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보미]단점을 드러낸다는 건 진짜 용기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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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머리의 마지막 윔블던이 끝났다.
올해 대회 개막 10일 전 허리 수술을 받은 머리는 단식은 포기하고 복식에만 출전했다.
윔블던도 복식 1회전 경기를 이례적으로 센터코트에 배정해 머리를 예우했다.
2012년 영국 선수로는 76년 만에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에 도전한 머리는 결승에서 '황제' 로저 페더러에게 패하고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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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머리의 마지막 윔블던이 끝났다. 올해 대회 개막 10일 전 허리 수술을 받은 머리는 단식은 포기하고 복식에만 출전했다. 윔블던도 복식 1회전 경기를 이례적으로 센터코트에 배정해 머리를 예우했다. 윔블던 센터코트는 머리가 영국 테니스의 신화를 쓴 곳이다. 2012년 영국 선수로는 76년 만에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에 도전한 머리는 결승에서 ‘황제’ 로저 페더러에게 패하고 눈물을 쏟았다. 한 달 뒤 같은 곳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단식 결승에서 머리는 페더러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이듬해 윔블던 개최국 영국의 남자 단식 ‘우승 가뭄’을 77년 만에 끊었다.
2016년 윔블던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통산 3승을 달성한 머리는 그해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고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사람들은 ‘빅3’(페더러-라파엘 나달-노바크 조코비치)에 더해 ‘빅4’의 시대가 열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빅3가 차례로 메이저대회 통산 20승을 기록하는 사이 머리는 1승도 추가하지 못한 채 메이저대회 고별전을 치렀다. 머리의 마지막도 신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가 복식 1회전에서 탈락한 뒤 전광판에는 머리를 위한 헌정 영상이 나왔다. 배경음악은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Creep(찌질이)’이었다.
‘나도 내가 특별했으면 해. 넌 정말 특별하거든. 하지만 난 찌질이. 여기와 어울리지 않아(I wish I was special. You’re so fuckin’ special. But I’m a creep…I don’t belong here).’ 노랫말은 빅3와 한데 묶일 수 없었던 머리의 커리어와 닮았다. 머리는 메이저대회 결승에 11번 올랐지만 페더러에게 세 번, 조코비치에게 다섯 번 우승을 빼앗겼다. 일부 팬들은 머리의 마지막을 기념하기에 Creep은 너무 잔인하다며 부적절한 선곡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머리는 한발 더 나갔다. 머리는 이어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찌질했던 순간들을 늘어놨다. 열여덟 살 때 지금의 아내를 처음 본 날 이메일 주소를 물어봤던 일, 아내가 경기를 처음 보러 왔을 때 두 번이나 토했는데도 자신을 계속 좋아해 줘 ‘진국이구나’ 싶었다던 고백…. 커리어 정점을 찍은 2016년 윔블던 우승 소감을 물어도 “기억이 거의 없다. 술을 꽤 마셔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토했다”며 웃을 뿐이었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대회, 그중에서도 최고만 설 수 있는 센터코트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머리는 ‘영국의 테니스 영웅’ 대신 ‘찌질남’으로 남기를 택했다. ‘취약성(vulnerability)’을 연구한 사회복지 전문가 브레네 브라운은 남에게 숨기고 싶은 내 부끄러운 면을 드러내는 건 강한 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불완전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빅3와 메이저대회 우승을 다퉈야 했던 머리에게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머리는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나는 매일 똑같은 열정과 헌신을 쏟았던 내 커리어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2017년부터 고관절, 허리 부상으로 그저 그런 선수가 된 뒤에도 머리는 어김없이 코트에서 이기지 못한 상대에게 악수를 청했다. ‘완벽한 나’, ‘찌질한 나’를 모두 같은 ‘나’로 받아들인 머리가 진짜 남자인 이유다.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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