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뭐하는 짓이야!” 알몸 노출 초유의 사태…배심원들 난리났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장 레옹 제롬 편]
<동행하는 작품>
법정의 프리네
노예 시장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동행하는>
"죄송해요."
프리네는 재차 거절했다. "내겐 돈이 있고, 권력도 있어. 나랑 정식으로 사귀면 이 모든 걸 그대와 나누리다." 그런 그녀 앞에 선에우티아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말이지만, 그래도 안 되겠어요." 프리네는 이제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날 그만 놓아줘요. 제발요." 그런 뒤 애원하듯 조용히 이 말을 덧붙였다.
에우티아스는 그녀의 울먹임에 흠칫 놀랐다. 이는 거절을 넘어 일종의 저항 내지 호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태껏 프리네에게 여러 번 거절당하고도 달라붙은 그였지만, 이제는 어리석은 자기합리화를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마법이 풀린 듯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에우티아스가 마지막이라는 듯 물었다. 프리네는 눈물이 그렁한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에우티아스는 그제야 씩씩대며 돌아섰다. 그는 뒤늦게 찾아온 굴욕감에 절어졌다. 미련한 제 모습을 탓해야 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러지 않을 게 분명했다.
프리네는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산 유녀(遊女)였다.
당시 프리네는 빼어난 외모로 유명했다. 알려진 설에 따르면 그녀는 윤기나는 머리칼에 도자기 같은 피부, 짙은 눈매에 길쭉한 팔다리를 자랑하는 등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더해 상대가 누구든 밤새워 토론할 수 있는 지식, 어떤 사람이든 혼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춤과 노래 실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그 시절 돈 좀 있는 사내라면 누구든 프리네를 원했다.
그러나 주체적이었던 프리네는 돈을 위해 스킨십은 허락할지언정, 마음만은 쉽게 내주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도도함과 까탈스러움마저 매력으로 보였다는 점이었다.
손꼽히는 부자였던 에우티아스 또한 그 부분에 홀려그녀를 밤낮으로 따라다닌 것이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아테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한 축제를 열었다.
행사가 무르익을 무렵, 프리네는 에게해의 한 모래사장에서 옷을 벗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바다 위로 몸을 띄웠다. 인어가 된 양, 물의 요정이 된 양 물살을 즐겼다. 이날을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런데, 프리네에게 차인 뒤 앙갚음할 마음밖에 없던 에우티아스가 이 일을 문제로 삼았다. 비뚤어질대로 비뚤어진 에우티아스는 신성모독 죄를 거론했다. "프리네는 신성한 축제에 알몸을 내보였다. 한낱 인간이 포세이돈을 모욕한 것이다. 프리네는 바다거품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흉내냈다. 한낱 인간이 아프로디테 자리를 넘본 것이다." 사실상 막 가져다 붙인 말이었다. 그럼에도 권력가인 에우티아스의 말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신성모독은 유죄로 판결되는 즉시 사형 선고가 떨어지는 중죄였다. 프리네가 난데없이 법정에 선 이유였다.
프리네는 분명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자존심이 센 그녀는 남성들의 숱한 구애를 거절하며 많은 적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적들은,이제 프리네의 배심원단이 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곧장 만장일치로 유죄를 선고하려는 순간…
"잠시만요!" 프리네의 변호인이 소리쳤다.
"존경하는 배심원님들. 결정에 앞서 잠시 프리네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변호인이 또박또박 말했다. 변호인은 그런 다음 프리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잡아 벗겨버렸다. 갑자기 프리네의 알몸이 온 세상에 보였다.
"이 아름다움을 다시 보십시오. 이건 신의 몸입니다. 인간의 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변호인은 웅성대는 배심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감히 우리가 이런 여신의 자태를 놓고 신성모독이란 죄를 씌울 수 있겠습니까!" 포효와도 같은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 그렇지. 그렇고말고." 배심원들은 넋을 놓아버렸다. 아름다움에 홀린 이들은 이제 만장일치로 프리네의 무죄를 결정했다. '인간의 법으로 감히 여신의 몸을 심판할 수 없다.' 이런 이유였다. 프리네의 계획이었는지, 변호인의 기지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이 덕에 다시 자유를 쥘 수 있었다.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은 당시 법정에서 벌어진 결정적 순간을 그렸다.
눈으로 빚은 듯한 프리네의 나체가 먼저 눈길을 끈다. 정갈하게 묶은 금발 머리와 꽃장식, 금목걸이와 팔찌가 요염함을 더해준다. 그녀도 변호인의 행동에 당황한 듯 팔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렸지만, 그렇기에 몸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배심원들은 동요한다. 수십 명에 달하는 인물 모두 제각각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한다. 그래도 고개를 돌리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단 한 명, 프리네와 변호인 뒤에 선 남성만 그녀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가 바로 프리네에게 신성모독 죄를 씌운 에우티아스다.
제롬은 딱 한 점 그림으로 프리네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실, 그는 한때 19세기에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가장 특출난 이야기꾼이었다. 지금은 에두아르 마네와 이른바 '인상파 사람들' 등에 밀려 역사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당시에는 제자만 2000명이 넘을 만큼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다. 이번에는 그런 제롬의 생을 다시 조명한다. 그가 비범하게 다룬 또 다른 신화나 역사, 전설도 살펴본다.
1824년 프랑스 브줄에서 출생한 제롬은 어릴 적부터 예술에 소질을 보였다.
1840년 파리로 온 제롬은 당시 유명했던 역사 화가 폴 들라로슈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런 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옛 거장의 그림을 감상했고, 돌아와 파리 에콜 데 보자르(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실력을 쌓았다. 제롬은 또 다른 유명 역사 화가인 샤를 글레르의 제자로 경험치를 쌓았다. 제롬은 단기간에 우아한 르네상스 양식부터 명징한 신고전주의, 드라마틱한 표현의 낭만주의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제롬은 1847년 〈닭싸움을 붙이는 젊은 그리스인들〉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천진난만한 젊은 두 남녀가 닭을 데리고 장난치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인체의 정교한 묘사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남성의 쭈그린 자세 틈에서 보이는 잔근육, 여성의 움츠러든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는 곡선과 굴곡은 실물처럼 정교했다. 맹수처럼 역동적인 닭의 모습, 뒤에서 조용히 고개 내민 스핑크스 등 대비 효과도 흥미로웠다. 비평지 '낭만주의의 역사'를 쓴 작가 테오필 고티에는 "데생과 색채, 생기있는 표현 등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단숨에 성공 가도에 오른 제롬은 1854년께, 서른 살이 될 무렵 훌쩍 떠났다.
그가 간 곳은 다름 아닌 튀르키예였다. 앞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798년 이집트 원정을 한 무렵부터 19세기 유럽은 동방 문화에 더더욱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화가들이 유별나게 관심을 보이곤 했는데, 제롬은 그중에서도 단연 열광적인 사람이었다.
뜨거운 태양과 푸석푸석한 모래, 선물 같은 초원과 알록달록한 천, 진한 이목구비에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
제롬은 프랑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낯선 풍경에 희열을 품었다. 그는 그리스와 이집트, 팔레스타인, 북아프리카 등도 거닐었다. 그사이 직접 본 광경과 직접 느낀 분위기를 한껏 빨아들였다. 제롬은 이를 토대로 여러 명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특유의 사실적 묘사, 체화한 이국적 정취, 아울러 눈 뜨고 본 장면과 눈 감고 한 상상을 버무린 작품들이었다.
가령 제롬은 1863년 프랑스 살롱전(展)에 〈죄수〉를 출품했다.
배 한 척이 해질녘 나일강을 가로지른다. 자세히 보면 배 한편에는 흰색 터번에 같은 색 로브를 걸친 남성이 누워있다. 수갑을 찬 모습으로 볼 때 그가 바로 죄수일 것이다. 배 양 끝에는 그를 체포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앉아있다. 죄수와 가깝게 붙은 이는 결박된 상태를 놀리는 듯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저 멀리서는 사원 내지 신전 같은 건물을 흐릿하게 볼 수 있다. 보다 보면 모래바람이 입에 씹힐 듯한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이 기묘한 그림을 보기 위해 몰린 인파 틈에서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제롬의 1866년 작 〈노예 시장〉도 비평가와 대중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림 속 공간은 과거 중동의 노예 시장인 것으로 보인다. 흰색과 베이지색, 진한 연두색으로 한껏 치장한 중동계 남성이 백인 여성 노예를 상품 보듯 살펴본다. 한 손으로는 고개를 젖히게 하고, 다른 손으로는 이 여성의 치아를 확인하고 있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건, 여성은 체념한 듯 힘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제롬의 〈노예 시장〉 또한 시리즈로 그려질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국적이면서 자극적이기까지 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당시 제롬의 진짜 의도와 속마음은 알 수 없다 해도, 이 시리즈가 지금 볼 땐 너무도 잔혹하고 폭력적인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제롬은 한 그림에 그와 관련된 모든 역사 내지 이야기를 담는 데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제롬은 이 능력으로 1000년, 가끔은 2000년도 훌쩍 넘은 고대의 한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예컨대 제롬의 대표작 중 〈엄지를 아래로〉는 고대 로마 제국의 검투사 경기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로마의 최고 오락거리가 콜로세움에서 보는 검투사 경기였다. 이들은 노예, 외국인, 전쟁 포로 등을 모아 무기를 쥐여준 후 서로 싸우게 했다. 칼과 도끼, 몽둥이, 삼지창, 그물 등 무기에도 유행이 있었다. 때로는 말이 끄는 전차, 사자와 호랑이 등 맹수를 동원했고, 심지어 물로 경기장을 채워 수중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는 딱 그 순간이었다. 관객 전부가 집중하는 광경이었다. 모든 경기가 한쪽의 사망으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특히나 패자가 졸전을 벌였다면 여론에 등 떠밀려 죽음에 처할 수도 있었다.
제롬의 이 그림으로 당시 콜로세움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표현했다.
한 검투사가 그의 칼질에 나자빠진 또 다른 검투사를 발로 누르고 있다. 승자는 검을 쥔 채 관객석을 바라본다. "녀석을 어떻게 해드릴까?" 관객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패자 또한 관객석을 향해 팔을 뻗는다. "제발, 목숨만은 건지게 해주세요." 이 사람은 캑캑대면서도 이같이 애원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많은 이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린다. 패자를 향한 야유였다. 이제 금색 의자에 앉아있는 황제가 나설 차례였다. 최종 결정권자인 황제 또한 같은 뜻이라면 패자는 곧 목이나 심장이 뚫릴 것이었다. 조잡한 장비의 검투사, 구름처럼 몰린 시민, 함성과 야유, 여론을 살펴보는 황제…. 제롬은 이 또한 한 화폭에 녹이는 데 성공했다.
제롬이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犬儒學派) 철학자 디오게네스(BC 400?~BC 323)를 그린 그림도 흥미롭다.
말 그대로 '개 같이' 산 디오게네스는 욕심과 부끄러움 없이, 바로 이 순간에 만족하며 살기를 설파했다. 그는 정복왕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와 소원을 물었을 때"지금 햇빛이나 가리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세상을 정복하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할 텐가"라고 묻고, 이에 알렉산드로스가 "그때가 되면 쉬겠다"고 하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엥? 나는 이미 쉬고 있는데!" 실실 웃으면서.
제롬의 〈디오게네스〉를 보면 딱 그렇게 살고, 딱 그렇게 말할 듯한 사내를 발견할 수 있다. 누운 항아리 안에서 사는 디오게네스는 천 조각 하나만 걸친 채 등불을 쥐고 있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이자 친구, 개 무리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곳곳에 금이 간 항아리, 맥없이 깔린 짚, 저 멀리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방황하는 개 등 이번에도 '디테일'이 상당하다.
제롬은 마흔셋에 이미 프랑스 최고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년 후에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있었다. 50대가 꺾이는 1880년대 들어선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에콜 데 보자르에 교수로 부임해 수많은 제자도 키웠다.
"차라리 내가 여성을 빚어볼까?"
피그말리온이 혼잣말을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그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였다. 피그말리온은 현실 세계에선 마음에 드는 짝을 찾을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는 아예 이성을 멀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문득 생각한 것이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인을 직접 내보이겠다고. 피그말리온은 바로 팔을 걷었다. 그는 종일 작업했다. 진한 눈썹과 약간 부어오른 듯 보이는 동그란 입술, 꼿꼿한 허리와 유연한 다리를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신도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곧 그의 눈앞에는 꿈에도 그리던 그녀가 모습을 보였다.
피그말리온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밖에서 돌아오면 늘 꽃다발을 안겼다. 반지와 목걸이,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도 해줬다. 그는 그녀를 '하얀 여인'이란 뜻으로 갈라테이아라고 부르곤 했다.
"제가 만든 빛나는 조각상을 신부로 맞이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프로디테의 축일이 된 때, 피그말리온은 이 여신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다. 아프로디테도 감동했을까. 피그말리온이 기도 후 눈물을 닦으며 조각상을 향해간 순간….이 찰나를 제롬이 그림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로 묘사했다. 늘 그랬듯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껴안았다. 그런데, 딱딱한 상아가 왠지 모르게 점점 물컹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대여. 여기를 보세요."
피그말리온은 이러한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때, 신의 축복으로 생명을 얻은 조각상이 허리 굽혀 그에게 키스했다. 제롬의 그림 속 그녀는 상아에서 인간으로 차츰 변하고 있다. 아프로디테의 아들, 사랑의 신 에로스가 활과 화살을 든 채 이를 흐뭇하게 감상한다. 주변에 있는 여러 가면과 조각상, 작업용 망치와 상아 가루 등이 개연성을 뒷받침한다. 현실적이면서 환상적인, 극적이면서도 소품 하나 무시할 게 없을 만큼 밀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당시로는 최고였던 그가 왜 요즘 시대에선 기대 이하의 이름값을 가질까.
제롬은 원래도 있던 무언가를 받아들여 제 것으로 만드는 데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찾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부분에선 비교적 부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 결과, 제롬은 구시대의 유물 같은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제롬은 그보다 여덟 살 어린후배였던 마네를 경멸했다. 제롬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 같은 그림에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숭고한 역사와 신화의 장면도 없고, 어떠한 의미나 교훈도 없고, 심지어 상상 속 인물 아닌 실존 여성의 누드가 담긴 이 그림들에 대해 천박하다는 평만 내렸다. 제롬은 마네의 동료 클로드 모네와 그 친구들이 내놓은 그림에도 싫은 티를 냈다. 불분명한 윤곽선과 흐릿한 색채 등은 그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식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제롬은 말년에 〈진리(진실)는 채찍으로 무장하고 우물에서 나와 인간을 징벌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몇몇 미술사학자는 제롬이 마네와 모네 등 '문제아'들에게 호통치는 마음으로 작업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여성으로 의인화된 진리가 보다 못해 이들을 직접 징벌하러 나오는 장면을 표현했다는 의견이다. 다만, 해석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당장 마네와 모네의 위상에서 볼 수 있듯 제롬은 결국 역사의 진보와 맞서 패배했다. 제롬은 모더니즘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인상주의의 탄생과 번영도 저지하지 못했다. 미래를 받아들이지도, 그 위로 올라타지도 못한 셈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그림에 대해선 동시대 분위기에 맞춰 '잘 그린' 작품일 뿐, 다음 세대에까지 울림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평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쥐었던 제롬은 1904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 등불'을 자처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마네와 모네의 선배 아닌 까마득한 후배로 세상 빛을 봤으면 또 어땠을까. 그의 삶과 그림은 종종 흥미로운 상상을 하게끔 이끈다.
'후암동 미술관' 특별 에피소드를 다수 볼 수 있는 신간 〈무서운 그림들〉이 정식 출간과 동시에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습니다.
모두 독자님들의 사랑과 안목 덕입니다. 더욱 열심히, 꾸준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민음사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민음사
그리스 철학자 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동서문화사
Jean-Leon Gerome, Ackerman, Gerald M., Acr Edition
Jean-leon Gerome, De Font-relaux, Dominique Papet, Edouard De Cars, Skira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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