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살아남은 여자, 그 이름은 초선
박서련 지음
은행나무
“정말 여자는 관리가 될 수 없습니까?”
“여인으로서 관모에 손댈 수 있는 자는 오직 초선뿐이란다.”
“그러면 저도 초선이 되겠습니다.”
삼국지 독자들은 초선(貂蟬)을 어떻게 기억할까. 달도 그 미모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을 숨겼다는 폐월(閉月)의 미인,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한 요부, 독재자 동탁을 죽여 새 시대를 앞당긴 성녀….
박서련의 신작 장편 『폐월; 초선전』의 주인공 초선은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관직 ‘초선’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을 만큼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초선은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부모로부터 도망쳐 생존하고, 오물이 가득한 길바닥에서 거지 대장에게 배운 거짓말로 한나라 장군 왕윤의 수양딸이 된다. 초선을 팔아넘기거나 소유하거나 조공으로 바치려는 ‘영웅’들의 계략 속에서 초선은 끝내 살아남아 세상을 조소한다. 그를 살아남게 한 것은 지략과 의지. 아름다움은 초선이 가진 여러 무기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체공녀 강주룡』 등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써 온 박서련이 ‘미인’으로만 기억돼 온 초선의 삶을 재구성했다. 박서련의 초선은 남성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는 여자가 아니다. 초선은 숱한 계략에 이용되다 추하게 늙지만 그를 이용한 수많은 난세의 영웅이 죽이고 죽임 당하는 와중에 끝내 살아남는다. 그리고 비로소 평범한 인간이 된다.
초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양한 버전의 삼국지에서 초선은 왕윤을 따라 자살을 하거나 여포의 첩이 되거나 비구니가 된다. 박서련의 초선은 동반 자살하자는 양부를 뿌리치고 광야로 나간다. 그곳은 “아무도 애모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귀애받지 않는” 세상이다.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그는 흉하게 오그라진 얼굴로 웃는다. 나라는 망했고 영웅들은 죽었다. 다음은 홀로 선 그의 독백.
“영웅들의 의기와 용맹을 구경거리 삼고 나라를 세우고 무너뜨리는 대의와 명분을 우스개로 여기며 끝끝내 오래도록 나는 살아남고 만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