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첫날, 전기차 명령 폐기"...배터리 흔드는 '미국 대선 리스크'

배현정 2024. 7. 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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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국 대선, 배터리 산업 영향은

「 국내 2차전지 업계에 미국 대선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기차 등 친환경 에너지에 주던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나선 때문이다. 가뜩이나 수요 감소로 인한 실적 악화로 주가가 전고점 대비 30~40% 내린 2차전지 업계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지만, 당분간 미 대선 리스크는 업계를 짓누를 것으로 예상된다.

"임기 첫날 전기차 (보조금 지원) 명령 폐기에 서명할 것임을 약속한다(4월 2일 미국 미시간주 유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 공약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며,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이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트럼프는 IRA를 두고 “역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 인상”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핵심 경제 성과를 저격해왔다. IRA는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법안으로, 바이든 정부가 2022년 8월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생산의 중심지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목표 아래 시행했다.

K배터리, 작년 미국 점유율 42% ‘1위’
IRA에 따라 현재 미국에서 ‘배터리 셀’과 ‘모듈(팩)’을 생산해 판매하면 ㎾h당 최대 45달러의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이 지급된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이러한 IRA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발맞춰왔다. 현대차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포드·스텔란티스 등 미국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합작 공장을 운영하거나 건설 중이다. 미국 내 투자액은 총 50조원대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와 리튬 가격 하락 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2차전지 산업에 또 하나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최근 부쩍 높아진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은 IRA에 따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국내 2차전지 산업에 대형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IRA 등 기존 정책이 유지되면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환할 경우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당장 7월 1일 첫 대선 토론회 직후 ‘트럼프가 승기를 잡았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관련주가 일제히 내린 바 있다.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은 -1.01%, 포스코홀딩스는 -1.35%, 에코프로비엠은 -3.18%, 에코프로는 -2.39% 하락했다. 김호섭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2차전지 산업이 전기차 수요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대선 결과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2차전지 업계는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결 기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1953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57.6%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마저 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에 따른 공제액 4478억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IRA 혜택을 제외하면, 2525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게 되는 셈이다. 삼성SDI와 SK온도 2분기 부진한 성적표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15% 감소할 전망이며, SK온은 2000억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7월 증시에서 에코프로를 필두로 2차전지 광풍이 불었을 당시보다 주가는 30~40% 급락한 상태다. 12일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30.63%, 엘앤에프는 -37.99%, 에코프로비엠은 -32.38%를 기록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면 한국 기업은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2.4%로 1위다. IRA 효과 덕이다. 2022년만 해도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36.2%에 그쳤다. 48%로 1위를 지키던 일본보다 크게 낮았다. 한국이 역전한 건 IRA 요건 적용 시점인 2023년 4월 직후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본은 신규 투자에 보수적이고, 중국은 미·중 갈등 영향으로 미국 시장 진입이 어려웠기 때문에 IRA 발효 전후로 적극 투자에 나선 한국이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나갈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배터리 3사, 투자 속도 조절로 리스크 대응
골드만삭스는 한국 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2025년에는 5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이 같은 전망을 수정해야 할 수 있다. 트럼프가 IRA를 폐지해 세금 등의 혜택이 사라지면 한국 배터리 기업은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해도 당장 2차전지 보조금을 없애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미국 내 전기차·배터리 공장이 들어선 곳은 미시간·테네시·조지아주 등 공화당 우세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선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공화당이 상원 및 하원의 과반의석을 확보하게 된다면 IRA 폐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상당 폭의 수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정에너지 투자가 대부분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집중되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를 내세워 IRA가 유지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바이든 정부 역시 대(對)중국 견제책으로 인한 잠재적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원료나 중간재를 사용하는 국내 2차전지 산업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황 부연구위원은 “트럼프뿐 아니라 바이든 2기도 중국 견제에 더 강경하게 나설 수 있다”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이차전지 원료·중간재에 대한 다각적 조달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 같은 리스크에 투자 속도 조절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 배터리 전용 생산 공장 건설을 착공 두 달 만에 일시 중단했다. SK온은 포드와 합작한 미국 켄터키 2공장 가동 시점을 연기했다. 미 대선 결과나 캐즘 등 전기차 시장 분위기를 봐 가며 가동 시점을 조절하겠다는 의도다. 제품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한다.

삼성SDI는 이달 초 미국 최대 전력기업 넥스트에라에너지와 ESS 장기 공급에 합의했다. 중국 기업에 점유율을 뺏겼던 ESS 시장을 기술력을 앞세워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차세대전지 소재 시장 선점을 위해 양극재, 고체전해질, 리튬메탈 음극재를 모두 공급할 방침이다. 2차전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IRA가 축소되면 어려움은 있겠지만 전기차로의 전환은 ‘속도의 문제’일 뿐 시대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IRA 혜택이 없어지더라도 미국 시장은 배터리 기업이 공략해야 할 큰 시장이므로 투자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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