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즘 선전극, 일본 셀프 사면쇼, 중화 부활 선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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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전설의 순간들 ④ 개막식의 프로파간다
올림픽이 메가 이벤트라는 점에서, 그리고 국가의 이상과 야망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만한 본보기는 없다. 스포츠에서 메가 이벤트란 대체로 규모 면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를 뜻한다. 단기간 개최되지만 사회적, 경제적 효과는 오래 간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인 1931년에 유치한 올림픽을 5년 뒤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이 개최한다. 베를린에는 ‘프로파간다의 귀재’ 요제프 괴벨스, 1934년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기록영화인 ‘의지의 승리’를 제작한 레니 리펜슈탈, 스포츠 이벤트의 대가 칼 딤이 있었다. 올림픽은 거대한 선전 무대였다. 나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록 영화 ‘올림피아’ 나치의 이상 구현
신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은 신성(神性)을 드러내며, 아리안 족이 고양해야 할 가치였다. ‘올림피아’는 나치의 이상을 구현했다. 도입부에서 그리스 신전의 폐허와 흩어진 신들, 균형이 완벽한 원반던지기 선수의 조각상이 차례로 등장한다. 원반 던지는 선수의 조각이 건장한 남성의 움직임으로 바뀌면서 젊은 여성들의 군무(群舞)가 화면을 메운다. 거의 알몸이다. 창과 포환을 던지는 남성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
와 같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 ‘금발의 야수’들이다. 니체는 ‘소름 끼치는 살인·방화·능욕·고문을 해치우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즐거움에 찬 괴물’이라고 썼다. 여성들은 풍만하고도 유연하다.
1964년 10월 10일. 도쿄올림픽경기장에 성화가 도착한다. 마지막 주자는 ‘원자폭탄의 아이’ 사카이 요시노리다. 그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1시간 반 뒤에 태어났다. 메시지는 선명하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원자탄 폭격의 희생자다. 그러나 살아남아 다시 일어섰다!” 이치가와 곤이 개막식을 기록했다. 영화 ‘도쿄 올림피아드’. 전쟁범죄자인 일왕 히로히토가 박수를 친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일본인의 심장은 다른 방식으로 뛰었다.
베를린 올림픽은 올림픽을 정치선전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받는다. 도쿄 올림픽은 전범국 일본의 ‘셀프 사면 쇼’였다. 그러나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치고 베를린과 도쿄를 비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올림픽은 정치적이다. 아니, 올림픽은 정치이다. 정치, 경제, 민족주의, 패권주의의 뒤범벅이며 욕망이 격돌하는 전장이다. 올림픽은 선언하고 웅변한다. 메시지는 화려한 개막 행사에 집약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근대화를 완수했다는 ‘중진국’의 선언이기 이전에 군사독재 정권의 마지막 노래였다. 20년 뒤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은 아편전쟁 이후 짓밟힌 ‘중화’의 자존심을 곧추세웠다. 개막식의 메시지는 무시무시했다.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은 원래 내 것이다.’
무섭기로 따지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빼놓을 수 없다. 2월 8일, 각국 선수단이 모두 입장한 라이스-에클스 스타디움에 찢어진 성조기가 등장한다. 소방관과 경찰 8명이 맞든 성조기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걸려 있다가 9·11 테러 때 훼손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반대한 행사지만 조직위는 ‘9·11 테러로 상처 입은 인류애의 회복’을 내세워 강행했다. 누가 곧이들었겠는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은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미국은 이듬해 이라크를 침공한다. 제2차 걸프 전쟁이다.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였다.
문화적 역량, 테크놀로지 경연장 될 것
2024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파리가 개최하는 세 번째 올림픽이 오는 26일 막을 올린다. 1900년 대회가 열릴 때는 제국주의 프랑스의 전성기였다. 식민지 주민을 전시한 ‘인간 동물원’이 시대의 타락과 벨 에포크의 종말을 예언했다. 24년 뒤 파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좋았던 시절을 추억했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 개막 행사는 센 강에서 열린다. 각국 선수단이 배로 6㎞를 항해하여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 쪽 강변에 도착한다는 시나리오다. 파리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성화가 루브르박물관 앞 광장을 밝힐 때, 우리도 파리의 메시지를 깨달을 것이다. 궁금한 것은 그곳에 비칠 우리의 모습이다.
올림픽은 냉전의 터널을 통과해 오늘에 이르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갈라선 세계는 경기장을 전쟁터 삼았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체제인가. 메달 숫자가 증명한다고 믿었다. 이 믿음의 양지에 스포츠 과학이, 음지에 약물과 협잡이 깃들였다. 한국은 자본주의 진영에 속하고도 스포츠 정책은 동유럽식 국가아마추어주의(State Amateurism)를 채택한 특별한 사례다. 정책은 병역특례, 연금, 국립체육대학과 같은 제도로 구체화되었다. 하나 냉전은 끝났고 경기장은 체제의 우열을 가리는 전장이 아니다.
올림픽은 변함없이 정치적이지만 경기장은 스포츠의 저변과 문화적 역량, 테크놀로지를 과시하는 무대가 되었다. 세계는 그렇게 올림픽을 누린다. 우리만 변함없다. 올림픽에 서식하는 개인, 그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의식은 그대로다. 국가대표 선수의 해병대 훈련과 ‘올림픽은 전쟁’이라는 야만의 언어도 냉전이라는 망령의 독백이다. 궁금하다. 우리의 냉전은 어느 곳에서 계속되는가. 냉전은 종교인가, 신기루인가. 또한 궁금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파리에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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