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사라진 남광주역에서

2024. 7. 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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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주역, 광주 학동, 1992년 ⓒ김녕만
지나온 인생은 짧지만 살아내야 하는 인생은 길다. 기차처럼 길다. 인생이 하루해처럼 짧았다면 삶의 무게가 새털처럼 가벼웠을까. 그러나 무수히 다가오는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서민의 짐은 녹록지 않다. 벌써 오래전 사라진 남광주역이지만 30년 전만 해도 그 역에 비둘기호 기차가 도착하면 사람보다 더 많은 짐보따리가 내렸다. 거기에는 어제 캔 산나물이나 밭에서 거둔 푸성귀, 새벽에 삶은 옥수수 같은 별거 아닌 것들이 들어있었다. 어머니들은 돈도 안 되면서 무겁기만 한 보따리를 이고 메고, 심지어 질질 끌고 남광주 역전에서 펼쳐질 번개 장터로 향했다. 그나마 멀리 갈 필요 없이 역전에서 장이 선다는 것이 다행인데, 재수가 좋으면 아침 일찍 기차에서 내려서 한두 시간 만에 후다닥 물건을 팔아치우고 점심 전에 남광주역을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이 반짝 시장은 산지에서 직접 가져온 싱싱한 물건으로 인기가 있었고 반면 시골 어머니들에겐 적은 돈이라도 만져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남광주역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의 실제 배경이다. 70년간 경전선 철도역이었다가 2000년에 폐쇄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흑백 사진이나 시인의 시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무거운 짐에 휘청거리던 그 시절의 어머니들, 힘들여 가져온 것들을 다 팔아도 고작 손에 쥐는 것은 몇 푼이었고 그 돈마저 당신 자신을 위해선 쓰지 못하던 어머니들도 대부분 이젠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떠나셨을 것이다. 사평역에서 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라고 시를 끝맺는다. 아무리 삶의 짐이 무거웠어도 지나가 버린 시간은 시인의 말처럼 눈물겨운 그리움으로 남는다. 기어이 호명하고 싶은 ‘그 순간들’이 되고 만다.

사진가 김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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