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여의도의 네 가지 대화법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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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의 대화는 답이 없다.
마지막으로 '공격'은 전투적이고 사적인 비난을 하는 가장 난폭한 방식의 대화법이다.
6월 25일 국회 법사위에서 있었던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법사위원장 간의 대화는 '굴절'식 대화의 표본이었다.
보다 효율적인 상임위 운영에 대한 품격 있는 대화 대신,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법한 '누구 누가 더 잘하나'로 굴절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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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의 대화는 답이 없다. 양 진영 간 차이를 넘어서 생산적인 결론을 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네 가지 함정에 빠지곤 한다. 회피, 굴절, 부인, 공격이라는 함정인데, 뉴욕대학교 교수인 켄지 요시노와 데이비드 글래스고는 이를 줄여서 '회굴부공'이라고 부른다('어른의 대화 공부', 황가한 옮김, 위즈덤하우스).
'회피'는 입을 다물거나 진심을 숨기는 대화법으로, 가장 흔한 부정적 대화 방식의 하나이다. '굴절'은 화제를 나에게 더 편한 주제로 바꾸는 것으로, 대화의 초점을 다른 주제로 이동하거나 확대 또는 축소시킨다. '부인'은 사실이나 상대방 감정의 진실성을 거부함으로써 반사적으로 일축하는 대화법이다. 마지막으로 '공격'은 전투적이고 사적인 비난을 하는 가장 난폭한 방식의 대화법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오직 '회굴부공'식 대화만 보인다.
'회피'의 경우를 살펴보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작년 4월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진행자가 "한 장관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하자, 홍 시장은 "이 전화 끊읍시다. 이상하게 말을 돌려가지고 아침부터 그렇게 한다"고 불쾌함을 드러내며, "전화 끊습니다"라고 말하곤 진짜로 전화를 끊었다. 국민의힘 내의 권력 지형과 총선 선거전략 등에 관한 건설적인 대화를 기대했던 청취자들은 아침부터 회피식 대화의 전형을 맛봤다.
6월 25일 국회 법사위에서 있었던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법사위원장 간의 대화는 '굴절'식 대화의 표본이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 국회법대로 하는 겁니다.
유상범 의원: 국회법에 위원장 마음대로 돼 있습니까?
정청래 법사위원장: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
유상범 의원: 공부는 내가 좀 더 잘했지 않겠어요? 국회법은?
여당 간사 선임이 대화의 초점이었으나, 어느새 초점은 '누가 더 공부 잘했나'로 이동됐다. 보다 효율적인 상임위 운영에 대한 품격 있는 대화 대신,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법한 '누구 누가 더 잘하나'로 굴절된 대화였다.
'부인'식 대화는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양문석 경기 안산갑 민주당 예비후보의 과거 '노무현 불량품' 막말에 대해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적절한 조처를 취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당 안팎의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일어났다. 이재명 당시 대표는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잘못이 아니다"라며 관련 요구를 일축했는데, 제1야당 대표의 이러한 대화법은 민주당 일극 체제의 전조 증상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공격'식 대화법은 너무나 많아 이 지면에 다 담을 수가 없다. 힘들게 추려보자면, 민주당 박지원 당선자가 5월 1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진표 국회의장과 윤석열 대통령,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향해 "진짜 개○○들"이라고 말한 것이 있다. 채상병 특검법 처리 관련해 김 의장이 ‘여야 합의가 있어야 본회의를 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대한 반응이었다. 국회의장의 역할에 대해 '정치 9단'이라 불리는 5선 국회의원의 깊은 고찰 대신 사적인 감정이 폭주하는 공격적 대화만 남았다. 지난주 국회에서 의원들이 서로에게 했던 "입 닫아라" "정신 나간" 등의 표현도 공격적 대화의 예이다.
품위 있는 어른의 대화를 나누는 정치인들은 유니콘인가. 그들은 전설 속에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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