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 전 의원 별세…향년 90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 초대 사장을 지내고 한국데이터통신(현 LG유플러스)과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 창립에 관여한 이우재(李祐在) 전 의원이 12일 별세했다.
1981년 12월10일 창립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2년 1월1일 업무를 시작했고 같은달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식을 열었다.
1984년 3월에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위한 별도 회사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만들었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94년 선경에 인수돼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꿨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 초대 사장을 지내고 한국데이터통신(현 LG유플러스)과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 창립에 관여한 이우재(李祐在) 전 의원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육군사관학교(13기)를 나온 뒤 제2통신단장, 육군본부 통신감실 차감 등 내내 통신 분야에서 복무했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1981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11대 국회의원(전국구, 민주정의당)을 지냈다.
고인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공사 사장이 된 것은 정부가 1980년 12월19일 체신부의 통신사업을 분리해 기업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1981년 12월10일 창립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2년 1월1일 업무를 시작했고 같은달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식을 열었다.
고인이 사장으로 있는 동안 한국통신은 1982년 한국데이터통신을 세웠다. 같은해 12월 15일 ‘삐삐’로 알려진 무선호출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1984년에는 세계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TDX-1)를 시범 개통했다. 이후 전화 보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987년 9월 30일 전국 전화 1000만회선을 돌파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1984년 3월에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위한 별도 회사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만들었다. 이 회사 발기인도 고인이었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94년 선경에 인수돼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꿨다.
고인은 1988년까지 한국통신 사장으로 일한 뒤 1989∼1990년에는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1985∼1989년 대한사격연맹 회장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상임위원을 지냈고, 1986∼1997년에는 국제사격연맹(UIT) 부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장지선씨와 사이에 1남1녀로 이승연·이종호(삼성디자인교육원 교수)씨와 사위 차상훈(충북대 의대 교수·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씨 등이 있다.
kimstar@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재택근무 다신 안 해!” 편한 줄만 알았더니…제 명에 못살겠다
- 심형탁·시야 부부 부모된다…결혼 1년 만에 임신
- “한소희도 바꿨다” 잠깐 유행하더니 역시 ‘불편’, 결국 안 쓴다
- “홍명보, 거액 받고 가면서 ‘저를 버렸다. 희생’? 축구계 공분 이유”…서형욱 비판
- [단독]“아이폰은 못하는데” 지긋지긋 스팸문자, 삼성폰은 9월부터 직접 거른다
- '박수홍 동거설 유포' 형수 "동거 시부모에게 들은 것"
- 이근 “쯔양 녹취록, 내가 구제역 핸드폰 박살내 공개”
- "야 개X아 너만 좋은 거 보냐"…홍석천 ‘악플 박제’ 고소 예고
- “前남친에 폭행· 40억 갈취 당해” 폭로한 쯔양…‘구독자수’ 하루새 20만명 늘었다
- "가장 역겨운 영상"…36주 만삭女, 낙태 브이로그 논란