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vs 울산 불꽃 튀는 ‘동해안 더비’ 유럽 축구장 뺨치네

정영재 2024. 7. 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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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산업도시 라이벌’ 명가
6월 30일 열린 동해안 더비에서 포항 홍윤상(왼쪽)과 울산 김민우가 경합하고 있다. 전반 2분 선제골을 넣은 홍윤상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며 이마에 붕대를 감고 뛰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과 울산은 동해안에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산업도시다. 포항은 고(故) 박태준 회장이 포항제철을 설립해 ‘영일만 신화’를 쓴 곳이다. 울산은 자동차·조선 등 현대그룹 핵심 생산라인이 가동되는 지역이다. 포항과 울산은 약 50㎞ 떨어져 있다.

두 도시의 프로축구팀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HD(옛 울산 현대)는 오랜 라이벌이다. 포항제철이 첫 쇳물을 생산한 1973년에 창단한 포항 스틸러스(당시는 포항제철 축구단)는 51년 역사를 자랑한다. 프로축구 K리그1 우승 5회, 코리아컵(옛 FA컵) 우승 5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등 영광의 역사를 써 왔다. 1990년에는 국내 최초 축구전용구장인 스틸야드(1만4268석)를 지었다. 스틸야드 외벽에 있는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는 박태준 명예회장, 한홍기·이회택·최순호 감독, 박경훈·이흥실·박태하·황선홍·홍명보·라데·김기동 등 17명이 헌액돼 있다.

FIFA도 ‘K리그 동남부의 결투’ 큰 관심
포항은 ‘족보 없는 축구는 가라’는 슬로건처럼 전통을 강조한다. 포항 스틸러스 서포터스 중 하나인 ‘울트라스 레반테’ 의 응원 모습.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울산 HD는 1983년에 창단했다. 허정무·최강희·김현석 등 스타들이 거쳐 갔고, 고(故) 유상철과 이천수가 뛴 2005년과 홍명보 감독이 이끈 2022, 2023년 등 네 차례 K리그1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AFC 챔스리그도 2회 우승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른 울산 문수축구경기장(3만7897석)을 홈구장으로 쓴다.

두 팀의 맞대결을 ‘동해안 더비’라 부른다. 벌써 180차례 더비가 열렸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The K League’s south-east scrap(K리그 동남부의 결투)’라고 소개하며 동해안 더비를 주목한다. 역대 전적은 포항이 65승 54무 61패로 약간 앞선다. 인접한 지역의 산업도시에 오랜 전통을 지닌 팀들이라 만날 때마다 불꽃이 튄다. 지난해까지 포항을 맡았던 김기동 FC 서울 감독은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동해안 더비가 힘든 건 경기 자체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그 다음 경기에 너무 큰 영향을 준다는 거다”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도 “우리 팬들은 정상 직전에서 포항에 발목을 잡힌 적이 있기 때문에 꼭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동해안 더비는 숱한 명승부와 스토리를 쌓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촉발점이 된 게 1998년 ‘김병지 헤딩골’이다. K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패색이 짙은 경기 종료 직전 울산 골키퍼 김병지가 공격에 가담해 1,2차전 합계 동점을 만드는 헤딩골을 터뜨렸다. 국내 프로축구 첫 ‘골키퍼 필드골’이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선방으로 울산은 포항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 너무나 치열하고 극적이었던 두 팀의 승부는 동해안 더비가 자리 잡는 모태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김병지는 울산 구단과 불화 끝에 2001년 포항으로 이적한다. 오범석(포항→울산), 설기현(포항→울산)의 이적 과정에서도 두 팀의 앙금과 라이벌 의식은 쌓여 갔다.

울산은 서포터스와 일반 팬이 어우러진 응원을 펼친다. 울산 HD 팬들이 승리를 확신하며 “잘~가세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2013년 K리그 최종전에서 1위 울산은 승점 2점 뒤진 포항을 만났다. 비겨도 우승하는 울산은 수비수 김원일에게 종료 직전 골을 허용해 안방에서 우승컵을 라이벌에게 내 준다. 2019년 K리그 선두 울산은 전북 현대에 승점 3점 차로 앞선 채 포항과 최종전을 벌였다. 후반에만 세 골을 허용하며 홈에서 1-4로 참패한 울산은 전북에 우승컵을 헌납한다. 울산은 우승 목전에서 두 차례나 포항에 덜미를 잡혔다.

두 팀의 응원 문화는 색깔이 좀 다르다. 울산의 응원을 이끄는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비교적 온건하고 일반 팬에게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한다. 울산 구단은 프로야구·농구에서 뛰던 인기 치어리더를 영입해 ‘울산큰애기’ 응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울산은 일반 팬과 서포터스 구분 없이 한 목소리로 힘찬 응원전을 펼친다.

울산의 대표적인 응원가는 70년대 히트곡인 ‘잘있어요’다. 승리가 굳어진 경기 막판에 모든 관중이 일어서서 휴대폰 플래시를 좌우로 흔들며 “잘~가세요 잘 가세요~오오 그 한마디 였었네”를 부르는 장면은 소름 끼치는 장관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포항은 ‘전통’을 강조한다. 2023년 5월, 7개 서포터스 소모임이 연대해 ‘마린스’라는 이름 아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슬로건 ‘우리는★포항이다’ ‘족보 없는 축구는 가라’처럼 팀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남다르다. 응원가도 성가(聖歌) 느낌의 장중한 곡이 많다.

포항은 울산 응원가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지난 6월 30일 180번째 동해안 더비가 열린 스틸야드. 전반 2분 홍윤상의 골에 이어 19분 이호재가 페널티킥 골을 넣자 2년 동안 더비 승리가 없었던 포항 응원석에서 “잘~가세요 잘 가세요” 노래가 터져 나왔다. 너무나 이른 시간에 나온 ‘승리송’에 당황한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포항은 5분 뒤 한 골을 허용했다. 2-1 승리 후 박태하 포항 감독은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180번째 더비 땐 포항 2년 만에 진땀승
포항 구단은 2013년 마지막 우승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그룹인 포스코의 지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K리그2 소속인 전남 드래곤즈도 갖고 있는데 외국인 주주들이 “왜 프로축구 팀을 두 개나 운영하나”라며 운영비 감축을 요구한다. 포항은 시즌이 끝난 뒤 주축 선수들을 팔아 새 시즌을 준비하곤 했다. 지난해는 김기동 감독마저 서울로 떠났다.

그럼에도 올해 ‘포항의 레전드’ 박태하 감독이 부임한 뒤 ‘원 팀’의 단단함을 과시하며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포항에서 선수-프런트로 40년을 보낸 이종하 단장은 “스틸러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포항 시민들과 팬들의 성원을 업고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3연속 우승을 노리던 울산은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으로 떠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조현우·김영권·주민규 등 국가대표급 베테랑과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이 있어서 여전히 강자다.

올해는 동해안 더비 결과에 따라 두 팀의 우승 확률이 달라질 것이다. 더 치열할 거라는 뜻이다. 직접 경기장에 가서 보면 폭발하는 열기와 긴장감에 놀라게 된다. “여기가 유럽 축구장인가?”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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