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44] 인쇄물로 도배가 된 도시
2000년대 초 건물의 간판 디자인을 규제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무질서함의 사례로 자주 등장했던 고속터미널 맞은편 상가 건물을 포함, 많은 간판이 나름 정비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가로막과 인쇄물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그래픽이 도시의 입면을 뒤덮고 있다.
식당 입구에는 음식 사진, 가격, 식재료 산지, 몸에 좋은 이유 등의 정보가 적혀 있다. 약국의 유리는 병원 처방전, 구급약, 상비약, 신경통, 관절염, 피로회복, 체력저하, 병증병후, 금연 치료, 눈떨림, 어깨·목 결림, 손발저림·차가움 등의 글씨로 덮여 있다. 정형외과 창에는 척추, 관절, 통증, 도수 치료, 재활, 자세 교정, 지압, 충격파 등이, 의료용품점은 병원용품, 보조용품, 실버용품, 혈압 측정기, 당뇨 측정기, 족욕기, 찜질기, 보행기, 저주파 치료제, 욕창 예방 매트리스 등의 취급 품목이 빽빽이 적혀 있다. 점집은 운명, 궁합, 사주, 개명, 직업 택일, 생활 길잡이, 팔자 바꾸기, 우울증 상담까지, 부동산중개소에는 아파트, 토지, 상가, 재개발, 분양권, 투자 상담 환영, 책임 중개, 친절 상담, 세무 컨설팅, 조세 불복 등의 커다란 문자와 현시점의 매물 정보가 프린트된 A4 용지가 유리창을 도배하고 있다. 임대인은 붙여놓은 인쇄물을 통해서 호객하려는 마음에서,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이 도시 환경의 일부라는 생각보다는 임대료만 잘 나오면 상관없다는 태도에서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
건축가는 나름 구조, 재료, 법규, 디자인을 생각해서 건물을 짓는다. 간판만 대강 허가받고 유리창에는 마음대로 인쇄물을 부착하는 건 건축과 전체 도시 환경을 너무나도 쉽게 망치는 행위다. 선진국의 도시들은 간판의 디자인 심의와 더불어, 전화번호나 메뉴, 판매 품목을 부착하는 걸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형외과에서 이런 치료를 하고 약국에서 이런 약을 팔며, 부동산중개소가 이런 일 하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디지털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정보는 필요하면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그런 온갖 글씨로 도배가 된 도시의 풍경은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이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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