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붙이고 금가루 뿌리고 조각하고…한·일·중 칠기 대전

2024. 7. 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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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삼국삼색-동아시아의 칠기'전
고려시대의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 (12세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눈길을 확 끌 만큼 찬란하게 빛난다. ‘한국미는 소박미’라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일본·중국 칠기 특별전에 나와 있는 고려와 조선의 나전칠기 말이다. 하지만 중국·일본 칠기의 화려함과는 종류가 다른 화려함이다. 지난 10일 개막한 ‘三國三色(삼국삼색)-동아시아의 칠기’는 이것을 직관하고 실감하게 해 주는 전시다.

‘한국미는 소박미’ 고정관념 깨뜨려
‘동아시아의 칠기’전은 한·일·중 국립박물관 관장 연례 회의의 연계 전시다. 2014년부터 2년마다 세 나라가 돌아가며 3국을 포괄할 수 있는 주제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국가 표기 순서는 그해 전시 개최국 뒤에 다음 전시 개최국을 표기하기에 올해는 한·일·중으로 표기한다. 첫 전시는 2014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도자기전 ‘동아시아의 꽃 도자명품전’이었고 두번째 전시는 2016년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열린 회화전 ‘동방화예’였다.

올해 전시의 주제는 ‘칠기(漆器)’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옻나무에서 채취한 천연 수액을 목기(木器) 등에 바른 칠기는 습기와 병충해에 강하고 “땅속에 묻혀도 천 년을 넘게 견뎌낸다.” 고고미술사학자 주경미 박사는 “유라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옻칠을 이용한 공예품이 거의 제작되지 않아서. 옻칠은 동아시아 삼국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공예 기술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를 위해 세 나라 국립박물관이 자국의 칠기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출품작을 15건 내외로 골랐고 “설명문 등에서는 협의를 거쳤지만 작품 선정에는 서로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서로 차별화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3국의 대표 칠기가 무척 다르다는 것이 이 전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한국은 옻칠한 나무에 진줏빛 혹은 무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자개(전복 등 조개의 껍데기)를 붙여 꾸민 나전(螺鈿)칠기를 내놓았다. 일본은 기물에 옻칠로 무늬를 그린 후 정교하게 가공한 금가루를 뿌려 금색 무늬를 형성한 마키에(蒔繪) 칠기를 주로 내놓았으며, 중국은 단색 혹은 여러 색으로 옻칠을 겹겹이 두껍게 칠한 층에 섬세하게 무늬를 조각한 조칠기(彫漆器)를 주로 내놓았다.

중국 청나라 건륭제 때 제작된 '조칠 산수·인물무늬 제갑(운반 상자)'(18세기).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섹션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청나라 건륭제 때(18세기) 제작된 ‘산수·인물무늬 제갑(운반 상자)’이다. 청나라 황실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조칠 중에서 척홍(剔紅)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주칠(朱漆·붉은 옻칠)을 수십 겹으로 두껍게 칠하고 옻칠이 절반 정도 말랐을 때 조각을 한 것이다. 입체적인 조각으로 양감이 두드러지며 그 조각의 디테일이 극단적으로 정교해서 웅장한 느낌이다.

중국 섹션은 이밖에도 흑칠(黑漆 검은 옻칠)에 보석 가루를 뿌린 명나라 칠현금(1641년), 나전 기법으로 만든 청나라 접시(17-20세기), 옻칠에 금으로 그림을 그린 묘금 기법의 명나라 접시 등을 선보여 중국에서 다양한 옻칠 기술이 발달했음을 강조한다.그러나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조칠 기법으로 만들어진 그릇과 합, 발우 등이다.

마키에 칠 가을 풀꽃무늬 물부리 그릇, 일본 16-17세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일본 섹션은 마키에 기법의 칠기가 주류를 이룬다. 무로마치 시대의 '연꽃무늬 경전상자'(15세기)처럼 옻칠을 한 기물에 전체적으로 금가루를 뿌리는 나시지(梨子地) 기법을 사용한 것은 마치 클림트의 금빛 그림 같은 은은한 호화로움의 느낌이 있다. (사실 클림트가 유럽의 일본풍 유행 자포니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또한 에도 시대 '국화무늬 뿔대야('17세기)처럼 흑칠 바탕에 히라 마키에(平蒔絵) 기법으로 선명한 금색 문양을 표현한 기물은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 이들 마키에 칠기는 마감이 현대 공산품만큼 매끈하다.

버려지는 조개 껍데기, 보석 탈바꿈
한국 섹션에서 일단 눈길을 빼앗는 것은 나전과 대모(거북 등껍질)로 장식된 고려시대 ‘국화·넝쿨무늬 합’(12세기)이다. 관람객이 실제 ‘예쁘다’고 탄성을 지를 정도로 붉은색, 엷은 금빛, 은빛이 어우러져 찬란하게 빛난다. 다섯 개가 모여 한 세트를 이루는 화장합 중 남아 있는 한 개인데, 온전한 한 세트였으면 얼마나 화려했을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 나전으로 오면 무늬가 크고 대담해져서 섬세함은 덜한 반면 자개의 자연스러운 영롱한 빛이 더 돋보인다. 조선시대 '봉황·꽃·새·소나무무늬 빗접'(18~19세기)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자개를 망치로 두들겨 빙렬이 생기게 하는 타찰법으로 제작되어 영롱함이 한층 더한 한편 꽃과 새 무늬가 자유롭고 흥이 넘친다. 또한 자개를 실처럼 가늘고 길게 오려 끊는 끊음질 기법을 이용해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 채운 조선시대 연상(19~20세기)은 놀랄 만큼 현대적인 스타일이다.

나전 칠 십장생무늬 이층 농 조선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높이 130.5cm, 너비 83.0x42.5cm 故 이건희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규모가 매우 큰 나전칠기도 있다 그 중에.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조선 말기 '십장생 무늬 이층 농'은 흑칠 바탕에 자개를 붙인 대부분의 조선 나전칠기와 달리 붉은 주칠에 자개를 붙였으며 손잡이에 태극 무늬가 새겨져 있어 이채롭다.
나전 칠 봉황·꽃·새·소나무무늬 빗접 조선 18~19세기 높이 27.0cm, 너비 27.4x26.7cm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전시를 보면 일본과 중국 섹션에도 나전칠기가 있어서 한국만의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특히 나전칠기를 선호하고 발전시킨 반면 일본과 중국은 다른 칠기를 더 선호한 것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세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 점을 모두들 궁금해하지만 학자들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한다”며 덧붙였다. “한국도 칠공예가 나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각도 있고 단색 흑칠기·주칠기도 있다. 다만 나전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그만큼 선호되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자개를 선택할 때 색깔 있는 것보다 전복 껍데기 안쪽 같은 영롱한 은빛의 자개를 선호했다. 반면에 전시에서 중국의 나전 접시를 보셨겠지만 붉은빛과 초록빛 자개를 주로 사용했다.” 즉 취향과 미감의 차이가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박물관의 전인지 학예연구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느 미술사학자의 말을 빌면, 한국인은 ‘얼굴색’을 ‘얼굴빛’이라고 하는 것처럼 색을 빛으로 말하는 언어 습관이 있다. 나전은 색이 진줏빛, 무지갯빛 등으로 표현되듯이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빛에 따라 여러 색으로 변한다. 그런 점이 색을 빛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또한 전복 등 조개에서 먹고 버려지는 부분을 보석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또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전 연구관은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나전은 통일신라 때부터 전통이 시작되어 고려시대 절정을 이루고 조선시대에도 이어지고 1960-70년대 혼수 가구로 각광받다가 그 후 인기가 사그라지는가 싶더니 요즘 휴대폰 케이스 등의 소품으로 부활했다. 나전은 한국인의 영원한 스테디셀러이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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