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한다 사랑한다, 남들에게 건넨 꽃…이젠 내게 주고 싶다

정영재 2024. 7. 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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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인생 30년
사랑한다 축하한다
남들에겐 스스럼없이 건넨 꽃
돌아보니 나에겐 꽃 준 적 없네.
이제 노래 인생 30년을 다독이며
꽃을 준다, 나에게!
- 장사익 소리판 공연 포스터에서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택에서 장사익 선생이 “다른 가수들은 이 나이면 데뷔 40주년 50주년 하는데 이제 겨우 30주년이니 민망하긴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아서 좋긴 합니다”라며 파안대소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우리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75) 선생이 노래 인생 3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공연이 10월에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꽃을 준다, 나에게’다. 데뷔 무렵 인연을 맺었던 황청원 시인이 근 30년 만에 보내온 세 편의 작품 중에서 골라 뽑은 문구다.

장 선생이 설명했다.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하고 인연을 맺고 살다 보니까 ‘야 너 사랑한다. 축하한다. 위로한다’ 이러면서 남들한테 꽃을 준 적은 많은데 정작 내가 축하받고 위로받아야 할 때 나한테 꽃을 준 적이 있냐 말이죠. 이름이 있건 없건, 가진 게 많든 적든, 이만큼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위대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나한테도 꽃을 주고 억센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도 스스로에게 꽃을 선물하자는 뜻으로 공연을 준비했죠.”

인생의 쓴맛을 두루 겪고 마흔다섯에 늦깎이 가수가 된 장사익. 1994년 대표곡 ‘찔레꽃’으로 무대에 선 후 지금까지 9장의 정규 음반을 냈고, 이달 말에 10집이 나온다. “국악도, 대중음악도, 아리아도 아닌, 뭣도 아닌” 소리. 갈라지고 터져 나오고, 휘몰아치고, 때로 속삭이는 그의 노래는 30년 세월 동안 수많은 한국인을 위로했다.

북한산 끝자락에 기대어 인왕산을 차경(借境)하는 선생의 자택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프로권투 선수가 세계타이틀매치를 앞두고 베이스캠프를 친 심정으로 몸을 만들면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지요”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규 음반 9장, 이달 말 10집 앨범 발매

Q : 목소리는 타고나신 건가요.
A : “제 고향이 충남 홍성인데, 초등학교 때 웅변을 하라고 해서 매일 아침 뒷산에 올라 웅변 연습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목청이 틔었나 봐요. 서울에 올라와 선린상고에 다니면서 주판을 기타 삼아 까까머리들끼리 모여 노래도 불렀죠. 졸업도 하기 전에 고려생명보험에 들어갔는데 파고다공원 근처 음악학원에서 3년간 제대로 노래를 배웠어요.”

Q :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A : “당시 정경천이라는 분이 열댓 명 앉혀 놓고 화성, 피아노, 악보 보는 법, 바이브레이션과 감정 넣는 법 등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릴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들어보곤 했죠. 1970년 입대 직전 기존 가수가 내는 LP판 뒷면에 돈을 좀 주고 내 노래 하나를 넣었어요. 제목은 ‘대답이 없네’였고 이름은 장나신(張裸身), 홀딱 벗은 사람이라는 뜻이었죠. 전라도 광주 31사단 문화선전대(문선대)에 있을 땐데, 한 선배가 나훈아 노래를 나훈아보다 더 잘 불러요. 난 당시까지 도롯도(트로트)를 했는데 ‘저 선배보다 못할 바에 레퍼토리를 바꿔야겠다’ 싶어서 조영남 선배가 부르던 팝송이나 신중현 선생의 ‘봄비’ 같은 걸 불렀죠.”
장사익 선생이 3월 30일 서울 노원구가 주최한 당현천 벚꽃음악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뉴스1]
제대하고 보니 고려생명 주인이 바뀌어 있었고, 장사익은 복직이 안 됐다.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무역회사, 인쇄소, 라디오 부품 조립공장, 영업사원 등 무려 15개 직장을 들어갔다 잘렸다를 반복했다. 마지막은 강남구 신사동 카센터에서 청소하고 손님들 차 주차해 주고 커피도 타 주면서 보냈다. 이건 아니다, 내가 이러려고 세상에 태어났나 싶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어릴 적 시골서 들은 국악기의 아련한 소리가 좋아 직장생활 하면서 10년간 단소·태평소·피리 등 국악기를 배웠어요. ‘태평소를 3년만 열심히 하면 밥은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카센터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를 했죠.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을 쫓아다니며 시켜만 달라고 매달렸더니 선거판에서 공연할 때 넣어줬어요.”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장사익이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좌중이 뒤집어졌다. 주위 사람들이 제대로 가수를 해 보라고 해서 드디어 ‘소리꾼 장사익’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Q : 선생님은 노래 만드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하던데요.
A : “우리 민요는 악보가 없고 다 구전(口傳)이잖아요. 예를 들어 자장가는 ‘자장자장’ 하는 중간에 엄마들의 신세한탄이 들어갑니다. ‘니 아부지는 맨날 술만 먹고 다니고, 니 할매는 맨날 잔소리에 구박만 하고…’ 이런 식으로요. 그런 게 굳어지고 전해 내려오면서 진도아리랑이 되고 민요가 된 거죠. 저도 좋아하는 시구를 흥얼흥얼 하다 보면 어느 새 노래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내 노래에는 정해진 박자가 없고 내 호흡대로 갑니다.”

Q : 선생님 노래는 클래식 기타나 피아노 같은 서양 악기와도 잘 어울리는데요.
A : “인연을 맺는 게 애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남자친구도 있고 술친구도 있죠. 저 친구 잘 몰랐는데 참 재미있는 면이 있네, 색다른 향기가 있네 하는 것처럼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국악도 재미있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것도 좋고, 모든 게 신비스럽게 와 닿습니다. 저는 틀이 고정돼 있지 않으니까 아무 거나 즐겁게 합니다.”

Q : 사람들은 선생님 노래를 통해 무엇을 얻나요.
A : “미국 뉴욕에서 공연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와서는 ‘나 사이다 한 박스 마신 것 같아’ 하시면서 내 손을 꽉 잡더라고. 살다 보면 힘들고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은데, 10~15만원 내고 공연 보러 오려면 얼마나 망설였겠어요. 물론 노래라는 게 흥겹고 박수 치고, 그렇게 흘러가는 영화처럼 즐길 수도 있지만 뭔가 여운이 남아야 하거든. 난 1부는 좀 듣기 힘든 노래를 불러요. 죽거나 아프거나 이별하거나…. 2부는 힘차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죠. 그건 채워주고 비워주는 플러스 마이너스 효과지요. 극장을 나왔을 땐 하얀 백지가 돼서 ‘그래 다시 그림 한번 그려 보자’는 마음을 먹도록 말이죠. 옛날 효도는 부모님께 고기 사다 드리는 건데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 모셔서 공연 보여 드리는 겁니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죠. 그게 문화의 힘이죠.”

Q :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셨다고요.
A : “환갑 때니까 지금부터 15년 정도 전이네요. 마라톤 하는 시골 친구들이 있어서 나도 한번 해볼까 싶어서 5㎞부터 시작해 10㎞, 하프까지 뛰고 완주까지 2~3년 걸렸죠. 잠실에서 성남을 갔다 오는 중앙일보마라톤(현 JTBC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12분에 완주했어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완주, 환갑을 맞은 저한테 주는 선물이었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막 야단을 치는 겁니다. 소리하는 사람은 그렇게 뛰면 성대가 마른다고요. 그 후로는 걷기를 주로 합니다.”
“내게 꽃을 주는 건 위로와 자각의 의미”

선생의 집 뒷마당에 야구 배트 두 자루가 있었다. 골프는 할 줄 모르는데, 야구 방망이는 운동 삼아 가끔 휘두른다고 했다. 야구 명문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다닐 때 선배들의 강요로 동대문야구장에 몇 번 응원가면서 야구 묘미에 빠졌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애국가를 불렀다.

Q : 지금 인생을 야구로 치면 7회 말이라고 하셨는데요.
A : “야구는 9회까지니까 얼마 안 남았단 말이죠. 지금 내가 리드하고 있으면 잘 지켜야 하고, 지고 있으면 역전해서 뒤집어야죠. 한번 뿐인 인생인데 이 게임을 멋있게 마무리해야 되지 않겠어요. 가끔 술 마시면서 ‘인생 조졌나 봐’라는 친구들이 있어요. 나에게 꽃을 준다는 건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의미도 있지만 아프고 힘들고 못나게 살았더라도 내 모습을 돌아보는 자각의 시간을 갖자는 뜻도 있습니다.”

Q :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업을 바꿔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실 말씀은?
A : “현실적으로 힘들고 꿈같은 얘기죠. 그런데 인생은 딱 한 번이거든. 옛날에는 60이면 손 놓고 갈 준비했는데 지금은 60부터가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기 시작할 나이래요.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걸 찾아야죠. 나도 늦게 붓글씨를 배워 일흔에 전시회도 했고 내 공연 포스터나 CD 커버 글씨도 직접 씁니다. 요즘은 펜글씨에 푹 빠졌죠.”
인터뷰 중간중간 노래를 섞었던 장 선생은 “끝내면서 노래 하나 불러 드릴게”라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10집에 들어 있는,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에 멜로디를 붙인 곡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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