 내냐고! 드라이어로 머리 말리는 소리 어디 숨겼어!” 나를 일으켜 세우던 소리가 사라진 아침, 그 당혹감에 대해선 누가 알아줄까?
아들은 지각하면 과학실 청소라며 학교로 뛰었고 나도 지각할까 봐 도서관으로 뛰었다. 문득 이 아침이 낯설고 생기롭다. 뛰고 싶은 하루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구나. 황인숙 시인의 조깅이란 시가 생각났다. 너무 뛰니까 “독수리 한 마리를 삼킨 것 같다”고 말하는 그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하루다.
남편은 분명 알람 설정을 해두고 잠이 들었지만,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뭔가 잘못 누른 모양이다. 머리를 쓰다 보면 잠에서 저절로 깰 것 같다. 또 물을 많이 먹고 자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잠에서 깰 수 있단다. 남쪽은 장마고, 서울은 폭염주의보. 베란다에 널어둔 수건들이 바싹하게 마를 것이고, 포항은 이제야 가뭄에서 벗어났다고 엄마가 좋아하신다. 빗소리와 햇볕이 서로 힘겨루기하는 동안 무지개가 뜬다. 저 무지개 사다리를 타고 저편으로 건너가면 무엇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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